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경주박물관과 ()백제세계유산센터, 특별전 세계유산 백제개막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유병하)과 백제세계유산센터(이사장 남궁영)백제역사유적지구의 세계유산등재를 기념하여 37일부터 57일까지 9주에 걸쳐 특별전 <세계유산 백제>를 개최합니다. 공주로 천도한 475년에서 멸망하는 660년과 부흥운동이 일어나는 663년까지 금강을 요람으로 하여 공주와 부여에 도읍하였던 약 2백년간의 역사를 왕도인 공주와 부여, 또 별도였던 익산으로 나누어 전시합니다. 앞서 열린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가 도성·사찰·능묘로 나눈 생활사 중심의 전시였다면, 국립경주박물관의 전시는 공주·부여·익산 지구를 다시 8개 지구로 나누어 도시의 특성과 경관에 초점을 맞추어 전시합니다. 또 신라 왕경에서 열리는 첫 백제 전시인 만큼, 신라 문물과의 비교적 시점에서 조망할 예정입니다. 특히 부여 출토 대형 치미와 광배 등 팔백여점의 유물을 전시함으로써 백제문화의 위용과 함께 백제칠기·백제정원 등을 조명합니다.



곰나루 웅진

1475-538 웅진시대의 도읍, 곰나루 웅진(熊津)에서는 고구려에 밀려 급작스럽게 공주로 천도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30여 년간 존속한 왕도를 조명합니다. 이 시기 백제는 신라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웅진시대 왕들의 무덤인 공주송산리고분군에 대해 무령왕릉 출토품을 중심으로 살펴봅니다. 왕의 관식(冠飾), 무령왕지석(誌石)과 글자새긴 은팔찌와 전돌을 통해 화려했던 웅진 백제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남조 도자와 금송으로 만든 관재(棺材)를 통해 중국 남조(南朝) 및 왜(倭)와의 활발했던 교류 양상을 설명합니다. 백제 무령왕릉 출토 금제모자형장식과 신라 금관총 출토 귀걸이에는 공히 고도의 누금(鏤金)기법이 보입니다. 근년 발굴을 통해 왕성일 가능성이 농후해진 공산성에 대해 주칠(朱漆)문자가 쓰여진 옻칠갑옷을 비롯하여 목기류와 기와를 전시합니다. 특히 옻칠갑옷의 연대 645년에 주목하여 웅진시대가 종료되고 왕도가 사비로 옮겨간 뒤에도 웅진성이 중요기능을 하고 있었으며, 이 고구려를 정벌하기 위해 대규모 원정을 단행하는 등 상황에서 백제 역시 긴박하게 당에 대한 대비와 교류를 병행하였음을 설명할 예정입니다.

무령왕릉 출토 묘지석(사진 : 국립경주박물관)



소부리 사비

2538-660 사비시대의 도읍, 소부리 사비(泗沘)에서는 계획도시 사비의 면모를 전시합니다. 정동리 전돌과 관북리 대통(大通) 글자 인장와를 통해 538년 천도하기 이전부터 부여에서 도시건설이 이뤄지고 있었음을 이야기하고, 부(部)관련 글자가 있는 기와와 목간, 석문(石文)으로 왕경의 행정구역 5부를 설명합니다. 이는 신라 왕경이 탁부(喙部)를 비롯 토착적 지연집단의 6부 구성이었던 것과 확연히 비교됩니다. 관북리 건물지 출토 기와류를 통해 왕궁터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으며, 부소산성 출토 금동광배와 무기류는 왕궁의 배후 방어성으로서 위용을 이야 기해준다. 정림사 출토 소조불과 대당평제비탁본으로 정림사가 사비왕경의 중심광장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쌍북리 출토 구구단 목간을 매개로 백제 사람들도 구구단을 실생활 곳곳에 활용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능산리사지 출토 금동대향로(복제) 등과 능산리고분군 출토 관못과 관장식을 통해 이 시기 왕실 장례문화와 금속가공 기술을 엿볼 수 있습니다. 황룡사지 출토 6세기 전반 이른 시기 신라 수막새의 연꽃무늬는 사비 왕경 출토 백제 수막 새와 흡사합니다.

