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경주박물관(관장 이영훈)1220()부터 2012212()까지 특별전 고대의 문자를 읽다를 개최합니다.

이번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하였던 문자, 그 이후특별전을 바탕으로 새롭게 재구성한 전시입니다. 고대의 문자를 살펴보면서 역사 자료로서의 의미와 그 맥락, 해석 등을 생각해보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전시는 모두 4부로 구성됩니다1부 한자의 수용에서는 중국의 나라들과 갈등을 겪거나 교류하면서 한자를 접하기 시작하던 모습을 살펴봅니다고조선에서는 중국의 명도전반량전 같은 화폐와 명문 청동기 등을 받아들였습니다한반도 남부의 나라들은 낙랑군과 교류하면서 한자를 받아들였던 것으로 보입니다변한 지배층의 무덤에서는 붓과 목간의 글자를 지우는 손칼 등이 출토됩니다. 

 

2통치의 기록에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왕을 중심으로 한 지배층이 문자를 통치 수단으로 활용하였던 사실을 살펴봅니다. 문자의 사용으로 왕과 지배층의 결정과 명령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삼국은 국가체제를 완비하고 율령을 반포하여 통치의 기준과 근본을 마련하였습니다. 그리고 국가의 중요한 일들을 기록하고 새겨서 후대까지 전하였습니다. 그 실례의 하나로서, 2010년 이백여년만에 재발견되었던 문무왕비편이 공개됩니다.
 
3불교의 기록에서는 불교 유입과 동반하여 문자가 더욱 널리 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불교의 승려는 문자 기록의 한 축을 맡았습니다. 승려들은 중국 문물을 받아들이고 사회에 알리는 구실을 하였습니다. 중국과의 외교 문서 작성이나 역사서 편찬에 참여하였던 승려들은 국제성을 갖춘 지식인이었습니다. 불교 수용과 함께 경전도 많이 유입되고 만들어졌습니다. 경전의 제작은 인쇄술의 발달로도 이어집니다.

4
생활의 기록
에서는 문자가 폭 넓게 활용되면서 생활과 관련된 기록들도 많이 남겨졌음을 살펴봅니다. 지금과 달리 종이는 매우 귀한 물품이었습니다. 일본 정창원에서 발견된 신라 문서는, 행정 문서로서의 기능을 다한 뒤 일본에 수출되는 경전과 기물의 포장재로 재활용되었습니다. 일반적인 내용을 기록할 때에는 종이 보다 나무를 깎아 만든 목간을 더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이러한 목간에는 고대인의 생활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 그 외에도 기와에 새겨진 왕궁이나 사찰의 이름, 토기 등에 적혀진 명문 등 다양한 문자에서 그 사용처와 용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상과 같이 이번 특별전은, ‘고대의 문자를 읽다라는 제목처럼, 옛사람들의 문자 속에 담겨 있는 생각을 읽어내고자 했습니다. 문자는 의사소통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료출처 :  http://gyeongju.museum.go.kr/ 
-보다 자세한 내용은 :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실(054-740-7602)로 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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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박물관은 “조선시대의 경주 지도” 특집진열을 개최합니다. 이번 전시는 9월 27일부터 10월 30일까지 고고관 2층에서 열립니다.
경주는 신라 천년역사의 본고장으로 잘 알려져 있으나,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동쪽의 서울’이란 뜻의 동경(東京)으로 불리며 전통과 자존심을 지켜왔습니다. 특히 조선 후기에 경주를 그린 지도는 조선시대 사람들이 유교적 삶과 가치를 지켜나가면서 전통과 현재를 어떻게 조화시켰는지를 보여줍니다.
전시품은 총 4점입니다. 이 가운데 조선 후기(18세기)에 만들어진 대표적인 회화식 군현지도집(郡縣地圖集)으로서, 전국 지도책인『여도(輿圖)』와 영남대학교박물관이 소장한 경상도 지도책인『영남지도(嶺南地圖)』가 출품됩니다. 이 두 책의 경주부(慶州府) 부분에서 조선시대 경주 지역의 인문지리뿐만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중요시했던 신라의 문화유산이 무엇이었던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동경관(東京館) 현판은 근래 들어 처음 선보이는 전시품입니다. 이 현판은 본래 조선시대 경주 관아(官衙) 안의 객사(客舍)인 동경관에 걸려있던 것입니다. 글씨는 1882년에 경주부윤 정현석(鄭顯奭)이 썼습니다. 지도에서도 주요 시설물로 빈번히 그려졌던 동경관은 나라 안팎의 중요 손님을 맞이하는 공식장소이자, 임금의 위패를 모신 중요한 건물이었습니다. 동경관 현판은 그 옛날 동경관의 웅장했던 모습, 더 나아가 조선시대 경주의 위상을 잘 보여주는 자료입니다.
이 밖에도 조선 후기 경주 지도에 보이는 흥미로운 요소들을 정리하여 사진자료로 제시하고, 오늘날과 비교하여 보전된 것과 변모한 것을 함께 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번 전시가 조선시대 경주 문화의 가치와 중요성을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전시품>

