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이종훈)는 경주 동궁과 월지(사적 제18호, 옛 사적명 : 안압지)의 북동쪽 인접지역에 대한 발굴조사 성과를 26일 오후 2시 30분부터 발굴현장에서 일반에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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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동궁과 월지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직후 문무왕 14년(674년)에 세워진 동궁과 주요 관청이 있었던 곳으로, 1975년 문화재관리국(문화재청 전신) 경주고적발굴조사단에 의해 처음 조사되었다. 첫 조사 당시 인공 연못, 섬, 동궁 관련 건물지 일부가 발굴 되었으며, 3만 여 점의 유물이 출토 되면서 학계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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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2007년 동궁과 월지 북동쪽 인접지역에 대한 발굴조사를 시작해 지금까지 대형건물지군, 담장, 배수로, 우물 등 동궁 관련 시설을 꾸준히 확인하고 있으며, 2007년 이전에 출토된 것과 동일한 종류의 기와와 벽돌, 토기류 등의 유물들도 계속 출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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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공개 되는 유구 중에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수세식 화장실 유구이다. 이 유구는 화장실 건물 내에 변기시설, 오물 배수시설까지 함께 발굴된 신라 왕궁의 화장실 유구인 것으로 확인됐다. 화장실 유구는 초석건물지 내에 변기가 있고, 변기를 통해 나온 오물이 잘 배출되어 나갈 수 있도록 점차 기울어지게 설계된 암거(暗渠)시설까지 갖춘  복합 변기형 석조물이 있는 구조이다. 변기형 석조 구조물은 양 다리를 딛고 쪼그려 앉을 수 앉는 판석형 석조물과 그 밑으로 오물이 밖으로 나갈 수 있게  타원형 구멍이 뚫린 또 다른 석조물이 조합된 형태이며, 구조상 변기형 석조물을 통해 내려간 오물이 하부의 암거로 배출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 변기형 석조물: 불국사에서 유사한 형태의 변기형 석조물이 확인된 바 있으며, 형태적 측면에서 화장실 부재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됨

  * 암거(暗渠)시설: 지하에 고랑을 파서 물을 빼는 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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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방식 변기에 물을 흘려 오물을 제거하는 수세식으로 추정되며, 물을 유입하는 설비가 따로 갖추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준비된 항아리 등에서 물을 떠서 변기하부로 오물을 씻어 내보내는 방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동궁과 월지 화장실 유구의 특징은 통일신라 최상위 계층의 화장실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 준다는 것이다. ▲ 고급석재인 화강암을 가공하여 만든 변기시설과 ▲ 오물 제거에 수세식 방식이 사용된 점, ▲ 변기 하부와 오물 배수시설 바닥에 타일 기능의 전돌(쪼개어 만든 벽돌)을 깔아 마감한 점 등을 미루어 볼 때 통일신라 왕궁에서 사용된 고급 화장실의 실체를 짐작할 수 있다.

현재까지 국내에서는 변기시설만 발견(불국사, 8세기)되거나 화장실 유구(익산 왕궁리, 7세기 중엽)만 확인되었을 뿐, 화장실 건물과 변기시설 그리고 오물 배수시설이 이렇게 같이 발굴된 사례는 없었다. 이번 동궁과 월지에서 확인된 화장실 유구는 화장실이라는 공간과 그 부속품들이 한자리에서 발견된 최초의 사례로, 현재까지 조사된 통일신라 시대까지의 고대 화장실 중 가장 고급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나아가, 신라 왕실의 화장실 문화의 발달 정도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발굴현장 동편에서 동궁과 월지의 출입문으로 추정되는 대형의 가구식 기단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건물지의 외곽을 따라 화강암재의 가구식 기단의 지대석과 계단시설이 2곳 남아있는데, 인근의 도로(임해로) 때문에 가로막혀 건물지 동서방향의 규모를 정확히 알 수는 없는 상태지만, 남북 21.1m, 동서 9.8m(추정) 정도라서 전체의 규모를 얼추 짐작할 수 있는 단서는 될 수 있다.

  * 가구식(架構式) 기단: 석조기단의 일종으로 주로 화강석을 사용해 만드는데 그 만드는 방식이 마치 목조가구와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며 통일신라 시대 주요 건물지에서 주로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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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지의 성격을 추정해보면, 통일신라 시대 왕경 남북도로에 맞닿아 있다는 점, 건물지 규모에 비해 넓은 계단시설을 갖추고 있다는 점 등을 볼 때 문지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문은 아니더라도 동쪽에 자리한 점으로 보아 그동안 동궁과 월지에서 한 번도 발견된 적 없던 출입문이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발견이며, 유적 전체의 규모와 경계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 현재 인왕동 박물관네거리에서 시작하여 동궁과 월지와 황룡사 사이를 지나는 경주 임해로 하부에는 통일신라 시대의 왕경 남북대로가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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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동궁 내 생활과 관련된 창고시설과 물 마시는 우물을 확인하였고, 다양한 생활유물 등도 출토되어 신라 왕궁의 일상생활에 대한 연구자료로 확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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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26일 오후 2시 30분에 개최한 현장설명회를 통해 관계 분야 전문가, 일반 시민과 발굴성과를 공유하고 소통해 나갈 것이다. 아울러 경주 동궁과 월지 발굴조사와 심화연구를 계속 진행하여 신라 왕궁 연구의 새로운 동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자료출처 : 문화재청(www.ch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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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박물관과 ()백제세계유산센터, 특별전 세계유산 백제개막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유병하)과 백제세계유산센터(이사장 남궁영)백제역사유적지구의 세계유산등재를 기념하여 37일부터 57일까지 9주에 걸쳐 특별전 <세계유산 백제>를 개최합니다. 공주로 천도한 475년에서 멸망하는 660년과 부흥운동이 일어나는 663년까지 금강을 요람으로 하여 공주와 부여에 도읍하였던 약 2백년간의 역사를 왕도인 공주와 부여, 또 별도였던 익산으로 나누어 전시합니다. 앞서 열린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가 도성·사찰·능묘로 나눈 생활사 중심의 전시였다면, 국립경주박물관의 전시는 공주·부여·익산 지구를 다시 8개 지구로 나누어 도시의 특성과 경관에 초점을 맞추어 전시합니다. 또 신라 왕경에서 열리는 첫 백제 전시인 만큼, 신라 문물과의 비교적 시점에서 조망할 예정입니다. 특히 부여 출토 대형 치미와 광배 등 팔백여점의 유물을 전시함으로써 백제문화의 위용과 함께 백제칠기·백제정원 등을 조명합니다.



