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경주박물관(관장 이영훈)은 석가탄신일을 맞이하여 특집진열 ‘신라의 호국사찰, 경주 망덕사’를 5월 5일부터 7월 4일까지 마련합니다. 이 특집진열은 경주 망덕사터에서 출토된 문화재를 처음 전시하는 자리입니다. 



   

1. 용얼굴무늬 사래기와,  망덕사터 출토, 통일신라, 길이 15.5cm,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2. 용얼굴무늬 수막새, 망덕사터 출토, 통일신라, 지름 12.2cm, 국립경주박물관 소장(사진 국립경주박물관)


  경주시 배반동에 그 터가 남아 있는 망덕사(望德寺)는 679년(문무왕 19년)에 세운 신라의 호국 사찰입니다. 절의 창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합니다. 674년 신라에 패한 당나라는 이듬해 50만 군사를 동원해 신라를 다시 공격했습니다. 신라는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지어 불심으로 당나라 군사를 물리쳤습니다. 당 고종(재위 650~683)은 두 번씩이나 공격에 실패하자 그 까닭을 알기 위해 신라에 사신을 보냈습니다. 그러자 신라에서는 사천왕사를 보여주지 않기 위해 대신 지은 새 절을 보여주며, 당 왕실의 복을 빌기 위해 지은 사천왕사라고 거짓으로 말하였습니다. 당의 사신은 이 절이 사천왕사가 아님을 알아채고 “망덕요산(望德遙山)의 절이다” 라고 하자 신라는 사신을 매수하였습니다. 당으로 돌아간 사신은 “과연 신라에서는 사천왕사를 지어 황제의 만수를 비옵니다” 라고 거짓 보고하였습니다. 그 뒤 이 절의 이름은 망덕사가 되었습니다. 

공양구, 망덕사터 출토, 고려, 국립경주박물관 소장(사진 국립경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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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덕사터 당간지주(보물 69호 : 사진-나정문화사)


  현재 절터 입구에는 당간지주가 서 있습니다. 1969~1970년 문화재관리국의 발굴 때 금당터, 강당터와 함께 동쪽과 서쪽에서 목탑터가 발견되었습니다. 삼국사기에 망덕사에는 13층 목탑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이 목탑터들은 신라의 목탑 구조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입니다. 출토품은 통일신라 초기부터 말기 양식의 기와가 대부분이며, 고려시대 유물도 확인되었습니다. 따라서 망덕사는 최소한 고려 초까지 존재했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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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덕사터 전경(사적 7호 : 사진-나정문화사)


  이번 진열에서는 통일신라시대의 연꽃무늬 수막새, 용얼굴무늬(龍面文) 수막새, 덩굴무늬 암막새 등과 고려시대의 공양구들을 선보입니다. 망덕사터에서 출토된 기와는 사천왕사터의 출토품과 거의 비슷하며, 특히 연꽃무늬 수막새들은 통일신라 초기부터 말기까지의 무늬 변화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고려시대 공양구에는 청동 정병(淨甁) 1점, 금동 그릇 5점, 불상 대좌 1점 등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정병은 군위 인각사 출토품(통일신라시대)과 전체적인 형태는 비슷하나 동체부가 좀 더 둥근 형태로서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생각됩니다. 


  한편, X선 형광분석기를 이용하여 이 공양구들의 합금비와 도금 방법을 분석한 결과, 청동 정병은 구리 80%, 주석 11%, 납 8% 등으로 합금하였고, 금동 그릇은 청동 위에 수은 아말감법으로 도금하였음이 확인되었습니다. 납을 넣어 합금한 것은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도 쉽게 녹여 만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진열이 그 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신라의 호국 사찰인 경주 망덕사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기대하며 많은 관람을 부탁드립니다. 


이 자료와 관련하여 더욱 자세한 내용을 원하시면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실 연구사 오세은(☎ 054-740-7539)에게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자료출처 : 국립경주박물관 보도자료(http://gyeongju.museum.go.kr/)




2014/10/26 - [경주문화유산답사/낭산(신유림), 신라왕실의 성역] - 망덕사, 나.당전쟁 때 당나라를 속이기 위해 세운 절


2013/01/28 - [幢竿支柱] - 망덕사지 당간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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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월성동 | 망덕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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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부장 ibuz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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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덕사지(望德寺址)
사적 7호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 낭산 남쪽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사천왕사 맞은편에 있는 절터이다. 지금 이 곳에는 금당, 강당, 동서목탑, 중문, 회랑 등의 건물터가 남아있고 절의 서쪽 편에는 당간지주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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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덕사지 당간지주(望德寺址幢竿支柱)
보물 69호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문무왕 19(679)에 중국 당나라가 침입하자 부처의 힘으로 물리치고자 사천왕사를 짓게 되었다고 한다. 그 소문이 당나라에 전해지자 예부시랑 악붕귀를 사신으로 보내어 이를 확인하려 하였다.
신라에서는 나라를 보호하는 사천왕사를 보여주는 것이 마땅치 않다고 생각하여 사천왕사 남쪽에 따로 새 절을 지어 보여 주었다.