(도1)『여도輿圖』경주부慶州府, 조선 18세기, 채색필사본, 34×32cm, 국립중앙박물관
(도2)『영남지도嶺南地圖』경주부慶州府, 조선 18세기 중엽, 채색필사본, 32.5×23.3cm, 영남대학교박물관
(도3)『여지도輿地圖』경상도慶尙道, 조선 19세기 전반, 목판본, 29.5×18.5cm, 국립경주박물관
(도4) 동경관東京館 현판, 조선 1882년, 74×210×4cm, 국립경주박물관

자료출처 : 국립경주박물관(http://gyeongju.museum.go.kr/)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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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박물관은 9월 27일(화)부터 10월 30일(일)까지 두 번째 신라능묘 특별전으로서「경주 보문동합장분-96년 만에 쓰는 발굴보고서-」를 개최합니다.

경주 보문동합장분(普門洞合葬墳)은 지금으로부터 96년 전인 1915년에 조사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보문리부부총(普門里夫婦塚)’이라고 명명되었으며, 적석목곽과 석실의 공존, 화려한 금귀걸이(국보 90호)의 존재 등으로 일찍부터 주목 받아온 신라능묘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간략히 소개된 사진 자료 외에는 그 전모를 알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일제강점기 때 조사된 신라 무덤들이 많습니다만, 발굴보고서가 간행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이러한 미공개 자료들을 하나씩 정리하여 발굴보고서를 발간하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물의 하나로서 보문동합장분의 발굴보고서를 발간함과 동시에 특별전을 열게 되었습니다.

96년 만에 발굴보고서를 쓰는 과정에서 이 무덤은 부부가 묻힌 ‘부부총’이 아니라 두 명의 여성이 묻힌 무덤임을 재확인하였습니다. 따라서 무덤의 이름도 ‘보문동합장분’이라고 고쳐 지었습니다.

전시 내용은 발굴보고서의 ‘요약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시실 중앙에 적석목곽과 석실 내에 안치하였던 목관의 공간을 구획하여 당시의 부장 상황을 재현합니다. 국보 제90호로 지정되어 있는 금귀걸이의 비교 자료로서 양산 금조총(金鳥塚) 출토의 금귀걸이도 함께 선보입니다.

앞으로도 정식 보고서가 발간되지 않은 주요 신라능묘들을 대상으로, 보고서를 발간하고 특별전을 마련하여 신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나가는 작업을 계속하고자 합니다.

<참고 사진>



자료출처 : 국립경주박물관(http://gyeongju.museum.go.kr/)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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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박물관은 3월 1일(화)부터 5월 15일(일)까지 ‘베트남 마지막 황실의 보물’ 특별전을 개최합니다. 2011년 두 번째로 마련한 이번 전시는 서울의 국립고궁박물관에서도 열렸던 전시로서,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베트남 응우옌 왕조(Nguyen, 阮/ 1802~1945)의 문화유산을 본격적으로 접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응우옌 왕조는 현재와 같은 베트남의 영토를 이룩한 최초의 나라이자 마지막 왕조입니다. 응우옌 왕조의 수도였던 후에(Hue) 지역에는 유서 깊은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수많은 유적과 유물이 존재합니다. 이번 전시는 응우옌 왕조 문화를 대표하는 유물 중 황태자 보좌, 황제 칙서, 분재 장식 등 화려한 황실의 생활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후에궁정박물관의 소장품 165점과 함께 응우옌 왕조의 역사 유적지를 각종 영상자료로 선보입니다.