곰나루 웅진

1475-538 웅진시대의 도읍, 곰나루 웅진(熊津)에서는 고구려에 밀려 급작스럽게 공주로 천도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30여 년간 존속한 왕도를 조명합니다. 이 시기 백제는 신라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웅진시대 왕들의 무덤인 공주송산리고분군에 대해 무령왕릉 출토품을 중심으로 살펴봅니다. 왕의 관식(冠飾), 무령왕지석(誌石)과 글자새긴 은팔찌와 전돌을 통해 화려했던 웅진 백제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남조 도자와 금송으로 만든 관재(棺材)를 통해 중국 남조(南朝) 및 왜(倭)와의 활발했던 교류 양상을 설명합니다. 백제 무령왕릉 출토 금제모자형장식과 신라 금관총 출토 귀걸이에는 공히 고도의 누금(鏤金)기법이 보입니다. 근년 발굴을 통해 왕성일 가능성이 농후해진 공산성에 대해 주칠(朱漆)문자가 쓰여진 옻칠갑옷을 비롯하여 목기류와 기와를 전시합니다. 특히 옻칠갑옷의 연대 645년에 주목하여 웅진시대가 종료되고 왕도가 사비로 옮겨간 뒤에도 웅진성이 중요기능을 하고 있었으며, 이 고구려를 정벌하기 위해 대규모 원정을 단행하는 등 상황에서 백제 역시 긴박하게 당에 대한 대비와 교류를 병행하였음을 설명할 예정입니다.

무령왕릉 출토 묘지석(사진 : 국립경주박물관)



소부리 사비

2538-660 사비시대의 도읍, 소부리 사비(泗沘)에서는 계획도시 사비의 면모를 전시합니다. 정동리 전돌과 관북리 대통(大通) 글자 인장와를 통해 538년 천도하기 이전부터 부여에서 도시건설이 이뤄지고 있었음을 이야기하고, 부(部)관련 글자가 있는 기와와 목간, 석문(石文)으로 왕경의 행정구역 5부를 설명합니다. 이는 신라 왕경이 탁부(喙部)를 비롯 토착적 지연집단의 6부 구성이었던 것과 확연히 비교됩니다. 관북리 건물지 출토 기와류를 통해 왕궁터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으며, 부소산성 출토 금동광배와 무기류는 왕궁의 배후 방어성으로서 위용을 이야 기해준다. 정림사 출토 소조불과 대당평제비탁본으로 정림사가 사비왕경의 중심광장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쌍북리 출토 구구단 목간을 매개로 백제 사람들도 구구단을 실생활 곳곳에 활용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능산리사지 출토 금동대향로(복제) 등과 능산리고분군 출토 관못과 관장식을 통해 이 시기 왕실 장례문화와 금속가공 기술을 엿볼 수 있습니다. 황룡사지 출토 6세기 전반 이른 시기 신라 수막새의 연꽃무늬는 사비 왕경 출토 백제 수막 새와 흡사합니다.

부소산성 출토 금동광배(사진 : 국립경주박물관)

 


지모밀지 금마저

3장 또 다른 도읍, 지모밀지(枳募蜜地) 금마저(金馬渚)에서는 익산 미륵사지와 왕궁리유적, 쌍릉 출토품을 전시합니다. 미륵사지 서석탑 출토 사리병과 탑 건립의 내력을 기록한 사리봉영기(舍利奉迎記), 왕실과 귀족의 각종 공헌물은 화려했던 7세기 후반 백제 문화를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줄곧 왕도를 옮기지 않았던 신라와 달리, 백제는 여러 차례 왕도를 옮기면서도 각지에서 색다른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익산 미륵사지 출토 사리봉영기(사진 : 국립경주박물관)

 


신라문화에의 영향

643년 신라 황룡사 건설을 위해 백제 공인 아비(阿比)가 건너갔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872년 중수하면서 새겨넣은 황룡사찰주본기의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황룡사 출토 7세기대의 기와 등을 통해 그와 같은 백제와 신라 문화 교류의 모습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7세기 전반 백제 무왕은 서동(薯童)으로 불리던 젊은 시절 신라 선화공주와의 로맨스가 삼국유사에 전합니다.

7세기 중엽 신라의 삼국통일 직후의 것으로 보여지는 경북 칠곡 송림사 전탑 출토 장식품은 백제 귀족의 은화관식을 모티브로 하여 신라적 요소를 가미하였습니다. 7세기말 작성된 신라촌락문서는 7세기 초반 나주 복암리 백제목간에 보이는 호적 기재 방식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편 황룡사지 출토 옥, 금동허리띠장식, 경주 감은사 출토 사리기중 유리병, 황남대총 출토 금귀걸이 등 신라문물은, 공주 무령왕릉 출토 왕관식과 옥장식, 익산 미륵사지와 왕궁리 출토 유리병과 구슬 등 백제 문화와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백제와 신라 양국은 정치적 대립 속에서도 꾸준히 문화와 인적 교류를 이어나갔습니다. 백제가 멸망한 후에도 그 문화는 신라 문화 속에 살아 이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백제 문화를 특화하여 설명, 영상자료를 활용

백제는 양(梁)의 선진건축술을 수용하고 와박사(瓦博士)제도를 두어 기술자를 우대했습니다. 부여 쌍북리와 공산성에서 보는 백제칠기문화, 왕궁리유적의 정원석을 토대로 백제정원문화를 특화하여 조명합니다. 드론촬영한 공주, 부여, 익산의 8개 유적을 조망하는 대형 영상을 비롯, <백제금동대향로><서동요> 등 총 5개의 영상을 곁들여 전시의 이해를 돕습니다.


※ 자료출처 : 국립경주박물관 홈페이지(http://gyeongju.museu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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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인왕동 76 |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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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부장 ibuzang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유병하)특별전 <아프가니스탄의 황금문화>927일부터 1127일까지 특별전시관에서 개최한다. 이번 특별전은 국립아프가니스탄박물관의 소장품 223건을 중심으로 고대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전시이다.

