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경주박물관과 ()백제세계유산센터, 특별전 세계유산 백제개막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유병하)과 백제세계유산센터(이사장 남궁영)백제역사유적지구의 세계유산등재를 기념하여 37일부터 57일까지 9주에 걸쳐 특별전 <세계유산 백제>를 개최합니다. 공주로 천도한 475년에서 멸망하는 660년과 부흥운동이 일어나는 663년까지 금강을 요람으로 하여 공주와 부여에 도읍하였던 약 2백년간의 역사를 왕도인 공주와 부여, 또 별도였던 익산으로 나누어 전시합니다. 앞서 열린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가 도성·사찰·능묘로 나눈 생활사 중심의 전시였다면, 국립경주박물관의 전시는 공주·부여·익산 지구를 다시 8개 지구로 나누어 도시의 특성과 경관에 초점을 맞추어 전시합니다. 또 신라 왕경에서 열리는 첫 백제 전시인 만큼, 신라 문물과의 비교적 시점에서 조망할 예정입니다. 특히 부여 출토 대형 치미와 광배 등 팔백여점의 유물을 전시함으로써 백제문화의 위용과 함께 백제칠기·백제정원 등을 조명합니다.



곰나루 웅진

1475-538 웅진시대의 도읍, 곰나루 웅진(熊津)에서는 고구려에 밀려 급작스럽게 공주로 천도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30여 년간 존속한 왕도를 조명합니다. 이 시기 백제는 신라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웅진시대 왕들의 무덤인 공주송산리고분군에 대해 무령왕릉 출토품을 중심으로 살펴봅니다. 왕의 관식(冠飾), 무령왕지석(誌石)과 글자새긴 은팔찌와 전돌을 통해 화려했던 웅진 백제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남조 도자와 금송으로 만든 관재(棺材)를 통해 중국 남조(南朝) 및 왜(倭)와의 활발했던 교류 양상을 설명합니다. 백제 무령왕릉 출토 금제모자형장식과 신라 금관총 출토 귀걸이에는 공히 고도의 누금(鏤金)기법이 보입니다. 근년 발굴을 통해 왕성일 가능성이 농후해진 공산성에 대해 주칠(朱漆)문자가 쓰여진 옻칠갑옷을 비롯하여 목기류와 기와를 전시합니다. 특히 옻칠갑옷의 연대 645년에 주목하여 웅진시대가 종료되고 왕도가 사비로 옮겨간 뒤에도 웅진성이 중요기능을 하고 있었으며, 이 고구려를 정벌하기 위해 대규모 원정을 단행하는 등 상황에서 백제 역시 긴박하게 당에 대한 대비와 교류를 병행하였음을 설명할 예정입니다.

무령왕릉 출토 묘지석(사진 : 국립경주박물관)



소부리 사비

2538-660 사비시대의 도읍, 소부리 사비(泗沘)에서는 계획도시 사비의 면모를 전시합니다. 정동리 전돌과 관북리 대통(大通) 글자 인장와를 통해 538년 천도하기 이전부터 부여에서 도시건설이 이뤄지고 있었음을 이야기하고, 부(部)관련 글자가 있는 기와와 목간, 석문(石文)으로 왕경의 행정구역 5부를 설명합니다. 이는 신라 왕경이 탁부(喙部)를 비롯 토착적 지연집단의 6부 구성이었던 것과 확연히 비교됩니다. 관북리 건물지 출토 기와류를 통해 왕궁터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으며, 부소산성 출토 금동광배와 무기류는 왕궁의 배후 방어성으로서 위용을 이야 기해준다. 정림사 출토 소조불과 대당평제비탁본으로 정림사가 사비왕경의 중심광장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쌍북리 출토 구구단 목간을 매개로 백제 사람들도 구구단을 실생활 곳곳에 활용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능산리사지 출토 금동대향로(복제) 등과 능산리고분군 출토 관못과 관장식을 통해 이 시기 왕실 장례문화와 금속가공 기술을 엿볼 수 있습니다. 황룡사지 출토 6세기 전반 이른 시기 신라 수막새의 연꽃무늬는 사비 왕경 출토 백제 수막 새와 흡사합니다.