부소산성 출토 금동광배(사진 : 국립경주박물관)

 


지모밀지 금마저

3장 또 다른 도읍, 지모밀지(枳募蜜地) 금마저(金馬渚)에서는 익산 미륵사지와 왕궁리유적, 쌍릉 출토품을 전시합니다. 미륵사지 서석탑 출토 사리병과 탑 건립의 내력을 기록한 사리봉영기(舍利奉迎記), 왕실과 귀족의 각종 공헌물은 화려했던 7세기 후반 백제 문화를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줄곧 왕도를 옮기지 않았던 신라와 달리, 백제는 여러 차례 왕도를 옮기면서도 각지에서 색다른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익산 미륵사지 출토 사리봉영기(사진 : 국립경주박물관)

 


신라문화에의 영향

643년 신라 황룡사 건설을 위해 백제 공인 아비(阿比)가 건너갔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872년 중수하면서 새겨넣은 황룡사찰주본기의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황룡사 출토 7세기대의 기와 등을 통해 그와 같은 백제와 신라 문화 교류의 모습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7세기 전반 백제 무왕은 서동(薯童)으로 불리던 젊은 시절 신라 선화공주와의 로맨스가 삼국유사에 전합니다.

7세기 중엽 신라의 삼국통일 직후의 것으로 보여지는 경북 칠곡 송림사 전탑 출토 장식품은 백제 귀족의 은화관식을 모티브로 하여 신라적 요소를 가미하였습니다. 7세기말 작성된 신라촌락문서는 7세기 초반 나주 복암리 백제목간에 보이는 호적 기재 방식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편 황룡사지 출토 옥, 금동허리띠장식, 경주 감은사 출토 사리기중 유리병, 황남대총 출토 금귀걸이 등 신라문물은, 공주 무령왕릉 출토 왕관식과 옥장식, 익산 미륵사지와 왕궁리 출토 유리병과 구슬 등 백제 문화와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백제와 신라 양국은 정치적 대립 속에서도 꾸준히 문화와 인적 교류를 이어나갔습니다. 백제가 멸망한 후에도 그 문화는 신라 문화 속에 살아 이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백제 문화를 특화하여 설명, 영상자료를 활용

백제는 양(梁)의 선진건축술을 수용하고 와박사(瓦博士)제도를 두어 기술자를 우대했습니다. 부여 쌍북리와 공산성에서 보는 백제칠기문화, 왕궁리유적의 정원석을 토대로 백제정원문화를 특화하여 조명합니다. 드론촬영한 공주, 부여, 익산의 8개 유적을 조망하는 대형 영상을 비롯, <백제금동대향로><서동요> 등 총 5개의 영상을 곁들여 전시의 이해를 돕습니다.


※ 자료출처 : 국립경주박물관 홈페이지(http://gyeongju.museu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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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인왕동 76 |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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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탄사지 삼층석탑(味呑寺址三層石塔)

비지정문화재


경주시 구황동 황룡사지 남쪽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이다. 탑 앞쪽에는 석등 석재가 일부 남아 있다.

일연스님이 지은 『삼국유사』에 미탄사에 관한 이야기가 남아 있다.

"최치원은 본피부 사람이다.지금도 황룡사 남쪽 미탄사 남쪽에 옛 터가 남아 있는데 여기가 바로 최후(최치원)의 옛집이 분명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내용을 근거로 하여 현재 이곳을 미탄사로 추정하고 있다.


1980년 경주시에서 국립경주박물관에 발굴조사를 의뢰하여 30일간 조사 후 현재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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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석탑 앞에 남아있는 석등 조각물의 일부


최근에 불교문화재연구소에서 시행한 "2014년도 중요 폐사지 시발굴조사 사업"을 통해 미탄(味呑)이라는 글자가 적힌 기와를 발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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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월성동 | 미탄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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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부장 ibuzang
경주시 외동읍 모화리 원원사지(사적 제46호)에 동·서로 마주보고 서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3층석탑이다. 원원사가 세워진 시기에 대해서는 일연스님이 지은 『삼국유사』권제5 신주 제6 명랑신인조에 그 내용이 전해져 오고 있다.