이란 고원 동북단에 위치한 아프가니스탄은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이란, 파키스탄 등에 둘러싸인 내륙 국가이다. 지형적으로 유라시아 대륙의 한가운데 위치한 이 지역은 서쪽의 유럽, 동쪽의 중국, 남쪽의 인도를 연결하는 문명의 교차로이자, 실크로드의 요충지였다. 토착적 요소와 외래적 요소가 상호 융합하여 탄생한 아프가니스탄의 고대 문화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변 지역의 문화 연구에도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이번 전시는 크게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테페 푸롤(Tepe Fullol), 아이 하눔(Ai Khanum), 틸리야 테페(Tillya Tepe), 베그람(Begram) 등 네 곳의 유적지를 시기별 흐름에 따라 소개한다.


1에서는 기원전 2천년 경 청동기시대 유적인 테페 푸롤을 소개한다. 해발고도 3천 미터가 넘는 험준한 산에 둘러싸인 이 지역은 비옥한 경작지이자, 청금석의 주요 교역지로 큰 번영을 누렸던 곳이다. 1966년 지역민이 우연히 발견한 금은기로 유적의 실체가 밝혀졌는데, 상당량이 소실되어 출토지 정보가 부족한 편이다. 현재 출토된 황금잔의 기하학 무늬와 동물의 표현 등에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나 인더스 문명과의 교류를 짐작해 볼 수 있다.


2에서는 기원전 4세기 마케도니아의 군주 알렉산드로스의 동방원정 이후 세워진 아이 하눔 유적을 소개한다. 옥수스 강(오늘날 아무다리야 강) 유역에 위치한 이 도시 유적에서는 신전, 궁전, 경기장, 도서관, 반원형 극장 등 그리스 도시의 전형적인 요소들뿐만 아니라 그리스 문자나 신화의 내용도 고스란히 발견되었다. 인도에서 난 상아로 만든 전래품도 발견되어 이 지역의 국제성을 보여준다. 건축에서는 페르시아적 요소가 사용되는 등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를 혼합한 헬레니즘 문화의 특징을 보여준다.


3에서는 황금의 언덕이란 뜻의 틸리야 테페 유적과 황금 문화유산인 그 발굴품을 소개한다. 1978년 소련의 고고학자 빅토르 사리아니디(Viktor Sarianidi)의 발굴로 세상에 드러난 이 유적은 당시 이집트의 투탕카멘 발견에 버금가는 중요한 성과로 주목받았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틸리야 테페 유적에서는 왕으로 생각되는 남성 무덤을 가운데에 두고 주위를 둘러싼 5명의 여성 무덤에서는 화려한 금관을 비롯하여 세밀하고 정교한 금제 장식들이 발굴되었다. 기원후 1세기경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박트리아의 황금이라 불리는 화려한 금제 부장품들은 당시 유라시아의 중심에서 활약했던 유목민들의 광범위한 교역 활동을 보여준다. 이들의 국제적이고 다양한 문화에는 그리스, 로마, 중국, 인도, 스키타이-시베리아 등 매우 폭 넓은 문화적 요소가 내재되어 있다. 특히 6호 무덤에서 여성이 쓴 채로 출토된 금관은 일찍이 신라 금관의 기원 연구 등에서 큰 관심을 받아 온 것으로 이번 전시에서 특히 주목받는 전시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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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1세기, , 틸리야 테페 6호묘 출토(사진 : 국립경주박물관)


4에서는 쿠샨 왕조의 여름 수도로 번영했던 베그람 유적을 소개한다. 베그람은 7세기 중국의 승려 현장이 기록한 카피시국의 도읍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1세기경으로 추정되는 궁전터에서 많은 양의 유리기, 청동기, 석고, 칠기 등 다채로운 문화유산이 출토되었는데, 각각 인도, 로마, 그리스, 이집트, 중국 등의 영향을 보여준다. 실크로드와 해상무역으로 번영했던 도시의 모습에서 활발했던 동서 문물 교류의 상황을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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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1세기, 유리, 베그람 10호방 출토(사진 : 국립경주박물관)


또한 이번 전시 마지막 공간에는 유네스코 아프가니스탄지부와의 협조로 특별사진전 아프가니스탄의 자부심<TheAfghanistan we are proud of>”의 출품작을 소개하여 아프가니스탄의 과거, 현재, 미래를 거시적으로 조망하는 공간을 마련하였다.

 

아프가니스탄의 보물을 소개하는 이 전시는 2006년 파리의 기메박물관을 시작으로 워싱턴의 내셔널 갤러리, 뉴욕의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런던의 영국박물관, 일본 도쿄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등 지금까지 12개국을 순회하며 19개 기관에서 순회전이 개최되었다. 국립경주박물관은 국립중앙박물관(2016.7.5.~9.4.전시)에 이어 20번째 개최 기관이다.

 

파란 많은 현대사를 거치면서도 아프가니스탄인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낸 그들의 귀중한 문화유산들은 오늘날 폐허의 잔해 속에서도 국립아프가니스탄박물관 입구에 걸려 있는 문구(“그 문화가 살아 있어야 나라가 살아남을 수 있다”)와 함께 전시를 찾는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927일에서 1127일까지 휴관 없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일시/장소: 2016.9.27.()~2016.11.27.()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

전시품: 국립아프가니스탄박물관 소장 틸리야테페 유적 출토 금관 등 2231404

주 최: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국립아프가니스탄박물관

후 원: 경주시, 경주박물관회

협 조: 내셔널 지오그래픽, 유네스코 아프가니스탄지부

※ 자료출처 : 국립경주박물관 홈페이지(http://gyeongju.museu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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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인왕동 76 |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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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부장 ibuzang

경주의 고려시대를 집중 조명하는 최초의 전시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유병하)은 2016년 7월 12일(화)부터 9월 4일(일)까지 특별전 “고려시대의 경주”를 개최한다. 신라의 천년왕도로 주목받는 경주의 고려시대를 조망하는 첫 전시이다.

   


도시경관과 지역사회를 키워드로 풀어가는 고려 오백년 경주의 역사

“경주”라는 이름은 고려시대에 시작되어 오늘에 이른다. 이번 전시는 신라가 멸망한 935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시대 경주 지역 사회의 변화와 지역민들의 삶을 ‘도시경관’과 ‘지역사회’라는 키워드로 풀어냈다. 불국사 석가탑 중수기(국보 126호) 등 국보 3점, 보물 15점을 비롯해 모두 500여점의 문화재를 【프롤로그:경주의 탄생, 1부 읍성과 지역사회 운영, 2부 호국의 상징 황룡사, 3부 지역사회와 불교사원, 4부 동족사회와 무덤, 5부 경주사람들, 에필로그:고려의 동경 경주】라는 주제로 구성하였다. 