부소산성 출토 금동광배(사진 : 국립경주박물관)

 


지모밀지 금마저

3장 또 다른 도읍, 지모밀지(枳募蜜地) 금마저(金馬渚)에서는 익산 미륵사지와 왕궁리유적, 쌍릉 출토품을 전시합니다. 미륵사지 서석탑 출토 사리병과 탑 건립의 내력을 기록한 사리봉영기(舍利奉迎記), 왕실과 귀족의 각종 공헌물은 화려했던 7세기 후반 백제 문화를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줄곧 왕도를 옮기지 않았던 신라와 달리, 백제는 여러 차례 왕도를 옮기면서도 각지에서 색다른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익산 미륵사지 출토 사리봉영기(사진 : 국립경주박물관)

 


신라문화에의 영향

643년 신라 황룡사 건설을 위해 백제 공인 아비(阿比)가 건너갔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872년 중수하면서 새겨넣은 황룡사찰주본기의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황룡사 출토 7세기대의 기와 등을 통해 그와 같은 백제와 신라 문화 교류의 모습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7세기 전반 백제 무왕은 서동(薯童)으로 불리던 젊은 시절 신라 선화공주와의 로맨스가 삼국유사에 전합니다.

7세기 중엽 신라의 삼국통일 직후의 것으로 보여지는 경북 칠곡 송림사 전탑 출토 장식품은 백제 귀족의 은화관식을 모티브로 하여 신라적 요소를 가미하였습니다. 7세기말 작성된 신라촌락문서는 7세기 초반 나주 복암리 백제목간에 보이는 호적 기재 방식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편 황룡사지 출토 옥, 금동허리띠장식, 경주 감은사 출토 사리기중 유리병, 황남대총 출토 금귀걸이 등 신라문물은, 공주 무령왕릉 출토 왕관식과 옥장식, 익산 미륵사지와 왕궁리 출토 유리병과 구슬 등 백제 문화와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백제와 신라 양국은 정치적 대립 속에서도 꾸준히 문화와 인적 교류를 이어나갔습니다. 백제가 멸망한 후에도 그 문화는 신라 문화 속에 살아 이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백제 문화를 특화하여 설명, 영상자료를 활용

백제는 양(梁)의 선진건축술을 수용하고 와박사(瓦博士)제도를 두어 기술자를 우대했습니다. 부여 쌍북리와 공산성에서 보는 백제칠기문화, 왕궁리유적의 정원석을 토대로 백제정원문화를 특화하여 조명합니다. 드론촬영한 공주, 부여, 익산의 8개 유적을 조망하는 대형 영상을 비롯, <백제금동대향로><서동요> 등 총 5개의 영상을 곁들여 전시의 이해를 돕습니다.


※ 자료출처 : 국립경주박물관 홈페이지(http://gyeongju.museu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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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인왕동 76 |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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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부장 ibuzang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유병하)특별전 <아프가니스탄의 황금문화>927일부터 1127일까지 특별전시관에서 개최한다. 이번 특별전은 국립아프가니스탄박물관의 소장품 223건을 중심으로 고대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전시이다.

이란 고원 동북단에 위치한 아프가니스탄은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이란, 파키스탄 등에 둘러싸인 내륙 국가이다. 지형적으로 유라시아 대륙의 한가운데 위치한 이 지역은 서쪽의 유럽, 동쪽의 중국, 남쪽의 인도를 연결하는 문명의 교차로이자, 실크로드의 요충지였다. 토착적 요소와 외래적 요소가 상호 융합하여 탄생한 아프가니스탄의 고대 문화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변 지역의 문화 연구에도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이번 전시는 크게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테페 푸롤(Tepe Fullol), 아이 하눔(Ai Khanum), 틸리야 테페(Tillya Tepe), 베그람(Begram) 등 네 곳의 유적지를 시기별 흐름에 따라 소개한다.


1에서는 기원전 2천년 경 청동기시대 유적인 테페 푸롤을 소개한다. 해발고도 3천 미터가 넘는 험준한 산에 둘러싸인 이 지역은 비옥한 경작지이자, 청금석의 주요 교역지로 큰 번영을 누렸던 곳이다. 1966년 지역민이 우연히 발견한 금은기로 유적의 실체가 밝혀졌는데, 상당량이 소실되어 출토지 정보가 부족한 편이다. 현재 출토된 황금잔의 기하학 무늬와 동물의 표현 등에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나 인더스 문명과의 교류를 짐작해 볼 수 있다.


