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 황남동 대릉원 안에 있는 신라시대의 왕릉으로 추측하고 있는 고분으로 둘레 47m, 높이 12.7m에 달하는 돌무지덧널무덤이다.

1973년 문화재관리국은 황남대총을 발굴조사 하기 위한 예비조사로 발굴을 하였는데, 발굴조사 결과 무덤 안에서 자작나무껍질에 채색으로 천마를 그린 말다래(장니국보 제207)가 발견되어 천마총이라고 이름 붙여졌다.

천마총에서는 장신구류 8,766, 무기류 1,234, 마구류 504, 그릇류 226, 기타 796점으로 모두 11500여 점의 수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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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총(황남동고분 제155호)


천마총에서 발굴된 유물들 가운데 천마도는 말의 양쪽 배를 가리는 가리개로, 말이 달릴 때 튀는 흙이나 먼지를 막는 역할을 하며 장식물로도 사용되었다. 자작나무 껍데기를 여러 겹으로 겹쳐서 누빈 위에 말갈기와 꼬리털을 날카롭게 세우고 하늘을 달리는 천마를 능숙한 솜씨로 그렸는데, 지금까지 그림 자료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던 고신라의 유일한 미술품이라는 데 큰 뜻이 있다.


천마도(위 사진은 지난 3월 18일~6월 22일까지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열린 천마총 특별전 포스터에서 가져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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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188호로 지정되어 있는 높이 32.5cm의 천마총 금관은 머리 위에 두르는 넓은 띠 앞면 위에는 자형 장식이 3, 뒷면에는 사슴뿔 모양이 2줄로 있는 형태이다. 자형은 4단을 이루며 끝은 모두 꽃봉오리 모양으로 되어있다. 금관 전체에는 원형 금판과 굽은 옥을 달아 장식하였고, 금실을 꼬아 늘어뜨리고 금판 장식을 촘촘히 연결하기도 하였다. 밑으로는 나뭇잎 모양의 늘어진 드리개 2가닥이 달려있다. 이 금관은 지금까지 발견된 신라시대 금관 가운데 가장 크고 화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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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 황남동 대릉원 안에 있는 신라 제13대 미추이사금(재위 262~284)의 능이다. 미추왕의 성은 김씨로 신라 제12대 첨해이사금(재위 247~261)이 아들 없이 죽자 추대(윗사람으로 떠 받듬)를 받아 신라 최초의 김씨 임금이 되었다.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의 7대 후손이며, 갈문왕(왕의 아버지, 장인, 외조부, 형제 또는 여왕의 남편 등에게 내리던 칭호로 왕과는 엄연히 구별되었지만 왕에 버금가는 높은 지위였다) 구도(신라 상대의 왕족으로 신라 제8대 아달라이사금 때 파진찬이 되었다. 신라 제9대 벌휴이사금 때는 좌군주가 되어 소문국을 정벌하였고, 188년과 189년에는 신라를 침공한 백제를 크게 물리쳤다)의 아들이다. 왕비는 광명부인이다. 262년에 왕이 되어 284년 승하할 때까지 23년간 재위하는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백제의 침입을 물리치고 농업을 장려하였다. 죽고 난 뒤 능의 이름을 "대릉(大陵)"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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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미추왕릉 (慶州 味鄒王陵)

(사적 제175호)


능 앞에는 화강석으로 만든 혼유석(무덤의 앞에 놓는 긴네모꼴의 돌로 넋이 놀게 하는 뜻으로 둔다고 함)이 마련되어 있고 입구 삼문이 있으며 이 삼문을 따라 담장이 돌려져 무덤전체를 보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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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추왕릉은 죽장릉·죽현릉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에 얽힌 전설로서 죽엽군(댓잎을 귀에 꽂은 병사) 이야기가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 유례이사금조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297(유례왕 14)에 이서고국(지금의 경상북도 청도에 있었던 나라)이 금성을 공격해 크게 군사를 일으켜 막아도 쉽게 물리치지 못했다. 이 때 갑자기 이상한 군사가 나타났는데 그 숫자를 헤아릴 수 없었고 모두 귀에 댓잎(竹葉)을 꽂고 신라군과 함께 적을 쳐서 깨뜨렸다. 그 뒤 그들이 간 곳을 알지 못하던 중 누가 죽장릉(미추왕릉)에 댓잎이 수북히 쌓여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하자 사람들은 미추왕이 신병을 보내어 싸움을 도와준 것이라고 하였다.