프롤로그에서는 경순왕의 고려 귀순으로 경주가 신라 왕경에서 고려의 지역도시로 재편되는 과정을 다룬다. 



1부 ‘읍성과 지역사회 운영’에서는 고려시대 경주의 행정 중심이 된 읍성과 지역사회 운영의 모습을 전시한다. 성벽 축조에 사용된 신라 건축물의 석재들과 고려 기와들,「동경 굴석사(東京屈石寺)」가 새겨진 굴불사 출토 쇠북은 1183년 경주의 전 호장 이백유(李伯兪)와 승려 도인(道人)이 제작에 참여하였고 경주를 동경으로 칭했음을 보여준다. 각종 선생안(先生案)과 호장(戶長) 관련 전적은 호장과 부윤(府尹)의 면면을 보여 주는 중요한 전시품이다. 1182년에 세워진 효자 손시양 정려비(보물 제68호)의 입체탁본은 경주가 효행의 도시였음을 보여준다.    



2부‘호국의 상징 황룡사에서는 신라의 중심 사찰이었던 황룡사가 고려시대도 경주민의 정신적 중심으로서 여전히 호국의 상징이었음을 새롭게 조명한다. 각종 대형 기와들과 청자 등 고려시대 황룡사 출토품들은 웅장했던 당시의 모습을 짐작케 해 준다.


    

3부 ‘지역사회와 불교사원’은 경주의 불교사원이 종교 뿐 아니라 지역 사회에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중심지였음을 보여준다. 불국사 성보박물관 부지 출토 명문기와에서 고려시대 불국사가 숙박시설을 겸하였음을 알 수 있다. 동시대 문집자료에서는 분황사가 사람들의 휴식 공간이었음을 말해 준다. 또한 불국사 석가탑 중수문서(국보 제126호)에서는 지역 사회가 하나되어 천재지변을 극복한 모습을, 감은사 쇠북에서는 왜구의 침입을 극복했던 모습을 접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불국사 석가탑 중수기(국보 126호), 왕실이 발원한 대반야바라밀다경 권210(보물 959­1­1호) 등 10여점의 국보․보물이 전시된다.  



4부 ‘동족사회와 무덤’에서는 경주의 고려시대 무덤군을 통해 동족집단의 무덤을 살펴본다. 물천리·화천리·검단리 등 대규모 무덤군에서 일괄로 출토된 청동 그릇과 거울, 수저, 청자 등 규범화된 부장품들이 밀도있게 소개된다. 도읍인 개경에서 발견된 것과 거의 유사한 경주 구정동 출토 쌍용구름무늬띠거울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대접접시 등 청자제품과 같은 실생활 용기를 부장하였다.



5부 ‘경주사람들’에서는 이제현(李齊賢)·김부식(金富軾)·이의민(李義旼) 등 경주와 관련된 인물들을 소개한다. 초상화, 문집, 비문 등으로 그들의 모습과 행적, 그리고 시대적 상황을 되짚어 볼 수 있다. 또한 고려귀족을 상징하는 묘지명으로 귀족사회에 진입한 경주출신 인물들을 소개하였다.      



신발견 고려시대 구결, 임진왜란 이전 기록된 경주 호장 관련 기록 최초 공개  

기림사 소장 자비도량참법에서 13세기 고려시대 구결이 발견되었는데 이를 처음 공개한다. 고려시대 사람들은 우리말과 어순이 다른 한문을 읽을 때 토씨를 달아 우리말로 읽었다. 종래 고려 언어 생활을 알 수 있는 이같이 귀중한 자료는 인왕경 등 5건에 불과했다. 

임진왜란 이전에 작성된 유일한 호장안인『부사선생안(府司先生案)』도 처음 공개된다. 이것은 경주부 역대 호장(戶長)의 명단인데, 호장은 향리의 우두머리로서 지방사회의 지배자였다. 1523년 처음 작성된 부사 선생안은 고려시대부터 1787년 신안(新案)을 작성하기까지 호장의 이름과 생년, 본관 등을 기록하였다. 



최신 발굴자료, 경주 읍성 출토품과 구정동 출토 쌍용무늬청동거울 첫 공개

최근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경주 읍성 및 구정동 고려무덤 출토품이 이번 전시에서 공개된다. 고려시대 경주 읍성 축조에는 옛 신라 궁궐 등 기존 건축물을 해체하여 얻은 석재들이 재활용되었다. 이 중 테두리에 안상(眼象)을 새겨 화면 틀처럼 삼고 가운데에 인물처럼 생긴 상을 조각한 통일신라기 부조가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상은 중국 남북조시대 북위(北魏, 386~534) 말부터 동위(東魏, 534~550)를 거쳐 북제(北齊, 550~577)에 이르는 6세기 불교미술에서 불비상(佛碑像)의 하단에 새겨진 풍신왕(風神王)과 유사하다. 또한 서쪽 돈황 막고굴 중에서 서위(西魏, 535~556) 때 지어진 제285굴과 당(唐, 618~907) 초기인 7세기의 제329굴 천정 벽화에도 두 손으로 천을 쥐고 뛰는 역동적인 자세의 풍신(風神)이 그려져 있어 이와 비교된다. 경북대학교박물관 야외에 전시된 울산 출토 9세기 작 사암제 비로자나불좌상의 대좌 중대석에 이와 비슷한 신장상이 새겨져 있으나, 신라에서는 이 소재 자체가 흔치 않아 앞으로의 연구가 기대되는 신자료이다. 

이와 함께 최근 출토된 경주 구정동 쌍용무늬구름무늬띠거울(雙龍文雲文帶鏡)은 고려의 도읍인 개성에서 주로 발견되는데, 거울에는 포장재로 사용된 대나무가 그대로 남아 있다.  


다양한 영상과 충실한 역사 자료 제공   

이 밖에 효자의 마을로 선양한 황남동 소재 손시양 효행정려비 일명 효자리비(孝子里碑, 보물 68호)의 입체탁본, 고려시대 경주 역사를 집성한 역사 연표와 지도, 영상과 삽화가 전시 이해를 돕는다. 무료 관람으로 9월 4일까지 이어진다.      