2에서는 기원전 4세기 마케도니아의 군주 알렉산드로스의 동방원정 이후 세워진 아이 하눔 유적을 소개한다. 옥수스 강(오늘날 아무다리야 강) 유역에 위치한 이 도시 유적에서는 신전, 궁전, 경기장, 도서관, 반원형 극장 등 그리스 도시의 전형적인 요소들뿐만 아니라 그리스 문자나 신화의 내용도 고스란히 발견되었다. 인도에서 난 상아로 만든 전래품도 발견되어 이 지역의 국제성을 보여준다. 건축에서는 페르시아적 요소가 사용되는 등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를 혼합한 헬레니즘 문화의 특징을 보여준다.


3에서는 황금의 언덕이란 뜻의 틸리야 테페 유적과 황금 문화유산인 그 발굴품을 소개한다. 1978년 소련의 고고학자 빅토르 사리아니디(Viktor Sarianidi)의 발굴로 세상에 드러난 이 유적은 당시 이집트의 투탕카멘 발견에 버금가는 중요한 성과로 주목받았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틸리야 테페 유적에서는 왕으로 생각되는 남성 무덤을 가운데에 두고 주위를 둘러싼 5명의 여성 무덤에서는 화려한 금관을 비롯하여 세밀하고 정교한 금제 장식들이 발굴되었다. 기원후 1세기경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박트리아의 황금이라 불리는 화려한 금제 부장품들은 당시 유라시아의 중심에서 활약했던 유목민들의 광범위한 교역 활동을 보여준다. 이들의 국제적이고 다양한 문화에는 그리스, 로마, 중국, 인도, 스키타이-시베리아 등 매우 폭 넓은 문화적 요소가 내재되어 있다. 특히 6호 무덤에서 여성이 쓴 채로 출토된 금관은 일찍이 신라 금관의 기원 연구 등에서 큰 관심을 받아 온 것으로 이번 전시에서 특히 주목받는 전시품이다.


Phase One | H 20

<금관1세기, , 틸리야 테페 6호묘 출토(사진 : 국립경주박물관)


4에서는 쿠샨 왕조의 여름 수도로 번영했던 베그람 유적을 소개한다. 베그람은 7세기 중국의 승려 현장이 기록한 카피시국의 도읍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1세기경으로 추정되는 궁전터에서 많은 양의 유리기, 청동기, 석고, 칠기 등 다채로운 문화유산이 출토되었는데, 각각 인도, 로마, 그리스, 이집트, 중국 등의 영향을 보여준다. 실크로드와 해상무역으로 번영했던 도시의 모습에서 활발했던 동서 문물 교류의 상황을 살펴볼 수 있다.


Phase One | H 20

<유리병1세기, 유리, 베그람 10호방 출토(사진 : 국립경주박물관)


또한 이번 전시 마지막 공간에는 유네스코 아프가니스탄지부와의 협조로 특별사진전 아프가니스탄의 자부심<TheAfghanistan we are proud of>”의 출품작을 소개하여 아프가니스탄의 과거, 현재, 미래를 거시적으로 조망하는 공간을 마련하였다.

 

아프가니스탄의 보물을 소개하는 이 전시는 2006년 파리의 기메박물관을 시작으로 워싱턴의 내셔널 갤러리, 뉴욕의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런던의 영국박물관, 일본 도쿄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등 지금까지 12개국을 순회하며 19개 기관에서 순회전이 개최되었다. 국립경주박물관은 국립중앙박물관(2016.7.5.~9.4.전시)에 이어 20번째 개최 기관이다.