 

일연스님이 지은 『삼국유사』 기이 제1, “미추왕과 죽엽군조에도 위의 내용과 같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미추왕릉을 죽현릉, 대묘라고 하였다.

그때 홀연히 신병이 나타나 도왔는데, 모두 대나무 잎을 귀에 꽂고 우리 군사와 힘을 합해 적군을 격파했다. 그러나 적군이 물러간 뒤에는 모두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다만 대나무 잎이 미추왕릉 앞에 쌓여 있는 것만 보였다. 그제서야 선왕(미추이사금)의 음덕으로 공을 세운 것임을 알고 죽현릉이라고 불렀다…왕이 나라를 지키는 공덕이 크다고 아니할 수 없다. 그래서 나라 사람들이 그 공덕을 생각해 삼산(三山, 신라에서 크게 제사를 지내는곳으로 내림, 골화, 혈례 등 세 곳이다)과 함께 제사를 받들기를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서열을 오릉(혁거세거서간, 알영부인, 남해차차웅, 유리이사금, 파사이사금의 무덤) 위에 놓아 대묘(大廟, 종묘라고도 하는데, 왕가의 신위를 모셔던 사당을 일컫는다)라 일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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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 황남동에 있는 신라시대의 고분군으로 경주지역에 흩어져 있는 여러 고분군들 가운데 중심부분에 해당하는 이 지역에는 현재 20여 기의 크고 작은 고분들이 남아 있다.

이 고분들 가운데 신라 13대 미추왕의 능이라 전하는 무덤을 중심으로 고분들이 밀집된 곳을 1973년에 대릉원이라는 고분공원으로 만들었으며, 그 안에는 천마총(색이 칠해진 천마도가 나옴)·황남대총(표주박 모양으로 연결된 두 개의 무덤으로 남자와 여자의 무덤) 등이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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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릉원(사적 제512호) 입구


외형상으로는 모두 원형봉토분(흙으로 둥글게 쌓아올린 무덤)으로 규모는 지름 80m, 높이 20m에 이르는 왕릉급의 대형 무덤에서부터 지름이 불과 몇 m에 불과한 소형 무덤까지 다양하다. 대릉원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무덤들은 대부분 삼국시대 신라 특유의 돌무지덧널무덤(나무덧널 위를 사람머리만한 크기의 냇돌로 쌓은 신라시대의 무덤) 형식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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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릉원 내 미추왕릉(사적 제1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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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릉원 내 천마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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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릉원 내 황남대총


천마총·황남대총에서는 금관·금제허리띠를 비롯해 금·은제그릇, 유리그릇, 비단벌레 날개로 장식된 말갖춤 등 신라 최고의 각종 호화로운 껴묻거리(죽은 자를 매장할 때 함께 묻는 물건들)가 출토되었다. 그보다 작은 무덤에서도 금귀걸이, 금동판이나 은판으로 장식된 긴 칼, 신라토기 등 많은 껴묻거리가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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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박물관(관장 이영훈)은 천마총 특별전인 ‘天馬, 다시 날다’ (2014. 3. 18. ~ 6. 22.)의 개최에 앞서, 기존에 널리 알려진 백화수피제 천마문 말다래[天馬文障泥] 1점과 함께 그 동안 공개되지 않은 또 다른 백화수피제 천마문 말다래 1점과 죽제 천마문 금동장식 말다래 1점을 처음으로 공개합니다. 


경주시 대릉원에 위치한 천마총은 1973년 4월부터 12월까지 발굴되었습니다. 금관을 비롯한 총 11,526점이 출토되었으며, 그 가운데 처음 발견된 하늘로 비상하는 흰말, 즉 ‘천마’를 그린 백화수피제 말다래[障泥]로 인해 ‘천마총’으로 명명되었습니다. 이 말다래는 귀중한 신라 회화로서 1978년 국보로 지정되었습니다(제207호). 