이 자료에 대하여 더욱 자세한 내용을 원하시면 문화체육관광부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실 학예연구사 이용현(☎ 054-740-7535)에게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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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인왕동 76 |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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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부장 ibuzang

국립경주박물관(학예연구실장 김유식) 426일부터 619까지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수집품특별전을 개최합니다.

국립경주박물관 소장품 가운데는 일제강점기(1910~1945) 일본인들이 수집한 한국중국일본 관련 문화재 1,3022,653(금속519, 도토제1,236, 서화695, 기타203)이 있습니다. 이 문화재의 일부는 광복 직후 일본으로 불법 반출시키지 못하고 박물관으로 입수되었으며, 일부는 1963년 광복 당시 숨겨두었던 비밀 창고가 발견되어 박물관으로 옮겨져 접수품으로 등록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번 특별전은 도자기’, ‘회화’, ‘중국 청동용기’, ‘보존과학일제강점기 복제된 우리문화재등 모두 5부로 구성하여 우리나라의 고려청자, 근대회화, 중국의 고대 예기 등 200여 점과 광복 이후 입수현황을 알 수 있는 관련 문서 등을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합니다. 또한 일제강점기 당시에 수리 및 복원된 문화재를 전시하여 20세기 초의 박물관 기능과 보존처리 기법도 함께 소개합니다.





1. 도자

19세기 초 개성 밭에서 우연히 발견된 고려청자를 계기로 일본인은 고려청자 구입에 돈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조선총독부 초대통감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고려청자 수집광이었고 이왕가박물관을 설립한 고미야 미호마쯔(小宮三保松) 역시 집안 가득 문화재를 수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광복 후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 등 일본인 3명으로부터 접수해 국립경주박물관에 입수된 도자는 모두 574점입니다. 이 중 우리나라의 고려청자조선백자분청사기청화백자와 중국 서진시대 청자북송시대 월주요 청자자주요 백자 및 일본의 20세기 초 유행한 이마리도자라쿠양식 도자 등 103점을 전시합니다.




2. 서화

조선시대는 건국초기부터 도화원圖畵院이 설치되어 사대부와 화원들이 당시 회화의 발전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화원화가의 전통은 조선후기 한국적인 정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정선의 진경산수, 김홍도와 신윤복의 풍속화 등이 탄생하는 밑거름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은 식민정책을 강화하기 위하여 조선미술을 독창성 없는 중국의 아류로 보려는 풍조가 지배적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중국화풍을 따른 이인문과 심사정의 정형산수화를 더 애호하였고, 일본의 우키요에와 유사한 화조도나 풍속화 수집에 치중하였습니다. 또한 일본서화의 경우에는 에도시대 이후 인물도와 화조도를 포함하여 서양화법이 가미된 풍경화 수집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이밖에도 제국주의 정책을 옹호하기 위해 그려진 불화를 다수 수집하였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당시 이러한 일본인의 미술품 애호 성향이 반영된 서화 15점이 공개됩니다.




3. 중국 청동용기

중국 청동용기는 제작된 시기에 따라 청동예기靑銅禮器와 방고청동기仿古靑銅器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청동예기는 중국 상주시대商周時代(기원전16세기~기원전771)부터 한대漢代(기원전206~기원후220)까지 제작되었습니다. 고대 중국의 황실과 귀족들이 제사, 연회, 전쟁 등 의식을 거행할 때 사용한 용기로 사용자의 지위와 신분, 권력에 따라 엄격한 제한이 있었습니다. 용도에 따라 음식 담는 그릇(食器), 술 담는 그릇(酒器), 물 담는 그릇(水器)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방고청동기는 북송北宋(960~1127)부터 청대淸代(1644~1911)까지 제작된 고대 청동예기의 모방품입니다. 당시 일본인들은 우리나라 문화재 이외에 중국문화재도 다수 수집하였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들이 수집한 중국 청동용기 53점을 소개합니다.




4. 보존과학

보존과학 전시는 문화재보존을 이해하고 문화재를 과학의 눈으로 다시 살펴보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마련하였습니다. 2016년은 박물관 6대 기능에 속하는 보존保存이 국립박물관에서 그 역할을 시작한지 40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번 특별전 전시품들이 수집되었던 일제강점기당시의 보존기술에 주목하여 현대의 보존기술과 비교해보고자 하였습니다. 문화재의 보존에 얽힌 이야기와 과학의 시선視線으로 관찰하면서 문화재와 보존과학을 새롭게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5. 일제강점기에 복제된 우리문화재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한 전경주 입실리 출토 청동기 5점은 1970년대 경주박물관에 근무한 이건무 전국립중앙박물관장에 의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의 복제품이라는 사실이 판명되었고, 2007년 학술발표에서 일반에 소개되었습니다. 입실리 출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은 1920년 동해안 철도공사 중 발견되었다가 산일散逸된 것으로 조선총독부박물관이 1921년 일본인 모로가 히데오(諸鹿央雄)에게 구입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복제품의 정확한 출처와 복제 목적 등을 알 수 없었습니다.

박물관은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본책 고고학관계자료모형도보考古學關係資料模型圖譜(1931)’고고학관계자료모형목록考古學關係資料模型目錄(1930)’의 존재를 확인하였고, 검토 결과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복제품들은 일제강점기 교토제국대학(京都帝國大學) 교수 하마다 고사쿠(濱田耕作)가 추진한 동서양 중요문화재 모형제작프로젝트의 결과물(230여점) 중 일부이며, 모형 제작은 교토에 위치한 우에노제작소(上野製作所)에서 진행하였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고고학관계자료모형도보실물을 공개하며, 경주 입실리 출토 진품 청동기와 복제품을 비교 전시합니다. 또한 이 책에 수록된 전충남출토 동경(접수546) 복제품 1점도 함께 전시하여 그 동안 의문으로 남았던 이들 복제품들의 출처와 성격을 소개 합니다.

 

이번 특별전은 광복 이후 국외 반출 위기에 직면했던 우리 문화재를 포함한 국외 문화재를 우선적으로 공개하는 자리로 일본인이 수집하였던 접수품에 대한 기초조사 결과를 적극적으로 알리고자 하는 차원에서 마련되었습니다. 이번 특별전을 계기로 지속적인 연구와 자료 보완 작업을 진행하여 연차적으로 접수품 자료집을 발간할 예정입니다.