 

파란 많은 현대사를 거치면서도 아프가니스탄인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낸 그들의 귀중한 문화유산들은 오늘날 폐허의 잔해 속에서도 국립아프가니스탄박물관 입구에 걸려 있는 문구(“그 문화가 살아 있어야 나라가 살아남을 수 있다”)와 함께 전시를 찾는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927일에서 1127일까지 휴관 없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일시/장소: 2016.9.27.()~2016.11.27.()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

전시품: 국립아프가니스탄박물관 소장 틸리야테페 유적 출토 금관 등 2231404

주 최: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국립아프가니스탄박물관

후 원: 경주시, 경주박물관회

협 조: 내셔널 지오그래픽, 유네스코 아프가니스탄지부

※ 자료출처 : 국립경주박물관 홈페이지(http://gyeongju.museu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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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인왕동 76 |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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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부장 ibuzang

국립경주박물관(학예연구실장 김유식) 426일부터 619까지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수집품특별전을 개최합니다.

국립경주박물관 소장품 가운데는 일제강점기(1910~1945) 일본인들이 수집한 한국중국일본 관련 문화재 1,3022,653(금속519, 도토제1,236, 서화695, 기타203)이 있습니다. 이 문화재의 일부는 광복 직후 일본으로 불법 반출시키지 못하고 박물관으로 입수되었으며, 일부는 1963년 광복 당시 숨겨두었던 비밀 창고가 발견되어 박물관으로 옮겨져 접수품으로 등록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번 특별전은 도자기’, ‘회화’, ‘중국 청동용기’, ‘보존과학일제강점기 복제된 우리문화재등 모두 5부로 구성하여 우리나라의 고려청자, 근대회화, 중국의 고대 예기 등 200여 점과 광복 이후 입수현황을 알 수 있는 관련 문서 등을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합니다. 또한 일제강점기 당시에 수리 및 복원된 문화재를 전시하여 20세기 초의 박물관 기능과 보존처리 기법도 함께 소개합니다.





1. 도자

19세기 초 개성 밭에서 우연히 발견된 고려청자를 계기로 일본인은 고려청자 구입에 돈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조선총독부 초대통감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고려청자 수집광이었고 이왕가박물관을 설립한 고미야 미호마쯔(小宮三保松) 역시 집안 가득 문화재를 수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광복 후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 등 일본인 3명으로부터 접수해 국립경주박물관에 입수된 도자는 모두 574점입니다. 이 중 우리나라의 고려청자조선백자분청사기청화백자와 중국 서진시대 청자북송시대 월주요 청자자주요 백자 및 일본의 20세기 초 유행한 이마리도자라쿠양식 도자 등 103점을 전시합니다.




2. 서화

조선시대는 건국초기부터 도화원圖畵院이 설치되어 사대부와 화원들이 당시 회화의 발전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화원화가의 전통은 조선후기 한국적인 정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정선의 진경산수, 김홍도와 신윤복의 풍속화 등이 탄생하는 밑거름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은 식민정책을 강화하기 위하여 조선미술을 독창성 없는 중국의 아류로 보려는 풍조가 지배적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중국화풍을 따른 이인문과 심사정의 정형산수화를 더 애호하였고, 일본의 우키요에와 유사한 화조도나 풍속화 수집에 치중하였습니다. 또한 일본서화의 경우에는 에도시대 이후 인물도와 화조도를 포함하여 서양화법이 가미된 풍경화 수집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이밖에도 제국주의 정책을 옹호하기 위해 그려진 불화를 다수 수집하였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당시 이러한 일본인의 미술품 애호 성향이 반영된 서화 15점이 공개됩니다.




3. 중국 청동용기

중국 청동용기는 제작된 시기에 따라 청동예기靑銅禮器와 방고청동기仿古靑銅器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청동예기는 중국 상주시대商周時代(기원전16세기~기원전771)부터 한대漢代(기원전206~기원후220)까지 제작되었습니다. 고대 중국의 황실과 귀족들이 제사, 연회, 전쟁 등 의식을 거행할 때 사용한 용기로 사용자의 지위와 신분, 권력에 따라 엄격한 제한이 있었습니다. 용도에 따라 음식 담는 그릇(食器), 술 담는 그릇(酒器), 물 담는 그릇(水器)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방고청동기는 북송北宋(960~1127)부터 청대淸代(1644~1911)까지 제작된 고대 청동예기의 모방품입니다. 당시 일본인들은 우리나라 문화재 이외에 중국문화재도 다수 수집하였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들이 수집한 중국 청동용기 53점을 소개합니다.