또 신라 서울 동남쪽 20여 리 되는 곳에 원원사(遠源寺)가 있는데, 세상에 이런 말이 전한다.
"안혜 등의 네 대덕(안혜, 낭융, 광학, 대연)이 김유신(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한 장군), 김의원(신라 중대의 귀족), 김술종(신라의 진골출신으로 진덕여왕 때 삭주도독을 지냄, 김유신과 함께 삼국통일에 큰 공을 세운 화랑 죽지랑의 아버지) 등과 함께 발원하여 세운 절이다. 네 대덕의 유골은 모두 절의 동쪽 봉우리에 묻혀 있기 때문에 이름을 사령산 조사암이라고 한다."

위의 내용으로 볼 때 원원사는 7세기 중엽에 세워진 사찰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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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원원사지 동ㆍ서 삼층석탑(慶州 遠願寺址 東ㆍ西 三層石塔)
(보물 제14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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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원사지 동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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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원사지 서탑

원원사지 두 탑은 같은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2층 기단의 네 면의 각 기둥 사이에 3구씩 전체 12구의 십이지신상(땅을 지키는 열두 신장으로 열두 방향을 가리키는 방위신이기도 하다. 호랑이·토끼·용·뱀·말·소·원숭이·닭·돼지·개·쥐·양 등 열두 마리 짐승으로 몸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이 조각되어 있다. 이들 십이지신상은 모두 연꽃무늬 대좌에 앉아 있는데, 평복의 옷차림에 옷자락이 하늘로 날리는 모습을 하고 있다. 동탑의 동쪽면 십이지상 1구와 서탑의 남쪽면 십이지신상 2구는 없어진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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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원사지 동탑 십이지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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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원사지 서탑 십이지신상

두 탑의 1층 몸돌의 네 면에는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든 사천왕상(동서남북에서 부처님의 법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동쪽의 지국천왕, 서쪽의 광목천왕, 남쪽의 증장천왕, 북쪽의 다문천왕 등이다. 우리나라 사찰의 입구에 있는 천왕문 안에 보통 모셔져 있다)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 중 서탑 남면의 사천왕상 1구는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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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원사지 동탑 사천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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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원사지 서탑 사천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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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 경주원원사지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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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부장 ibuzang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심영섭)는 지난해 12월 12일 고유제를 시작으로 조사한 사적 제16호 ‘경주 월성(慶州 月城, 이하 월성)’ 중앙지역(57,000㎡)의 시굴조사 성과를 공개한다.


Canon | Canon EOS 600D

경주 월성 중앙지역 전경(사진 : 문화재청)


이번 시굴조사는 지하 매장구조의 전반적인 양상을 파악하고자 실시하였다.  현재까지 확인된 건물지와 담장의 흔적들은 유적 내 최상층에 위치하고 있으며, 삼국 시대에서 통일신라 시대 전반에 걸친 토기와 기와들이 출토되는 것으로 볼 때 통일신라 시대 월성의 마지막 단계의 모습일 가능성이 높다. 경주 월성 조사는 1914년 일제가 남벽 부근을 처음 파헤친 지 100년 만에 우리 손으로 실시한 최초의 내부조사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3호 건물지와 부속시설(사진 : 문화재청)


조사지역에서는 기단, 초석, 적심 등 건물지 6동과 담장 12기 등이 확인되었으며, 이 중 정면 12칸, 측면 2칸의 3호 건물지(28m×7.1m)는 적심 위에 초석을 올렸고 담장과 배수로가 딸려있다. 유물은 고배, 병, 등잔, 벼루, 막새기와, 귀면기와, 치미 등 통일신라 시대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토기에는 ‘井’, ‘口’자 형태의 음각기호가 새겨진 것도 있고, 월성의 해자와 안압지에서 이미 발견된 적이 있는 ‘儀鳳四年 皆土(의봉4년(679년) 개토)‘, ’習部(습부)‘, ’漢(한)‘자명의 평기와도 있다.


도토기류 일괄(사진 : 문화재청)

7세기 제작 수막새(사진 : 문화재청)


월성은 신라 천년 수도의 궁성(宮城)으로, 서기 101년 파사왕(婆娑王)이 처음 쌓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특히 삼국유사에 신라의 국보였던 전설의 피리 ‘만파식적(萬波息笛)’이 보관되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을 만큼, 오래전부터 국가의 중요시설로 알려져 있다.