당나라 사신이 절 앞에 이르러 말하기를 이것은 사천왕사가 아니고, 망덕요산(亡德遙山)의 절이군요하고는 끝내 들어가지 않았다. 신라 사람들이 황금 1,000냥을 주었더니 당나라로 돌아가서 신라에서는 천왕사를 지어 놓고 새 절에서 당나라 황제의 장수를 빌고 있습니다.”라고 거짓으로 보고 하였다.
이후 신라에서는 당나라 사신이 말한 망덕요산에서 그 뜻을 가져와 이 절을 망덕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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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에 있는 절터로 선덕여왕의 무덤이 있는 낭산 남쪽 아래에 있다. 사천왕사(사적 8호)는 2006년 4월 부터 2011년 현재 발굴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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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사 동쪽 귀부

이 절터에는 금당을 중심으로 동,서탑 및 좌우경루의 건물터를 비롯하여 머리가 잘려 나간 귀부 2기와 당간지주가 남아 있다. 그리고 경주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사천왕 전(벽돌)은 신라에서 조각으로 유명한 양지스님의 작품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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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사 서쪽 귀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이전에 절들은 모두 금당(부처님을 모신 건물) 앞에 3층 또는 5층탑 하나만을 세우는 일탑가람 형식이었으나, 통일 이후에는 금당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 각각 탑을 세우는 쌍탑가람 형식으로 바뀌었는데, 이 사천왕사가 쌍탑가람 형식의 최초의 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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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사 당간지주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 제30대 문무왕 때 중국의 당나라가 백제 멸망 후에 설치한 웅진도둑부를 신라가 공격한다는 핑계로 50만 대군을 보내 신라를 공격하려고 하였다. 이때 중국 당나라에 있던 의상스님이 급히 돌아와 이 사실을 왕에게 알리자, 문무왕은 명랑법사에게 적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스님은 낭산 아래 신유림에 사천왕사를 짓고 부처님의 힘을 빌리도록 하였다.
그러나 전쟁이 코앞에 닥치자 절을 완성시킬 시간이 모자랐다. 명랑스님은 임시로 비단과 풀로 절의 모습을 갖춘 뒤 12명의 스님들과 더불어 문두루비법(불교의 교파 중 밀교에서 행하는 비법으로 불단을 설치하고 다라니 등을 외우면 국가적인 재난을 물리치고 국가를 수호하여 사회를 편안하게 할 수 있다고 함)을 사용하였다. 그러자 당과 신라 군사들이 싸움을 시작하기도 전에 거센 바람과 커다란 파도가 크게 일어나 당나라 배가 모두 가라앉았다고 한다. 그 후 5년 만에 절을 완성(문무왕 19년 : 679)하고 사천왕사라고 하였다.
신라 제35대 경덕왕 때의 월명스님은 신라의 노래인 향가 도솔가제망매가를 지었는데, 이 곳 사천왕사에 머물렀다고 한다. 월명스님은 피리를 잘 불었는데, 달 밝은 밤에 피리를 불면 그 소리에 지나가는 달이 멈출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신라 사람들은 월명스님이 살던 사천왕사 앞 동네를 월명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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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절터로 일제 강점기 때 이곳에서 보문사(普門寺)”란 글자가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어 보문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절이 만들어진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신라 제48대 경문왕(861~875) 11년(871)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금은 모두 논으로 바뀐 이 곳 절터에는 금당(절의 본 건물로 부처님을 모셔둔 곳), 동서목탑 등의 건물터와 석조(큰 돌을 파서 물을 부어 쓰도록 만든 기구), 당간지주 2기와 초석(건물의 기둥을 받치는 주춧돌), 석등(돌로 만든 등) 조각 등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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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보문리당간지주(慶州普門里幢竿支柱)
(보물 123)

보문사터 북쪽에 세워져 있는 이 당간지주의 양 기둥 가운데 북쪽의 기둥은 윗부분 일부가 떨어져 나갔다. 당간을 고정하기 위해 3개의 구멍이 나 있는 남쪽 기둥은 구멍이 완전히 뚫려 있는데 북쪽 기둥의 구멍은 반쯤 뚫려 있는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특별한 장식이 없는 매우 소박한 모습의 통일신라시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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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보문리석조(慶州普門里石槽)
(보물 64호)

보문사터에 남아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유물로 절에서 생활에 필요한 물을 받아두기 위해 만든 돌물통을 석조라 한다. 지금도 절에서는 이와 비슷한 것들을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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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보문동연화문당간지주(慶州普門洞蓮華文幢竿支柱)
(보물 910)

기도나 법회 등 절에 큰 행사가 있을 때 절 입구에 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이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한다. 보문사 절터의 북쪽 편, 진평왕릉 앞에 있는 당간지주로 위쪽 바깥면의 네모난 틀 안에 8장의 연꽃잎이 새겨져 있는 특이한 모습을 한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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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 배반동 낭산 남쪽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사천왕사 맞은편에 있는 절터이다.