 자료출처 : 국립경주박물관 홈페이지(http://gyeongju.museum.go.kr/)


전시 기간: 2016426() ~ 619() 월요일 휴관

전시 장소: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

 

 

이 자료에 대하여 더욱 자세한 내용을 원하시면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실 연구사 오세은(054-740-7539)에게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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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인왕동 76 |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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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부장 ibuzang

국립경주박물관은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이하여 20151222일부터 2016221일까지 일본의 고훈[古墳]시대를 조망하는 특별전 일본의 고훈문화를 개최합니다. 일본 나라국립박물관의 특별협력으로 이루어진 이번 전시회는 일본 내 9개 기관에서 출품한 380점의 문화재를 전시합니다. 이 가운데 일본의 국보가 29점이며 중요문화재 는 197점입니다. 아울러 당시 한일 교류의 일면을 보여주는 우리 문화재 20점이 비교자료로서 함께 선보입니다.



고훈은 한자어 古墳의 일본어 발음입니다. 고분(古墳)이라 하면 옛무덤을 뜻하는 말이지만, 일본 고고학에서 고훈은 고대에 조성된 대형 무덤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고훈들이 집중적으로 조성되었던 시대를 고훈시대라고 부릅니다. 3세기 중엽부터 6세기 후반까지에 해당하는 고훈시대는 이전의 조몬[縄文]시대와 야요이[彌生]시대 등의 선사시대를 지나 이후의 아스카[飛鳥]시대, 나라[奈良]시대 등의 역사시대로 넘어가는 다리입니다.

당시 일본은 선진문화를 받아들이기 위하여 신라 가야 백제 등과 활발히 교류했습니다. 따라서 고대의 우리 문화가 일본열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당시의 일본열도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국내에 소개하는 자리는 매우 드물었습니다. 단편적으로 다룬 적은 있지만 고훈시대 전반을 살펴보는 전시는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 전시회는 고훈시대를 전반적으로 조망하는 국내 첫 특별전으로서, 고훈시대의 대표적 유적과 그곳에서 발견된 출토품을 시대의 흐름에 따라 3부로 구성하여 선보입니다.



1부 히미코[卑彌呼]의 유산, 고훈의 등장: 고훈시대 전기

고훈시대를 연 여왕 히미코[卑彌呼]를 소개하고 야마타이국[邪馬臺國]의 중심지로 추정되는 나라현[奈良縣] 마키무쿠[纏向]유적의 출토품과 나라현의 구로즈카[黑塚]무덤, 도다이지야마[東大寺山]무덤, 메스리야마[メスリ]무덤 등의 부장품들을 전시합니다. 귀신을 받들어 사람들을 통솔했다는 종교적 지도자 히미코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청동거울과 돌팔찌 등 주술적 의미가 담긴 부장품을 볼 수 있습니다.



2부 대형 무덤과 하니와의 세계: 고훈시대 중기

고훈시대를 통틀어 가장 큰 무덤을 만들었던 시기입니다. 청동거울의 수가 줄며 돌팔찌도 거의 사라지는 대신 갑옷과 투구가 등장합니다. 이는 지배자의 성격이 종교적 지도자로부터 철기를 생산해 강한 무력으로 통치하는 군사적 지도자로 변화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정황을 보여주는 전시품으로서 철제 도구를 만드는 데 썼던 단야구(鍛冶具)가 출토돼 주목을 끌었던 나라현의 고조네코즈카[五條猫塚]무덤의 부장품과 철제 갑옷의 발달을 보여주는 시가현[滋賀県] 신가이[新開] 1호무덤의 부장품이 선보입니다. 신라계 이주민의 무덤으로 알려진 나라현의 니자와센즈카[新澤千塚] 126호무덤에서 출토된 금동장신구들은 당시 활발했던 신라와 왜의 교류를 보여 줍니다.

대표적 전시품으로서, 무덤의 주위와 봉분에 배치하였던 일종의 토기인 하니와[埴輪]도 선보입니다. 하니와는 고훈문화를 대표하는 독특한 기물로서 매장의례시 공양물을 담는 항아리와 그릇받침에서 기원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원통형이었으나 5세기 이후에는 인물, 동물, 기물, 건축물 등 여러 가지 형태의 하니와가 나타났습니다. 하니와는 문자 자료가 거의 없는 고훈시대의 생활상을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됩니다.



3부 사라지는 고훈: 고훈시대 후기

고훈이 점차 사라지는 시기의 부장품을 전시합니다. 나라현의 바쿠야[牧野]무덤, 다마키시로[珠城山]무덤, 후지노키[]무덤의 매장 주체부는 모두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입니다. 이러한 굴식돌방무덤은 백제로부터 일본에 전해진 것입니다. 이 시기를 보여주는 전시품으로서 신라와 가야의 토기 제작술을 도입해 만든 스에키[須惠器]와 기마문화를 보여주는 말갖춤[馬具] 등이 선보입니다. 특히 후지노키무덤의 금은으로 장식한 장신구와 말갖춤들이 눈에 띕니다. 이는 금은세공품으로 신분을 과시했던 후기 지배자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이러한 고훈은 왕권의 강화, 장례 의식의 변화 등에 따라 점차 그 의미를 상실하고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습니다. 특히 불교를 수용하게 됨에 따라 고훈을 축조했던 역량은 사찰을 만드는 쪽으로 옮겨 갔습니다.


