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주남산

서남산,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거대한 자연 바위벽에 새겨진 앉아 있는 모습의 석가여래불로 머리에서 어깨까지는 입체적으로 깊게 조각하였는데, 몸체로 내려올수록 얕은 선으로 조각한 특이한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수법은 고려시대의 마애불(바위의 벽면에 새긴 불상)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조각기법이다. 둥글고 넓적한 얼굴에 반쯤 뜬 눈이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는데, 눈·코·입의 표현이 뚜렷하고 균형이 잡혀 있다. 기다란 귀는 어깨에 까지 닿아 있고 목은 짧다. 불상의 몸은 두 어.. 더보기
서남산, 삼릉계곡 석조여래좌상 얼음골(냉골)이라고 부르는 삼릉계곡의 왼쪽 능선 위에 있는 이 석불좌상은 불상의 높이가 142cm이고 불상이 앉은 대좌의 높이는 96.7cm이다. 불상의 머리 위 정수리에는 큼직한 육계(상투 모양의 머리로 지혜를 뜻함)가 우뚝 솟아 있고 머리칼은 나발(소라껍질처럼 틀어 말린 모양의 머리칼, 곱슬머리)로 세밀하게 조각되어 있다. 풍만하고 둥근 얼굴에 두 귀는 짧게 표현되었으며 목에는 세 개의 주름인 삼도(부처님의 목에 있는 3개의 주름으로 지옥, 아.. 더보기
서남산, 삼릉계곡 선각여래좌상 서쪽을 바라보고 있는 이 불상은 높이 10m가량 되는 바위 면에 가운데 선으로 새겨진 앉아 있는 모습의 여래상이다. 이 여래좌상의 몸은 모두 선으로 그은 듯이 새겨져 있는데 얼굴만 도드라지게 조각한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다. 여래상의 머리는 소발(민머리)이며 좁은 이마에 그려진 백호(부처의 두 눈썹 사이에 있는 희고 빛나는 가는 터럭)는 가늘게 윤곽만 표현되었다. 양쪽 눈은 홈을 파 놓은 듯 간략하게 처리하였는데 눈초리는 추켜올려져 있다. 여래상 뒷.. 더보기
서남산, 삼릉계곡 선각육존불 자연 암벽의 동서쪽 벽에 각각 세 분씩 선으로 새겨진 육존상이다. 그 조각수법이 정교하고 우수하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선각 마애불(절벽의 바위 면에 양각(돋을새김), 음각(오목새김), 선각(선으로 새김) 등의 방법으로 새긴 불교의 조각상을 말한다) 중에서는 으뜸가는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이 마애선각육존상은 만들어진 시대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대체로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보고 있으며, 오른쪽 암벽의 정상에는 당시 이들 불상을 보호하기 위해 법당을.. 더보기
서남산,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 경주 남산의 삼릉계곡에 있는 이 불상(높이 1.5m)은 통일신라 시대의 작품으로, 돌기둥 같은 암벽에 돋을새김으로 조각되어 있다. 불상이 조각되어 있는 바위면 전체를 광배(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 한 것으로 머리에서 나오는 빛을 두광, 몸에서 나오는 빛을 표현한 것을 신광이라고 함)로 삼고, 연꽃무늬 대좌 위에 서 있는 관음보살(세상의 모든 불행과 고통으로부터 사람들을 지켜주고 세상을 구하는 보살, 관세음보살 또는 관자재보살이라고.. 더보기
서남산, 삼릉계곡 석조석가여래좌상 삼릉에서 개울을 따라 계곡으로 약 300m쯤 가면 길 옆 바위 위에 머리 없는 석불좌상이 앉아 있다. 이 불상의 높이는 1.6m이고 양 무릎 너비가 1.56m되는 큰 좌불이다. 이 불상은 1964년 등산객에 의해 발견되어 현재의 위치로 옮겨 놓았는데 원래의 위치는 이곳에서 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불상의 머리는 없어졌으나 목에는 삼도(악인이 죽어서 가는 세 가지의 괴로운 세계 즉 지옥도, 축생도, 아귀도이다)가 뚜렷하게 남아 있고.. 더보기
경주배리 윤을곡마애불좌상 경주시 배동 윤을곡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마애삼존불상으로 서남산 포석정에서 부흥사로 올라가는 남산순환도로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ㄱ자 모양의 바위면에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 불상 2구와 서쪽을 바라 보고 있는 불상 1구가 각각 돋을새김되어 있다. 남산에 있는 수많은 불상 가운데 조각된 연대가 분명하게 밝혀진 불상이다.남쪽을 향한 가운데 불상의 왼쪽 어깨 부근에 새겨진 ‘태화9년을묘(太和九年乙卯)’라는 글자를 통해 신라 제42.. 더보기
창림사지, 신라의 첫 궁궐이 세워지다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남산에 있었던 절로 세워진 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원나라 조자앙의 『동서당집고첩발(東書堂集古帖跋)』에서 “창림사비는 신라 김생(통일신라시대의 서예가)의 글씨로 자획에 전형(典型)이 깊어 당인(唐人)의 명각(明刻)이라도 이를 능가하지 못한다.” 라고 찬양한 글로 미루어 791년(원성왕 7) 이전에 세워진 절임을 알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처음 절이 세워져 고려시대까지 이어져 오다 조선 초에 없어졌다고 한다.『삼국유사』를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