4. 보존과학

보존과학 전시는 문화재보존을 이해하고 문화재를 과학의 눈으로 다시 살펴보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마련하였습니다. 2016년은 박물관 6대 기능에 속하는 보존保存이 국립박물관에서 그 역할을 시작한지 40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번 특별전 전시품들이 수집되었던 일제강점기당시의 보존기술에 주목하여 현대의 보존기술과 비교해보고자 하였습니다. 문화재의 보존에 얽힌 이야기와 과학의 시선視線으로 관찰하면서 문화재와 보존과학을 새롭게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5. 일제강점기에 복제된 우리문화재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한 전경주 입실리 출토 청동기 5점은 1970년대 경주박물관에 근무한 이건무 전국립중앙박물관장에 의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의 복제품이라는 사실이 판명되었고, 2007년 학술발표에서 일반에 소개되었습니다. 입실리 출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은 1920년 동해안 철도공사 중 발견되었다가 산일散逸된 것으로 조선총독부박물관이 1921년 일본인 모로가 히데오(諸鹿央雄)에게 구입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복제품의 정확한 출처와 복제 목적 등을 알 수 없었습니다.

박물관은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본책 고고학관계자료모형도보考古學關係資料模型圖譜(1931)’고고학관계자료모형목록考古學關係資料模型目錄(1930)’의 존재를 확인하였고, 검토 결과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복제품들은 일제강점기 교토제국대학(京都帝國大學) 교수 하마다 고사쿠(濱田耕作)가 추진한 동서양 중요문화재 모형제작프로젝트의 결과물(230여점) 중 일부이며, 모형 제작은 교토에 위치한 우에노제작소(上野製作所)에서 진행하였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고고학관계자료모형도보실물을 공개하며, 경주 입실리 출토 진품 청동기와 복제품을 비교 전시합니다. 또한 이 책에 수록된 전충남출토 동경(접수546) 복제품 1점도 함께 전시하여 그 동안 의문으로 남았던 이들 복제품들의 출처와 성격을 소개 합니다.

 

이번 특별전은 광복 이후 국외 반출 위기에 직면했던 우리 문화재를 포함한 국외 문화재를 우선적으로 공개하는 자리로 일본인이 수집하였던 접수품에 대한 기초조사 결과를 적극적으로 알리고자 하는 차원에서 마련되었습니다. 이번 특별전을 계기로 지속적인 연구와 자료 보완 작업을 진행하여 연차적으로 접수품 자료집을 발간할 예정입니다.


 자료출처 : 국립경주박물관 홈페이지(http://gyeongju.museum.go.kr/)


전시 기간: 2016426() ~ 619() 월요일 휴관

전시 장소: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

 

 

이 자료에 대하여 더욱 자세한 내용을 원하시면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실 연구사 오세은(054-740-7539)에게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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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인왕동 76 |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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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부장 ibuzang

국립경주박물관은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이하여 20151222일부터 2016221일까지 일본의 고훈[古墳]시대를 조망하는 특별전 일본의 고훈문화를 개최합니다. 일본 나라국립박물관의 특별협력으로 이루어진 이번 전시회는 일본 내 9개 기관에서 출품한 380점의 문화재를 전시합니다. 이 가운데 일본의 국보가 29점이며 중요문화재 는 197점입니다. 아울러 당시 한일 교류의 일면을 보여주는 우리 문화재 20점이 비교자료로서 함께 선보입니다.



고훈은 한자어 古墳의 일본어 발음입니다. 고분(古墳)이라 하면 옛무덤을 뜻하는 말이지만, 일본 고고학에서 고훈은 고대에 조성된 대형 무덤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고훈들이 집중적으로 조성되었던 시대를 고훈시대라고 부릅니다. 3세기 중엽부터 6세기 후반까지에 해당하는 고훈시대는 이전의 조몬[縄文]시대와 야요이[彌生]시대 등의 선사시대를 지나 이후의 아스카[飛鳥]시대, 나라[奈良]시대 등의 역사시대로 넘어가는 다리입니다.