죽은 지배자로부터 권력을 물려받는 장소이자 선진 문물의 확보를 위한 지역 연합의 상징인 고훈, 전세계의 기념비적 무덤들과 마찬가지로 지배자의 권력을 과시하는 동시에 죽은 지배자로부터 권력을 물려받는 상징적 공간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고훈을 축조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무덤 안에는 주인공의 죽음뿐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삶이 들어 있습니다. 따라서 고훈은 오늘날 일본 고대문화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철기, 갑옷, 말갖춤, 토기, 금공품 등 각종 부장품에는 활발했던 한일 교류의 흔적도 남아 있습니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고대의 한반도와 일본열도에 살던 많은 사람들이 서로 오갔고 그들이 남긴 문화유산은 이후 양국 문화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이 특별전이 한국과 일본을 더욱 친근하게 이어주는 다리가 되어, 한일 교류의 우호적 미래를 열어 가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기간: 20151222() ~ 2016221() 매주 월요일 휴관

장소: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

자료출처 : 국립경주박물관(http://gyeongju.museu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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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월성동 |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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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부장 ibuzang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이영훈)은 개관 70돌을 맞이하여 특집진열 “사진으로 보는 국립경주박물관 70년(1945~2015)”을 10월 6일부터 12월 6일까지 마련(장소 : 신라미술관 입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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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박물관은 국립박물관 경주분관으로 1945년 10월 7일 문을 열었습니다(초대 관장 최순봉). 광복 직후 국립박물관의 경주분관으로서 일본인 사업가들이 갖고 있던 문화재들을 회수하는 한편, 1946년에는 광복 이후 첫 번째 고고학 조사인 호우총(壺衧塚)과 은령총(銀鈴塚) 발굴에 참여하였습니다. 한국전쟁 기간에는 문화재를 안전한 후방으로 옮기는 한편 군사 시설 설치 등으로 위기에 처한 유적을 보존하고 조사하였습니다. 1954년에는 경주의 뜻있는 분들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어린이박물관학교를 개교하여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1975년 7월에는 경주시 동부동을 떠나 지금의 인왕동 너른 뜰에 큰집을 새로 짓고 이사했습니다. 초기 1,282점에 지나지 않았던 소장품은 20만 여점으로 늘어났으며, 해마다 150만 명 안팎의 관람객들이 찾는 명실상부한 신라 천년의 수도 경주를 대표하는 국립문화기관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이번에 전시하는 사진 80여 점에는 1946년 내관한 조소앙( 1887~1958) 선생을 비롯하여 그 동안의 역대 대통령과 외국 국가원수 등의 내관, 동부동 옛 박물관(현 경주문화원)의 모습, 민가와 논밭이 산재했던 인왕동에 박물관이 자리 잡기까지의 과정, 1954년 개교한 어린이박물관학교의 이모저모, 2017년 박물관 남쪽에 건립될 종합수장고 건립 준비 상황 등이 담겨 있습니다.


이 특집진열이 관람객과 함께 국립경주박물관의 70년을 돌아보며 미래를 내다보는 자리가 되길 기대합니다.


자료출처 : 국립경주박물관(http://gyeongju.museum.go.kr/)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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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월성동 | 국립경주박물관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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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부장 ibuzang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이영훈)은 특집진열 ‘2015년 금관총 발굴 출토품 공개’를 9월 25일부터 11월 29일까지 마련합니다. 2015년 2월부터 7월까지 이루어진 금관총 발굴에서 확인된 尒斯智王刀(이사지왕도) 명 ‘칼집 마구리’ 등 출토품 12건을 선보입니다.



가장 주목되는 출토품은 ‘이사지왕의 칼’이라는 뜻의 ‘尒斯智王刀(이사지왕도)’ 라는 글자를 새긴 고리자루 큰칼의 칼집 마구리입니다. 1921년 금관총의 발견품 가운데 최근에 확인된 ‘尒斯智王(이사지왕)’이라는 명문과 함께 무덤의 주인공을 추정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는고리 금 귀걸이 1쌍, 굵은고리 금 귀걸이 1점, 가는고리 금 귀걸이 1점도 새로이 출토되었는데, 가는고리 금 귀걸이는 지금까지 발견된 적이 없는 새로운 형태입니다.

이밖에도 유리그릇 조각, 은제허리띠 장식, 많은 양의 유리구슬, 눈금이 있거나 달개가 달린 금실, 유리 곱은옥, 다양한 토기 조각 등을 확인하였습니다.

이번 특집진열은 이러한 금관총의 발굴 성과를 신속히 일반에 공개하기 위하여 마련한 것입니다. 2015년 금관총 발굴 출토품 공개 전시에 많은 관심과 성원을 바랍니다.




금관총은 일제강점기인 1921년 금관이 처음 발견되어 붙인 이름입니다. 2015년 2월부터 7월 까지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경주박물관이 금관총을 94년만에 정식으로 발굴했습니다.

발굴 결과, 무덤의 중심부에는 2중의 나무덧널(木槨)을 만들고 그 안에 나무널(木棺)을 넣었던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중심 구조물인 덧널을 보호하기 위하여 돌무지[積石]와 덧널 사이에는 대형의 나무기둥들을 세웠던 흔적인 둥근 구멍들이 네모꼴로 확인되었습니다.

‘칼집 마구리’에는 무덤의 주인공을 추정할 수 있는 ‘이사지왕의 칼’이라는 뜻의 ‘尒斯智王刀(이사지왕도)’와 ‘十(십)’이라는 글자를 새겼습니다. 최근 1921년도 발견품에서도 ‘尒斯智王(이사지왕)’이라는 명문을 확인한 적이 있습니다.

‘귀걸이’는 가는고리 금 귀걸이 1쌍, 굵은고리 금 귀걸이 1점, 가는고리 금 귀걸이 1점이 새로 확인되었는데, 가는고리 금 귀걸이는 지금까지 발견된 적이 없는 새로운 형태입니다.

‘유리그릇’ 조각은 3개체의 조각이 나왔습니다. 1점은 1921년의 발견품 가운데 하나의 조각이며, 나머지는 새롭게 확인되어 원래 금관총에는 모두 네 점의 유리그릇이 부장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은제허리띠’ 장식 역시 새로 확인된 것입니다.

또한 자갈층 상부의 흙을 물체질하여 많은 양의 유리구슬을 찾아냈으며, 이밖에도 눈금이 있거나 달개가 달린 금실, 유리 곱은옥, 토기 조각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자료출처 : 국립경주박물관(http://gyeongju.museum.go.kr/) 보도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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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월성동 | 국립경주박물관 신라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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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부장 ibuzang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이영훈)은 7월 21일부터 11월 1일까지 ‘신라의 황금문화와 불교미술’ 특별전을 개최합니다. 이 전시회는 국립경주박물관의 개관 70주년 기념전이자, “실크로드 경주 2015”의 선도적 테마 행사입니다.  

