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경주박물관(관장 이영훈)은 2014년 10월 28일부터 2015년 2월 6일까지 특집진열 ‘금관총과 이사지왕’을 개최(신라역사관 2층 로비)합니다. 이 특집진열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7월 8일부터 9월 28일까지 개최했던 같은 이름의 전시를 옮겨온 것입니다.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은 금관총 출토의 큰칼을 보존처리하는 과정에서 ‘尒斯智王’(이사지왕)이라는 명문(銘文)을 발견하여 주목을 받았습니다. ‘尒斯智王’ 명문은 칼집 끝에 날카로운 도구로 새겨져 있습니다. 이뿐 아니라 칼의 손잡이 쪽에서 ‘尒’(이)자, 칼집 끝 뒷면에서도 ‘十’(십)자가 드러났습니다.


▶ 이사지왕명 큰칼(사진 : 국립경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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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尒斯智王’(이사지왕) 명문(사진 : 국립경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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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十’(십) 명문(사진 : 국립경주박물관)

‘尒斯智王’ 명문의 발견은 ‘이사지왕’은 누구인가 나아가 금관총에 묻힌 사람은 누구인가 등에 대한 여러 논의들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사지왕’이라는 왕의 이름은 금석문이나『삼국사기』와『삼국유사』등의 역사서에서 찾을 수가 없습니다. 포항 냉수리에서 발견된 ‘냉수리 비’(443년 또는 503년 건립)에는 ‘此七王等’(차칠왕등)이라는 명문이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신라에는 국왕 이외에도, 왕이라고 불렸던 이들이 여럿 존재하였다고 추정하기도 합니다. 또는 이사지왕은 신라 최고 지배자였던 왕(마립간)이 쓰던 다른 이름일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이사지왕을 비롯한 명문 자료들은 금관총의 주인공과 신라 사회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며, 우리가 풀어 나가야 할 새로운 과제들을 던져 주고 있습니다. 

이번 진열에서는 ‘尒斯智王’(이사지왕)이 새겨진 칼과 함께  ‘八’(팔), ‘十’(십), ‘尒’(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금관총 출토의 또 다른 큰칼을 공개합니다. 아다시피 금관총은 1921년 경주에서 처음으로 금관이 발견된 왕릉급 무덤으로서, 당시의 수습 조사와 정리에 대한 기록도 전시합니다. 많은 분들의 관람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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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월성동 | 국립경주박물관 신라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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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부장 ibuzang

경주시 배동 남산기슭에 있는 석조유물로 통일신라시대의 연회장소 또는 이궁(왕이 거둥할 때 머무러는 별궁 또는 행궁)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돌로 만든 구불구불한 물길의 형태가 전복 껍질과 같다고 하여 "전복 포(鮑)"자를 써서 포석정이라 부른다.

일연스님이 지은『삼국유사』에 포석정에 관한 많은 기록들이 남아 있다. 권2 "처용랑망해사" 편을 보면 신라 제49대 헌강왕(875~886)이 포석정에 거둥했을 때 남산의 신이 나타나 춤을 추었는데, 주위 신하들은 보지 못하고 오직 왕 혼자만 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권5 효선 편을 보면 "효종랑(신라말기의 화랑으로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아버지)이 남산 포석정에서 놀자…"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을 통해 통일신라시대에 이미 포석정이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며, 신라 왕들과 화랑들의 연희 장소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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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포석정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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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포석정지(慶州鮑石亭址)
(사적 1호)

이 곳은 특히 신라 제55대 경애왕(924~927)의 비극적인 이야기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함으로 신라 천년 역사가 막을 내렸지만, 신라는 이미 후백제의 견훤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경애왕 때 그 기나긴 역사를 마감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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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에는 경애왕의 최후에 대하여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가을 9월(924), 견훤이 고울부(지금의 영천)에서 우리 군사를 침범하므로 왕은 고려 태조에게 구원을 청하였고, 태조(왕건)는 장수에게 강병 1만 명을 내주어 가서 구원케 하였다. 겨울 11월, 견훤은 구원병이 미처 도착하지 않은 틈을 타서 엄습하여 서울에 당도하였다. 왕은 비빈, 종척들과 더불어 포석정에서 잔치하고 놀다가 부지불각 중에 적병이 들이닥쳐 어찌할 바를 몰랐다…(중락)…왕은 비첩 수명과 함께 후궁에 있다가 군중으로 잡혀왔다. 견훤은 왕을 핍박하여 자살케 하고…(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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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포석정은 신라 천년의 역사가 막을 내린 비운의 현장으로 모두에게 기억되고 있지만, 최근에는 포석정에 대하여 신라왕들과 화랑들의 잔치 장소가 아니라 국가적인 행사나 제사가 행해지던 장소라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 당시 후백제 견훤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기 상황에 빠져 있었고, 경애왕이 포석정으로 행차했던 시기가 음력 11월 한 겨울인 점을 감안할 때, 잔치를 벌이며 놀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당시 경애왕은 고려 태조에게 청한 구원군이 오지 않는 위급한 상황에서 조상들을 찾아가 나라를 지키고 박씨 왕들의 지위를 유지시켜 달라며 재를 올렸을 것이라는 견해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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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 배반동 낭산 남쪽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사천왕사 맞은편에 있는 절터이다.