당시 일본은 선진문화를 받아들이기 위하여 신라 가야 백제 등과 활발히 교류했습니다. 따라서 고대의 우리 문화가 일본열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당시의 일본열도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국내에 소개하는 자리는 매우 드물었습니다. 단편적으로 다룬 적은 있지만 고훈시대 전반을 살펴보는 전시는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 전시회는 고훈시대를 전반적으로 조망하는 국내 첫 특별전으로서, 고훈시대의 대표적 유적과 그곳에서 발견된 출토품을 시대의 흐름에 따라 3부로 구성하여 선보입니다.



1부 히미코[卑彌呼]의 유산, 고훈의 등장: 고훈시대 전기

고훈시대를 연 여왕 히미코[卑彌呼]를 소개하고 야마타이국[邪馬臺國]의 중심지로 추정되는 나라현[奈良縣] 마키무쿠[纏向]유적의 출토품과 나라현의 구로즈카[黑塚]무덤, 도다이지야마[東大寺山]무덤, 메스리야마[メスリ]무덤 등의 부장품들을 전시합니다. 귀신을 받들어 사람들을 통솔했다는 종교적 지도자 히미코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청동거울과 돌팔찌 등 주술적 의미가 담긴 부장품을 볼 수 있습니다.



2부 대형 무덤과 하니와의 세계: 고훈시대 중기

고훈시대를 통틀어 가장 큰 무덤을 만들었던 시기입니다. 청동거울의 수가 줄며 돌팔찌도 거의 사라지는 대신 갑옷과 투구가 등장합니다. 이는 지배자의 성격이 종교적 지도자로부터 철기를 생산해 강한 무력으로 통치하는 군사적 지도자로 변화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정황을 보여주는 전시품으로서 철제 도구를 만드는 데 썼던 단야구(鍛冶具)가 출토돼 주목을 끌었던 나라현의 고조네코즈카[五條猫塚]무덤의 부장품과 철제 갑옷의 발달을 보여주는 시가현[滋賀県] 신가이[新開] 1호무덤의 부장품이 선보입니다. 신라계 이주민의 무덤으로 알려진 나라현의 니자와센즈카[新澤千塚] 126호무덤에서 출토된 금동장신구들은 당시 활발했던 신라와 왜의 교류를 보여 줍니다.

대표적 전시품으로서, 무덤의 주위와 봉분에 배치하였던 일종의 토기인 하니와[埴輪]도 선보입니다. 하니와는 고훈문화를 대표하는 독특한 기물로서 매장의례시 공양물을 담는 항아리와 그릇받침에서 기원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원통형이었으나 5세기 이후에는 인물, 동물, 기물, 건축물 등 여러 가지 형태의 하니와가 나타났습니다. 하니와는 문자 자료가 거의 없는 고훈시대의 생활상을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됩니다.



3부 사라지는 고훈: 고훈시대 후기

고훈이 점차 사라지는 시기의 부장품을 전시합니다. 나라현의 바쿠야[牧野]무덤, 다마키시로[珠城山]무덤, 후지노키[]무덤의 매장 주체부는 모두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입니다. 이러한 굴식돌방무덤은 백제로부터 일본에 전해진 것입니다. 이 시기를 보여주는 전시품으로서 신라와 가야의 토기 제작술을 도입해 만든 스에키[須惠器]와 기마문화를 보여주는 말갖춤[馬具] 등이 선보입니다. 특히 후지노키무덤의 금은으로 장식한 장신구와 말갖춤들이 눈에 띕니다. 이는 금은세공품으로 신분을 과시했던 후기 지배자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이러한 고훈은 왕권의 강화, 장례 의식의 변화 등에 따라 점차 그 의미를 상실하고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습니다. 특히 불교를 수용하게 됨에 따라 고훈을 축조했던 역량은 사찰을 만드는 쪽으로 옮겨 갔습니다.