망덕사는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신라 제31대 신문왕 5년(685)에 세워진 사찰임을 알 수 있다. 지금 이 곳에는 금당강당동서목탑중문회랑 등의 건물터가 남아있고 절터의 서쪽 숲속에 당간지주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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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덕사지 당간지주(望德寺址幢竿支柱)
보물 69호


망덕사가 세워진 때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이 당간지주는 높이가 2.44m로 특별한 장식이 조각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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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당간지주에는 깃발을 달아두는 깃대(당간이라고 함)가 쓰러지지 않게 붙잡아 두기 위해 세 곳 또는 두 곳의 구멍이 남아 있는데, 이 당간지주의 몸통에는 아무 구멍이 없고 맨 위쪽 끝에 네모진 홈을 파서 당간을 고정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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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정, 양산재를 지나 남간마을 입구로 들어서면 남산기슭의 논 가운데 당간지주가 서 있다. 최근에 논을 없애고 주변을 정리하였다.

남간사는 남간마을에 있었던 절터로 주변에 당간지주를 비롯하여 8각의 대좌와 석정(신라시대의 우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3호) 등이 있고 마을 안 여러 집들에서 사용하고 있는 초석(목조건물의 기둥으로부터 전달되는 건물의 무게를 받치는 기둥돌)과 축대(집터나 건물터의 땅을 보호하기 위해 쌓은 건축물)들이 남아 있다.

『삼국유사』권3 「흥법」제3 "원종흥법 염촉멸신(원종이 불법을 일으키고 염촉이 순교하다)" 편에 아래와 같이 남간사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원화(806~820) 연간에 남간사 중 일념이「염촉의 향분(무덤)에 예불하는 결사문」을 지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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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간사지당간지주 (南澗寺址幢竿支柱)
보물 909호

일념 스님이 지은 이 결사문(촉향분례불결사문 觸香墳禮佛結社文)은 신라에 전래된 불교가 이차돈의 순교로 법흥왕의 신라 불교 공인 과정에  대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 신라 제41대 헌덕왕(809~826) 이전에 이미 남간사가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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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서는 여러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 사찰 입구에 ()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매달아두는 길쭉한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당간의 좌우에 세워 단단히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한다. 드물게 당간이 남아 있는 경우도 있으나 대개는 두 지주만 남아 있다.

남간사터 당간지주 안쪽 면에는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구멍을 각각 두 군데에 뚫어 놓았다. 지주 꼭대기에는 십()자 모양의 홈을 새겨 두었는데 이것은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이다. 특별한 장식이 없는 소박하고 간단한 형태로 보존 상태가 좋은 통일신라 중기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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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보문사지 연화문 당간지주(慶州 普門寺址 蓮華文 幢竿支柱)
보물  제910호

보문사 절터에 있는 당간지주로
위쪽 바깥면의 네모난 틀 안에 8장의 연꽃잎이 새겨져 있는
특이한 모습을 한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이다.
.
기도나 법회 등 절에 큰 행사가 있을 때 절 입구에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이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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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남간사지당간지주(慶州南澗寺址幢竿支柱)
보물 제909호

남간사는 경주시 탑동 남간마을에 있었던 통일신라시대의 절로 세워진 때와 세운 사람은 알 수 없지만, 애장왕과 헌덕왕 때, 이 절의 승려였던 일념(一念)이 "촉향분예불결사문(염촉, 즉 이차돈의 무덤에 불공하는 단체를 모은 취지문)"을 지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으로 헌덕왕 이전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 당간지주는 현재 논 한가운데 있으며 양 지주에는 당간을 고정하기 위해 각각 2개씩의 구멍을 뚫어 놓았는데, 특이하게 꼭대기에는 십(十)자 모양의 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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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사지당간지주(四天王寺址幢竿支柱)
비지정문화재

경주 낭산 아래, 사천왕사터 입구에 세워져 있는 이 당간지주는
당간을 고정하는 구멍이 양 지주 좌우에 각각 3개씩 뚫려 있다.
특이한 점은 상,하의 구멍은 네모난 모양이지만 가운데 구멍은 둥근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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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보문사지 당간지주(慶州 普門寺址 幢竿支柱)
보물  제123호

보문사터 북쪽에 세워져 있는 당간지주로
양 기둥 가운데 북쪽의 기둥은 윗부분 일부가 떨어져 나갔다.
남쪽 기둥은 당간을 고정하기 위해 3개의 구멍이 완전히 뚫려 있는데
북쪽 기둥의 구멍은 반쯤 뚫려 있는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특별한 장식이 없는 소박한 모습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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