* 만파식적(萬波息笛): 신라 신문왕이 682년에 만들도록 한 신라의 국보. 나라에 근심이 생길 때 불면 평온해진다는 전설의 대나무 피리로, 경주 월성 안의 천존고(天尊庫)에 보관하였다고 전한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이번 성과를 토대로 월성 정밀발굴조사의 전환을 오는 20일 개최될 문화재위원회에 부의할 예정이다. 조사품질 향상을 위해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는 서울 풍납토성과 경복궁, 익산 왕궁리유적, 강릉 굴산사지 등 주요 국가사적을 조사한 인력을 대거 투입하여 조사단의 구성을 적극 지원하였다.


발굴조사와 최신 ICT(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기록화연구(사진학·영상공학·측량학), 성벽 축조공법 연구(토목공학), 절대연대 연구(물리학), 고대 지역생태환경연구(지리학·생물학), 고대 토지이용전략 연구(지형학·도시공학) 등 다양한 학제 간 융합연구가 병행될 계획이다. 그리고 문화재 보존과 지역개발의 효율적인 갈등관리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발굴조사 콘텐츠 관광자원화 연구, 현장중심 문화유산 교육과 활용 프로그램 개발연구 등도 예정되어 있다.


자료출처 : 문화재청(http://www.cha.go.kr/)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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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월성동 | 경주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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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부장 ibuzang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이영훈)은 2014년 10월 28일부터 2015년 2월 6일까지 특집진열 ‘금관총과 이사지왕’을 개최(신라역사관 2층 로비)합니다. 이 특집진열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7월 8일부터 9월 28일까지 개최했던 같은 이름의 전시를 옮겨온 것입니다.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은 금관총 출토의 큰칼을 보존처리하는 과정에서 ‘尒斯智王’(이사지왕)이라는 명문(銘文)을 발견하여 주목을 받았습니다. ‘尒斯智王’ 명문은 칼집 끝에 날카로운 도구로 새겨져 있습니다. 이뿐 아니라 칼의 손잡이 쪽에서 ‘尒’(이)자, 칼집 끝 뒷면에서도 ‘十’(십)자가 드러났습니다.


▶ 이사지왕명 큰칼(사진 : 국립경주박물관)

Canon | Canon EOS 5D Mark II

▶ ‘尒斯智王’(이사지왕) 명문(사진 : 국립경주박물관)


Canon | Canon EOS 5D Mark II

▶ ‘十’(십) 명문(사진 : 국립경주박물관)

‘尒斯智王’ 명문의 발견은 ‘이사지왕’은 누구인가 나아가 금관총에 묻힌 사람은 누구인가 등에 대한 여러 논의들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사지왕’이라는 왕의 이름은 금석문이나『삼국사기』와『삼국유사』등의 역사서에서 찾을 수가 없습니다. 포항 냉수리에서 발견된 ‘냉수리 비’(443년 또는 503년 건립)에는 ‘此七王等’(차칠왕등)이라는 명문이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신라에는 국왕 이외에도, 왕이라고 불렸던 이들이 여럿 존재하였다고 추정하기도 합니다. 또는 이사지왕은 신라 최고 지배자였던 왕(마립간)이 쓰던 다른 이름일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이사지왕을 비롯한 명문 자료들은 금관총의 주인공과 신라 사회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며, 우리가 풀어 나가야 할 새로운 과제들을 던져 주고 있습니다. 

이번 진열에서는 ‘尒斯智王’(이사지왕)이 새겨진 칼과 함께  ‘八’(팔), ‘十’(십), ‘尒’(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금관총 출토의 또 다른 큰칼을 공개합니다. 아다시피 금관총은 1921년 경주에서 처음으로 금관이 발견된 왕릉급 무덤으로서, 당시의 수습 조사와 정리에 대한 기록도 전시합니다. 많은 분들의 관람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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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월성동 | 국립경주박물관 신라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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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덕사지(望德寺址)
사적 7호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 낭산 남쪽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사천왕사 맞은편에 있는 절터이다. 지금 이 곳에는 금당, 강당, 동서목탑, 중문, 회랑 등의 건물터가 남아있고 절의 서쪽 편에는 당간지주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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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덕사지 당간지주(望德寺址幢竿支柱)
보물 69호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문무왕 19(679)에 중국 당나라가 침입하자 부처의 힘으로 물리치고자 사천왕사를 짓게 되었다고 한다. 그 소문이 당나라에 전해지자 예부시랑 악붕귀를 사신으로 보내어 이를 확인하려 하였다.
신라에서는 나라를 보호하는 사천왕사를 보여주는 것이 마땅치 않다고 생각하여 사천왕사 남쪽에 따로 새 절을 지어 보여 주었다.