▶ 백화수피제 천마문 말다래(기존에 공개된 것:하): 73.2×55.2cm(국보 제207호)-사진 : 국립경주박물관


▶ 적외선 사진(국립경주박물관)


▶ 백화수피제 말다래(하) 실측도(국립경주박물관)



발굴보고서에는 백화수피제(白樺樹皮製), 죽제(竹製), 칠기제(漆器製) 등 세 종류의 말다래가 각각 한 쌍씩 부장되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만, 모두 유기질이어서 발굴 당시 이미 보존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특히 칠기제 말다래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아서 실제 말다래인지도 분간키 어렵습니다. 


▶ 백화수피제 천마문 말다래(상) 1점: 73.4×54.7cm(국보 제207호)-사진 : 국립경주박물관

▶ 적외선 사진(국립경주박물관)

▶ 백화수피제 말다래(상) 실측도(국립경주박물관)


따라서 현재 존재가 분명한 말다래는 백화수피제와 죽제의 두 쌍입니다. 

백화수피제 천마문 말다래 한 쌍은 아래위로 겹쳐 부장되어, 아래에 있던 말다래(下)가 위에 놓인 말다래(上)보다 좀 더 좋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동안 아래에 있던 말다래(下)만이 제한적으로 공개되어 왔었습니다. 널리 알려진 천마도가 바로 이 백화수피제 천마문 말다래입니다. 상태가 상대적으로 좋지 않았던 또 하나의 백화수피제 말다래(上)도 이번에 보존처리가 완료됨에 따라, 발굴된 지 40년만에 처음으로 한 쌍의 백화수피제 천마문 말다래가 함께 공개 전시됩니다.  


죽제 천마문 금동장식 말다래는 얇은 대나무살을 엮어 말다래의 바탕판을 만들고, 그 앞면에 마직의 천을 댄 뒤 천마문 등의 무늬를 투조한 크고 작은 금동판 10매를 조합, 금동못으로 붙여 장식하였습니다. 이 죽제 말다래의 천마문 금동투조장식은 경주박물관의 보존처리 과정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것입니다. 천마의 몸에는 비늘무늬, 마름모무늬, 점열무늬 등을 가득 채우고 있으며, 영락들이 장식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눈과 귀 등의 표현과 함께 목과 꼬리의 갈기 형태도, 기존의 백화수피제 천마문 말다래의 천마와 유사한 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죽제 말다래 역시 한 쌍이 출토되었으나, 다른 한 점은 발굴 당시부터 상태가 좋지 않아 그 형태를 알기 어렵습니다.

 

              

▶ 죽제 천마문 금동장식 말다래 1점: 81×56cm, 적외선 사진(국립경주박물관)

▶ 실측도(국립경주박물관)


또한 말다래의 제작기법을 밝히고자 하였습니다. 백화수피제 말다래의 경우, 실제의 자작나무 껍질을 활용한 실험 등을 실시하여 말다래 판의 제작 방법, 안료의 종류(흑, 적, 백, 녹) 등을 밝혀었습니다. 죽제 말다래는 대나무 판을 실제로 짜서 그 방식을 이해하고자 하였습니다. 또한 말다래를 안장부에 매다는 데 사용한 띠고리(鉸具)의 존재도 처음 확인하여 제자리에 복원하였습니다. 


▶ 백화수피제 말다래 제작 과정 개요



한편 기존에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천마문의 정확한 도상을 제공하기 위해 실측도 3점을 처음으로 제작하였습니다. 3D 스캔과 적외선 및 X선 촬영을 하여 만든 도면을 실물과 다시 비교하는 방식을 거듭하였습니다. 그 결과 천마를 비롯한 각종 무늬 등의 구체적 모습을 밝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천마문 말다래 3점(백화수피제 2점, 죽제 1점)은 천마총 특별전에서 일반에 공개됩니다만, 보존을 위해 다음과 같이 3차례로 기간을 나누어 제한 공개합니다.

1차 공개: 3.18.~4.6./ 2차 공개: 4.29~5.18./ 3차 공개: 6.3~6.22.


이 자료와 관련하여 더욱 자세한 내용을 원하시면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실 연구관 장용준, 연구사 신용비 (☎ 054-740-7532, 7614)에게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자료출처 : 국립경주박물관(http://gyeongju.museum.go.kr/) 보도자료 인용


2012/06/18 경주문화유산답사/서라벌 왕경신라 천년 역사의 중심/ 천마총, 자작나무 껍질 말다래에 그린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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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월성동 |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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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부장 ibuzang
경주시 일대에 널려 있는 신라시대의 고분(무덤)들은 크게 평지에 있는 평지고분들과 주변 산기슭에 있는 산지고분군으로 나눌 수 있다.