망덕사는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신라 제31대 신문왕 5년(685)에 세워진 사찰임을 알 수 있다. 지금 이 곳에는 금당강당동서목탑중문회랑 등의 건물터가 남아있고 절터의 서쪽 숲속에 당간지주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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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덕사지 당간지주(望德寺址幢竿支柱)
보물 69호


망덕사가 세워진 때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이 당간지주는 높이가 2.44m로 특별한 장식이 조각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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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당간지주에는 깃발을 달아두는 깃대(당간이라고 함)가 쓰러지지 않게 붙잡아 두기 위해 세 곳 또는 두 곳의 구멍이 남아 있는데, 이 당간지주의 몸통에는 아무 구멍이 없고 맨 위쪽 끝에 네모진 홈을 파서 당간을 고정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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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류춘규)는 경주 쪽샘지구 발굴조사에서 삼국시대 농기구(農器具)로 추정되는 대형 철제품을 확인하고 오는 9월 5일 오후 2시 현장설명회를 개최한다.

이번에 공개되는 대형 철제품은 지난 5월 중순 경 새날개모양의 금동제·은제의 관식과 정수리 장식, 뒤꽂이 장식이 모두 갖추어진 삼국시대 관모가 처음으로 발굴된 쪽샘지구 41호분의 부곽(副槨)에서 출토됐다. 그동안 확인된 삼국시대 철제 농기구 가운데에서도 가장 큰 규모이다. 특히 철제의 몸체에 편평한 날 부분을 결합시킨 특이한 탈부착식(脫附着式)구조로서는 국내의 고대 농기구들 중에서 처음 확인된 것이고, 일본과 중국에서도 동일한 형태의 것은 아직까지 발견된 사례가 없다.

대형 철제품은 두께 5.0㎝, 길이 22.8㎝, 너비 18.5㎝, 무게 약 9㎏에 이르는 방형의 몸체에 길이 26.0㎝ 크기의 폭이 넓고 편평한 삽날이 서로 결합된 구조이다. 몸체에는 나무자루를 끼울 수 있도록 가로ㆍ세로 8.2㎝의 네모난 구멍이 마련되어 있으며, 날 부분이 편평한 것으로 보아 농경지(農耕地)나 대지(垈地)의 터를 고르는 정지용(整地用) 농기구인 것으로 추정된다. 

또 농기구의 규격이 일상적인 농구에 비하여 2배 이상 크고, 왕족과 같은 지배층의 무덤에 부장된 것으로 보아 가축을 이용한 정지작업과 깊은 관련이 있거나, 몸체에 기하학 문양이 새겨진 것으로 보아 농경의례 등에 과시용으로 활용된 것으로 파악된다. 


사진 :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특히 이 대형 철제농기구는 ‘삼국사기’ 소지마립간 9년(487년)조의 “관도를 수리하였다(修理官道)”나 지증마립간 3년(502년)조에 “지방에 명하여 농사를 권장케 하였고 처음으로 소를 부려 논밭을 갈았다(分命州郡勸農 始用牛耕)” 라는 기록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고고자료로도 볼 수 있어 앞으로 5세기 후반 ~ 6세기 초 무렵의 신라사와 농업사 관련분야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이주헌 054-777-8805
                                 김보상 054-748-2663



*자료출처 :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보도자료(http://www.gcp.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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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 쪽샘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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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박물관은 한중 수교 20주년을 맞이하여, 417일부터 617일까지중국 섬서역사박물관 소장 당대 명품전을 마련합니다. 이 특별전은 국립경주박물관과 섬서역사박물관의 우호교류 10년의 아름다운 결실이기도 합니다.

 

(), (), (), () 13왕조의 수도였던 서안시에 자리하고 있는 섬서역사박물관은 매우 수준 높은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중국의 대표적 박물관입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섬서역사박물관의 소장품 가운데(618~907)의 수도였던 국제도시 장안(長安)과 장안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명품들이 선보입니다. 이 전시품들은 모두 국내에서 처음 전시되는 것들로서, 동시기 신라 문화와의 비교 감상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80159점의 전시품 가운데 우리나라의 보물에 해당되는 1급 문물도 1016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금동제 용, 원앙무늬 금잔, 팔각 금잔 등이 1급 문물들로서 수준 높은 당 문화의 일면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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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제 용(높이 37cm, 8세기, 중국 1급 문물),

사진(국립경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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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채 단지(높이 23.5cm, 8세기),

사진(국립경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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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앙무늬 금잔(높이 3.2cm, 입지름 10.6cm, 8세기, 중급 1급 문물)

사진(국립경주박물관)


이번 전시는 3부로 구성됩니다. 1부에서는 국제 도시였던 장안성의 모습을 살펴보고, 2부에서는 장안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금은기, 당삼채 등을 소개합니다. 3부에서는 장안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불상, 도교 관련 용기, 십이지상들이 선보입니다. 중국 성당시기(盛唐時期)의 수준 높은 문화를 감상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이 특별전의 교환 전시로서, 올 하반기에는 천마총 금관을 비롯한 신라의 대표 문화재들을 선보이는 특별전이 섬서역사박물관에서 개최될 예정입니다. 이는 중국에서 열리는 최초의 한국 문화재 전시회로서 매우 뜻깊다 할 것입니다.

 

삼국사기를 보면, 견당사(遣唐使, 신라에서 당으로 보낸 사신)에 대한 기록만도 140건 이상 확인됩니다. 이처럼 신라와 당의 교류는 무척 왕성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으며, 그에 따라 많은 문물도 가고 왔습니다. 당의 문물이 우리에겐 낯설지만 신라인들에게는 낯익은 것들인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지금보다도 더 활발히 신라와 당은 교류했을 것입니다. 1400년 전부터 시작된 신라와 당의 교린관계처럼, 이 특별전을 계기로 국립경주박물관과 섬서역사박물관의 우호교류, 나아가 한중간의 문화교류가 더욱 활발히 진전되리라 기대합니다.


자료 및 사진 출처 : 국립경주박물관 보도자료(http://gyeongju.museu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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