죽은 지배자로부터 권력을 물려받는 장소이자 선진 문물의 확보를 위한 지역 연합의 상징인 고훈, 전세계의 기념비적 무덤들과 마찬가지로 지배자의 권력을 과시하는 동시에 죽은 지배자로부터 권력을 물려받는 상징적 공간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고훈을 축조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무덤 안에는 주인공의 죽음뿐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삶이 들어 있습니다. 따라서 고훈은 오늘날 일본 고대문화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철기, 갑옷, 말갖춤, 토기, 금공품 등 각종 부장품에는 활발했던 한일 교류의 흔적도 남아 있습니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고대의 한반도와 일본열도에 살던 많은 사람들이 서로 오갔고 그들이 남긴 문화유산은 이후 양국 문화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이 특별전이 한국과 일본을 더욱 친근하게 이어주는 다리가 되어, 한일 교류의 우호적 미래를 열어 가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기간: 20151222() ~ 2016221() 매주 월요일 휴관

장소: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

자료출처 : 국립경주박물관(http://gyeongju.museu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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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월성동 |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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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부장 ibuzang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이영훈)조선시대 경주의 역사와 문화, 당시 사람들의 생활과 사상, 정서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특별전 917()부터 1110()까지 개최합니다. 


신라의 수도(首都)로서 천년 동안 번영을 누렸던 경주는 고려시대에 들어와 하나의 지방도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동쪽의 서울을 뜻하는 동경(東京)’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나라의 매우 중요한 고을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러한 오랜 역사적 전통과 위상은 조선시대에도 이어져 경주에서는 또 다른 천년의 문화가 꽃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려와 조선시대의 경주는, 신라시대의 경주에 가려져 그다지 주목받지 못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경주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듯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은 고려시대는 물론이거니와 조선시대를 살았던 경주 사람들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이러한 점을 인식하여 신라 이후의 경주를 재조명하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그 작업의 일환으로서 조선시대의 경주에 대한 특별전을 처음으로 개최합니다.

조선시대 경주 사람들은 신라의 수도였던 역사적 전통을 바탕으로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나갔습니다. 자신의 고장인 경주를 특별히 동경(東京)’, ‘동도(東都)’라고 즐겨 불렀던 사실은 경주 사람들의 자부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번 전시에는 이러한 조선시대 경주의 역사와 문화, 당시 사람들의 생활, 그리고 그들의 생각과 정서를 보여주는 180여 점의 문화재가, ‘조선의 동쪽 서울, 경주’, ‘경주에 살다’, ‘학문과 사상이 꽃피다’, ‘신라의 전통을 이어가다’, ‘싸워서 나라를 지키다’, ‘불교문화를 다시 일으키다’, 등 모두 6개의 주제로 나뉘어 선보입니다.


1. ’조선의 동쪽 서울, 경주

조선시대에 경주는 국가적 차원에서 중요성을 띠는 지역으로 높은 위상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18세기 말에 경주를 그린 회화식 지도인 경주읍내전도(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가 경주를 처음 찾아옵니다. 아울러 1699년 경주 부사(부윤) 민주면(閔周冕)의 주도로 경주에서 간행한 경주 지역의 역사지리지인 동경잡기(東京雜記)가 판목과 나란히 선보이며, 조선시대 역대 경상도 관찰사의 명단으로서 경주에 보관되어 왔던 당하제명기(棠下題名記)도 전시됩니다.

경주는 일찍이 조선 태조 재위시절에 태조 어진을 봉안하였던 중요한 고을이었습니다(집경전(集慶殿). 전주 경기전(慶基殿)의 태조 어진(보물 제931)도 경주 집경전의 태조 어진을 모사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이번 전시에는 전주 경기전의 태조 어진 복제품이 참고자료로 나옵니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경주 집경전의 태조 어진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아울러 경주에 오가는 사신이 머물었던 관사(官舍)인 동경관(東京館)의 현판과 함께, 동경관에 모셔졌던 것으로 추정되는 임금의 상징인 전패殿牌가 처음으로 공개됩니다.


2. ’경주에 살다

조선시대의 경주는 지금의 경주시와 울산, 포항, 영천 등을 포함하는 큰 고을이었습니다. 이 시기 경주 사람들의 생활과 경제적, 사회적 배경을 여러 문헌기록으로 살펴봅니다. 특히 1669년 경주 부윤이었던 병와 이형상(1653~1719)이 주관한 유교적 예법인 향음주례(鄕飮酒禮)를 기록하고 그린 동도향음례(東都鄕飮禮)(인천시립박물관 소장)가 경주를 찾아옵니다. 아울러 경주 양동마을 관련 자료, 경주 출신으로 과거시험에서 장원 급제하였던 질암 최벽(1762~1813)의 합격증서인 홍패(紅牌), 조선 전기에 경주에서 만들어 한양에 바쳤던 장흥고(長興庫)글자가 새겨진 분청사기 등이 전시됩니다.