  신라의 문화를 전체적으로 살펴보는 국내 특별전으로서는 처음인 이번 전시회는 지금까지 이루어진 조사연구의 성과를 바탕으로 ‘황금문화’, ‘능묘’, ‘대외교류’, ‘왕경’, ‘불국토’ 등의 5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부별 전시품으로서 금관총(金冠塚) 금관 등 국가지정문화재 22건 30점을 포함한 600여 점의 다양한 신라 문화재가 선보이며, 특히 국보 제83호 금동 반가사유상이 최초로 경주에 전시됩니다(단, 2주간만 전시: 7.21.~8.2.).



■ 전시 기간: 2015년 7월 21일(화) ~ 11월 1일(일)  ※월요일 휴관

■ 전시 장소: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

■ 후원: 경주시, 경주엑스포조직위원회, 경주박물관회


제1부. 황금문화  

  오늘날의 시각적 표상으로서 신라가 부각된 것은 역설적이게도 일제강점기를 전후한 시기부터였습니다. 근대적 학문인 실증적 역사학과 고고학, 미술사학의 관점에서 신라문화가 재조명되며 ‘문화재’라는 새로운 의미와 가치가 등장하였습니다. 대표적 사례는 1921년 금관의 발견이었습니다. 금관총에서 금관을 비롯해 처음 보는 신라의 황금 유물들이 세상에 불쑥 나타난 것입니다. 이러한 신라의 이미지는 인쇄술과 사진의 발달로 인해 더욱 생생하고 구체적인 모습으로 전달되었습니다. 금관총 금관을 비롯하여 경주 보문동합장분 출토 금귀걸이, 경주 노서동 출토 금목걸이 등 일제강점기에 출토된 신라 황금문화재를 예로 들어 이와 같은 내용을 살펴봅니다.     



제2부. 능묘 

  광복 이후 우리 손으로 시작한 신라능묘의 발굴은 1970년대에 큰 전환기를 맞았습니다. 삼국 통일을 이룬 신라를 정통으로 보는 민족사관을 바탕으로,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가 집중적으로 조명되었습니다. 1973년부터 경주고도개발사업이 추진되면서, 천마총과 황남대총을 비롯한 경주 시내의 대형 능묘들이 발굴되는 등 신라문화에 대한 관심은 가히 폭발적이었습니다. 그 성과는 1974년 10월 대릉원의 개원 그리고 1975년 7월 국립경주박물관의 신축 개관과 함께 공개되면서, 신라 왕릉의 실체와 의의가 세상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보여주는 광복 이후 신라능묘 출토품과 금제 관식, 은제 관모 등 천마총·황남대총의 화려하고 다양한 부장품을 전시합니다. 



제3부. 대외교류   

  1970년대의 발굴 성과를 바탕으로 신라 마립간 시기의 각종 금제품과  돌무지덧널무덤의 연원을 북방 초원지대로 보는 설이 제기되었습니다. 아울러 당(唐), 중앙아시아, 인도에까지 구법승(求法僧)이 오갔던 신라 통일기의 국제적 성격 등도 거론되었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신라문화 연구의 다각화와 함께 그 범위와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음을 환기시켜 주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계림로 14호묘 보검, 황남대총의 봉수형 유리병, 식리총 식리 등을 전시합니다. 또한, 신라 통일기의 활발한 대외교류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경주고등학교 소장의 무인석상이 처음으로 박물관 전시에 선보입니다.  



제4부. 왕경 

  경주 시내의 대형 능묘 발굴이 일단락된 뒤, 신라 왕경의 전모를 파악하기 위하여 다양한 성격의 유적들이 조사되기 시작했습니다. 장기간에 걸쳐 월지(안압지)와 황룡사터 등의 대형 유적이 발굴되었으며, 생활 유적들도 조사되어 왕경의 구조와 특징에 대해 다양한 논의가 촉발되었습니다. 올해부터는 월성 내부의 발굴, 일제강점기에 부실하게 수습되었던 금관총의 발굴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월지의 용얼굴무늬 기와와 보상화무늬 전, 황룡사터의 각종 공예품, 경주박물관 남쪽 부지에서 나온 ‘東宮衙’가 새겨진 단지 등이 전시됩니다. 



제5부. 불국토 

  불교미술품이 학문적 연구 대상이 되고, ‘문화재’라는 가치가 부여된 것도 일제강점기부터였습니다. 불상의 복장품이나 불탑의 사리장엄구를 도굴하여 불법으로 거래하는 나쁜 풍조가 생긴 것도 이 때부터였습니다. 이로 인해 문화재가 파괴되고 그 출처를 알 수 없게 되는 등 그 후유증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5부에서는 신라 불교문화의 융성을 보여주는 불상과 불교공예품들이 전시됩니다. 특히 국보 제83호 금동 반가사유상이 경주에서 처음으로 전시됩니다(전시 기간 7.21.~8.2.). 이밖에 경주 구황동 석탑의 국보 제79호 금제 아미타불좌상(전시기간 8.4.~11.1.), 사천왕사터 출토 ‘東塔西’가 새겨진 금동 장식, 경주경찰서 소장의 부처가 새겨진 탑신석(경주 외동읍 입실리 절터) 등도 주목되는 작품입니다. 이밖에 ‘신라’를 소재로 한 한 이응노, 박대성, 배병우 작가들의 작품도 함께 전시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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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신라의 현재적 의의  

  이 전시를 마무리하며 신라의 현재적 의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서 ‘신라’라는 국호에 주목합니다. 주지하듯 제22대 지증왕(재위 500~514) 때 확정된 ‘新羅’는 ‘德業日新 網羅四方’(덕업이 날로 새롭고, 사방을 망라하다)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덕업일신’은 바로 변화와 개혁 또는 혁신이며, ‘망라사방’은 세계화 또는 글로벌리제이션에 다름 아닙니다. 이처럼 ‘신라’는 오늘날에도 절대적으로 통용되는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이 ‘신라’의 현재적 의의일 것입니다. 

  개관 70주년과 ‘실크로드 경주 2015’를 맞이하여 개최하는 이 특별전이 ‘신라’를 바탕으로 21세기 우리 문화를 융성케 하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을 되새기는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 자료출처 : 국립경주박물관(http://gyeongju.museum.go.kr/)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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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월성동 |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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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부장 ibuzang






광복 70주년을 맞아 첫 번째 "통일기원 문무대왕 문화제"가 8월 14일부터 3일간, 경주시 양북면 문무대왕릉 일원에서 열린다. 천 년 전 일통삼한의 대업을 위해 일생을 바친 대왕의 뜻을 되새겨 볼 수 있는 좋은 행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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