우리나라와 베트남은 유교와 한자 문화권에 속하고, 수 천년 동안 중국과 접촉하면서도 고유하고 독창적인 문화를 창조했으며, 제국주의의 침략, 남북 분단의 아픈 역사를 경험하는 등 여러 면에서 공통점이 많습니다. 또한 이번 전시가 열리는 경주시는 후에시와 마찬가지로 전통 왕조의 수도로서 번성했던 역사문화도시입니다. 경주에는 석굴암과 불국사, 경주역사유적지구, 양동마을 등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 있으며, 후에시도 1993년 황릉을 비롯해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바 있습니다. 이러한 공통점을 바탕으로 2007년 9월부터 경주시와 후에시는 자매결연을 맺고 활발히 교류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베트남 응우옌 왕조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 경주시와 후에시의 활발한 교류와 우호 증진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아울러 관람객의 이해를 돕기 위한 특별강연이 3월 3일 오후 2시부터 국립경주박물관 강당에서 열립니다. 이번 특별강연은 전시품을 소장하고 있는 후에궁정박물관의 응우옌 푸옥 하이쭝(Nguyen Phuoc Hai Trung) 관장이 직접 후에의 문화와 응우옌 왕조의 보물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로서, 베트남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강연에 참석하고자 하시는 분들은 국립경주박물관 누리집 ‘이달의 행사(교육 프로그램)’에 접수하시면 됩니다.
참여신청: http://gyeongju.museum.go.kr
문의: 054-740-7542

황태자 보좌



















황태자 보좌
皇太子寶座
19세기
나무에 붉은 칠
전체 : 51.0×59.0×95.1cm

전체에 주칠하고 중요한 장식 문양 부분에는 금칠이 되어 있는 목제 어좌이다. 등받이 상단에는 화염에 둘러싸인 태양과 향로 모양의 수壽자문이, 등받이 하단에는 두 마리의 박쥐가 물고 있는 원형의 수壽자문이 상하단에 새겨져 있고, 양 팔걸이에는 "만卍" 자형 문양과 넝쿨문을 그려 넣고 끝부분에 여의주를 입에 물고 있는 용을 투조하였다. 좌석의 테두리는 만卍자문과 베트남 전통 문양인 레몬꽃과 팔보八寶 문양이 금칠로 그려져 장식되어 있다. 하단부의 둘레에는 사자, 봉황 문양 등이 조각되어 있으며 다리는 용의 얼굴로 장식하였다. 이 어좌는 실생활에서 사용하려는 용도가 아닌 황태자의 상징물로서 제작된 것이다.

분재 장식





















분재형 장식
盆栽形裝飾
19세기
금속
높이 55.0cm

응우옌 황실 전각의 내부를 장식했던 분재 화분형 장식이다. 금칠한 나무 가지에 옥과 산호로 만든 매화 꽃, 복숭아 꽃과 난초, 영지버섯이 정교하게 장식되어 있다. 화분의 네 면에는 푸른 바탕에 장수를 뜻하는 '수壽'자를 중심으로 박쥐문, 모란문 등 수복壽福을 뜻하는 문양으로 장식하였다. 이 분재 장식은 표현된 방식을 그대로 일컬어 "금지옥엽金枝玉葉"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응우옌 황실의 정전正殿인 태화전의 외벽에는 황제가 직접 "금지옥엽"을 소재로 지은 시가 쓰여져 있다.