3. ’학문과 사상이 꽃피다

경주는 신라 때부터 유학의 전통을 자랑하는 유서깊은 고장이었습니다. 경주에 7년 동안 머물며 우리나라 최고의 전기체(傳奇體) 소설인금오신화(金鰲新話)를 지었던 매월당 김시습(1435~1493) 관련 자료,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신라 금석문에 대한 학문적 관심과 열정을 보여주는 문무왕비편이 출품됩니다. 회재 이언적(14911553)은 조선 성리학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려 동방오현(東方五賢)의 한 명으로 추앙되고 있는 경주 안강 출신의 대표적인 성리학자입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중용구경연의같은 그의 저술과 친필이 전시됩니다. 이 밖에 경주는 수운 최제우(1824~1864)의 고향으로서 동학(東學)의 발상지였다는 사실도 매우 중요하므로 경주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습니다.


4. ’신라의 전통을 이어가다

조선시대의 경주 사람들은 주변에 산재한 신라의 문화유산들을 보전하며 새로운 문화와 사상을 창조해 나갔습니다. 성덕대왕신종은 그 대표적인 예로서, 이번 특별전에서는 종각 중수기 현판 2(1826, 1897), 종각에 종을 매다는 데 사용했던 걸쇠 한 쌍, 종을 쳤던 당목(撞木)을 모두 공개합니다. 그리고 옛 신라 왕에 대한 지속적인 숭배를 보여주는 1904년 작 경순왕 영정(경북유형문화재 제410)과 함께, 경주 김씨 사당인 숭혜전(崇惠殿)에 보관되어 왔던 의례용 가마를 최초로 공개합니다. 이와 더불어 신라 때 나라를 지켜주던 보물인 만파식적(萬波息笛)과 동일시되어 조선시대에도 신기의 보물로 인식되었던 옥피리(옥적)도 상세히 소개됩니다.


5. ’싸워서 나라를 지키다

임진왜란(1592~1598)은 조선시대 경주의 역사에서 하나의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나라와 고장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당시 사람들의 노력을 조명합니다. 경주읍성의 탈환에 사용하여 일본군을 물리쳤던 신무기인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를 비롯하여, 세 발의 총을 한 번에 쏠 수 있는 삼안총(三眼銃)(보물 제884), 경주 부윤의 갑옷과 투구, 경주 의병들의 활약과 우국충정의 정신을 보여주는 각종 문집 등이 전시됩니다.


6. ‘불교문화를 다시 일으키다

임진왜란 때 불교계는 일본군에 맞서 싸워 전란 극복에 기여하였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피해를 입은 사찰의 복구를 위해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1680년의 분황사 보광전 중창문, 기림사의 중수를 후원한 경주 부윤을 기리는 1786년의 김부윤공덕비, 그리고 기림사 대적광전의 소조비로자나불상 안에 들어있던 조선 전기의부모은중경(보물 제959-4-2)가 선보입니다. 특히 통일신라 석탑인 안강 정혜사 터 십삼층석탑에서 나온 1765년의 중수기 목판은 이번 전시에서 실물이 처음 공개되는 것으로, 조선 후기에 활발했던 불교신앙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이 특별전이 조선시대의 경주에서 살았던 선인들의 문화와 삶, 그리고 생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이 전시회를 계기로 경주의 조선시대에 대한 새롭고 다양한 연구와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기를 희망합니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앞으로도 경주의 고려와 조선시대를 조명하는 특별전들을 지속적으로 열어 갈 것이며, 그 성과는 국립경주박물관 상설전시의 시대적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데 반영될 것입니다.



기간: 2013917() ~ 1110() 월요일 휴관

장소: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

 

이 자료에 대하여 더욱 자세한 내용을 원하시면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실 학예연구사 허형욱(054-740-7535)에게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자료출처 : 국립경주박물관 홈페이지(http://gyeongju.museum.go.kr/) 보도자료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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