평지고분들은 경주 시내의 서남쪽, 즉 반월성의 북쪽에서부터 노서동까지 동서 약 1Km, 남북 약 1.5Km 안에 널려 있는 고분들로서, 모여 있는 지역에 따라 교동고분군, 인왕동고분군, 황남동고분군, 황오동고분군, 노동동고분군, 노서동고분군 등으로 나누어진다.

이 중에서 황남동고분군 가운데 위치해 있는 미추왕릉을 중심으로 20여 기의 고분이 밀집해 있는 지역은 1973대릉원이라는 고분공원으로 만들어졌으며 그 안에 천마총과 황남대총이 포함되어 있다. 이 고분들에 대한 학술적인 조사는 1906년부터 시작되어 최근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고분들이 발굴 조사되었는데, 그 수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약 300기가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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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고분군-뒷쪽 숲이 경주 계림

평지고분의 대부분은 삼국시대 신라 특유의 돌무지덧널무덤(신라의 대표적인 고분 형식)으로 덧널(시체를 모신 관을 담는 상자) 위를 사람 머리 크기의 냇돌로 돌무지를 쌓고 흙으로 둥글게 씌워 올린 무덤이다.

돌무지덧널무덤에서는 꾸미개, 말갖춤, 무기, 그릇 등 각종 유물이 많이 출토된다. 특히 금관총, 서봉총, 금령총, 천마총, 황남대총 등 왕릉급의 대형고분에서는 금관, 금제허리띠를 비롯한 금제꾸미개와 안장틀 등 금동판으로 장식된 각종 말갖춤, 금판이나 금동판으로 장식한 긴 칼, 금.은.금동.청동제의 각종 그릇과 유리그릇, 옷칠그릇 등이 많이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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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총(제155호 고분)-대릉원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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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남대총(제98호 고분)-대릉원 내

이와 같은 돌무지덧널무덤은 4세기 중엽부터 6세기 초까지 왕족을 비롯한 신라의 중앙 지배귀족들이 사용한 무덤 양식이었으며, 이때는 신라 역사에서 김씨 왕이 세워지고, 그 왕들이 마립간으로 불렸던 시기로 돌무지덧널무덤은 신라 김씨 왕조 마립간 시기의 무덤 형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산지고분들은 경주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산에서 뻗어 내린 산기슭에 널려있는 고분들로 지역에 따라 보문동고분군, 동천동고분군, 충효동고분군, 서악동고분군 등으로 나누어진다. 산지고분도 겉모양으로는 대부분 흙으로 둥글게 쌓아올린 무덤으로 그 수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수백 기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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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악동 고분(사적 142호)

내부 구조가 알려진 산지고분은 대부분 굴식 돌방무덤으로, 경주의 신라고분은 먼저 평지에 돌무지덧널무덤이 만들어지다가 굴식 돌방무덤으로 바뀌면서 고분의 위치도 평지에서 산기슭으로 옮겨간 것으로 보고 있다.

산지고분의 굴식 돌방무덤들은 납작천장에 평면 직사각형 돌방 형식도 일부 발견되고 있으나, 대부분은 둥근천장의 평면 사각형 돌방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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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효동 공개석실분(통일신라시대 돌방무덤)

널길(무덤의 입구에서부터 시체를 안치한 방에까지 이르는 길)은 돌방 남벽의 가운데에 달린 것, 서쪽에 달린 것, 동쪽에 달린 것이 있는데, 삼국시대에는 세 가지가 함께 만들어졌으나 통일신라시대에는 널길이 가운데에 달린 것이 많아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주고분들 가운데 굴식 돌방무덤은 삼국시대 후기인 6세기 초부터 통일신라 말까지 만들어 졌는데, 신라에서 불교가 공인되고 율령이 반포되는 등 사회적 큰 변화가 이루어졌던 신라 제23대 법흥왕(514~540) 때부터 무덤형식이 새롭게 바뀌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산지고분의 굴식 돌방무덤에서는 유물이 거의 나오지 않는데, 그것은 불교의 영향으로 장례가 간소화된 데다가 돌무지덧널무덤과는 달리 출입구가 있어 쉽게 들어가고 나올 수 있어 거의 모두 도굴을 당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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