칙명지보






황제 칙서
皇帝勅封
1885(동카인 1)
종이에 먹
50.5×130.0cm

동카인 황제 원년에 수도 후에 근교에 위치한 흐엉짜(Huong Tra, 香茶)현 하이깟(Hai Cat, 海葛)사원에 봉안된 토착신 즉바오(Duc Bao, 翊保)에게 내린 칙서이다. 황제가 혼짼(Hon Chen, 魂戰)사원의 티엔이아나(Thien Y A Na, 天依阿那) 여신을 비롯한 주요 토착신에게 반급頒給을 내린 이후, 죽바오의 지위를 상중등신上中等神으로 격상시키니, 여러 신령들과 협력하여 나라를 보호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죽바오는 원래 18세기 레 왕조 말기의 고위관료의 부인으로, 본명은 쩐티다오(Tran Thi Dao)이다. 평소 자선을 베풀고 흐엉짜현의 타인똰(Thanh Toan) 마을의 교량건설에 자금을 기부한 공로로 사후에 신령으로 모셔졌다. 이 칙서는 황제만이 사용할 수 있었던 용무늬의 종이인 용승지龍謄紙로 제작되었으며, 말미에 황제의 "칙명지보勅命之寶"가 날인되어 있다. 베트남의 토착 신앙과 황실과의 독특한 관계를 보여주는 문서이다.

-자료출처 : 국립경주박물관(http://gyeongju.museu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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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능묘 특별전1 황남대총
신라王, 왕비와 함께 잠들다.
THE ROYAL TOMB OF SILLA
HWANGNAMDAECHONG, GYEONGJU

전시기간: 2010년 12월 14일(화) - 2011년 2월 6일(일) 매주 월요일 휴관
장소: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


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신라 능묘 특별전 1 황남대총 ‘신라왕, 왕비와 함께 잠들다’를 12월 14일부터 2011년 2월 6일까지 개최합니다.
경주 시내에 자리잡고 있는 황남대총은 신라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 중 최대급에 해당하는 왕릉이며, 왕의 무덤에 왕비의 무덤을 덧붙여 만든 쌍무덤, 즉 표형분(瓢形墳)입니다.
1973년에 발굴조사된 황남대총은 금관(국보 191호)과 금허리띠(국보 192호), 신라 무덤에서 출토된 유일한 은관(보물 631호) 등 다량의 국가지정문화재(국보 4건, 보물 10건)를 포함한 58,00여점의 유물이 출토된 최고의 왕릉입니다. 또한 고구려, 중국, 일본, 서역 등 다양한 지역으로부터 들어온 청동제품, 흑갈유병, 조개류, 유리제품 등은 마립간시기 신라의 왕성한 국제 활동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기도 합니다. 그 중 황남대총 북분에서 출토된 금관과 금허리띠는 1973년 발굴 이후 일련의 조사과정을 마친 뒤 국립중앙박물관의 대표적인 유물로써 전시되어 국내는 물론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관람객에게 선보였습니다.
이번 신라 능묘 시리즈의 첫 번째로 마련된 황남대총 특별전은 36년 만에 처음으로 경주를 찾은 황남대총 북분 금관과 금허리띠를 비롯한 5만 여점의 황남대총 유물을 최초로 한자리에 모은 전시입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황남대총 북분과 남분의 주인공이 잠들어 있던 목관의 출토상태를 재현하고 남분의 부곽 및 돌을 쌓아올리는데 지지대 역할을 한 목조가구시설을 재현함으로써 왕릉의 거대한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또한 북분과 남분 내의 출토 구역별로 나누어 유물을 전시함으로써 신라 왕릉급 돌무지덧널무덤내에 출토 위치에 따른 의미를 파악하고자 합니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신라 능묘 중에서 왕릉을 주제로 마련한 첫 번째 특별전인 황남대총을 시작으로 신라 중심 묘제(墓制)인 돌무지덧널무덤을 알기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자 합니다. 이와 동시에 고대 신라, 신라 왕의 권위와 힘을 느낄 수 있는 상징과 화려함을 수많은 유물을 통해 직접 보게 함으로써 여러분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계기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자료출처 : 국립경주박물관(http://gyeongju.museu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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