당나라 사신이 절 앞에 이르러 말하기를 이것은 사천왕사가 아니고, 망덕요산(亡德遙山)의 절이군요하고는 끝내 들어가지 않았다. 신라 사람들이 황금 1,000냥을 주었더니 당나라로 돌아가서 신라에서는 천왕사를 지어 놓고 새 절에서 당나라 황제의 장수를 빌고 있습니다.”라고 거짓으로 보고 하였다.
이후 신라에서는 당나라 사신이 말한 망덕요산에서 그 뜻을 가져와 이 절을 망덕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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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부장 ibuzang

경주시 배동 남산기슭에 있는 석조유물로 통일신라시대의 연회장소 또는 이궁(왕이 거둥할 때 머무러는 별궁 또는 행궁)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돌로 만든 구불구불한 물길의 형태가 전복 껍질과 같다고 하여 "전복 포(鮑)"자를 써서 포석정이라 부른다.

일연스님이 지은『삼국유사』에 포석정에 관한 많은 기록들이 남아 있다. 권2 "처용랑망해사" 편을 보면 신라 제49대 헌강왕(875~886)이 포석정에 거둥했을 때 남산의 신이 나타나 춤을 추었는데, 주위 신하들은 보지 못하고 오직 왕 혼자만 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권5 효선 편을 보면 "효종랑(신라말기의 화랑으로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아버지)이 남산 포석정에서 놀자…"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을 통해 통일신라시대에 이미 포석정이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며, 신라 왕들과 화랑들의 연희 장소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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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포석정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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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포석정지(慶州鮑石亭址)
(사적 1호)

이 곳은 특히 신라 제55대 경애왕(924~927)의 비극적인 이야기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함으로 신라 천년 역사가 막을 내렸지만, 신라는 이미 후백제의 견훤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경애왕 때 그 기나긴 역사를 마감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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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에는 경애왕의 최후에 대하여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가을 9월(924), 견훤이 고울부(지금의 영천)에서 우리 군사를 침범하므로 왕은 고려 태조에게 구원을 청하였고, 태조(왕건)는 장수에게 강병 1만 명을 내주어 가서 구원케 하였다. 겨울 11월, 견훤은 구원병이 미처 도착하지 않은 틈을 타서 엄습하여 서울에 당도하였다. 왕은 비빈, 종척들과 더불어 포석정에서 잔치하고 놀다가 부지불각 중에 적병이 들이닥쳐 어찌할 바를 몰랐다…(중락)…왕은 비첩 수명과 함께 후궁에 있다가 군중으로 잡혀왔다. 견훤은 왕을 핍박하여 자살케 하고…(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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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포석정은 신라 천년의 역사가 막을 내린 비운의 현장으로 모두에게 기억되고 있지만, 최근에는 포석정에 대하여 신라왕들과 화랑들의 잔치 장소가 아니라 국가적인 행사나 제사가 행해지던 장소라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 당시 후백제 견훤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기 상황에 빠져 있었고, 경애왕이 포석정으로 행차했던 시기가 음력 11월 한 겨울인 점을 감안할 때, 잔치를 벌이며 놀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당시 경애왕은 고려 태조에게 청한 구원군이 오지 않는 위급한 상황에서 조상들을 찾아가 나라를 지키고 박씨 왕들의 지위를 유지시켜 달라며 재를 올렸을 것이라는 견해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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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진열-계사(癸巳)년 ‘신라인들이 빚은 작은 뱀’ 개최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이영훈)은 2월 5일(화)부터 3월 10일(일)까지 계사(癸巳)년 맞이 특집진열 ‘신라인들이 빚은 작은 뱀’을 국립경주박물관 미술관 1층에서 개최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국보 제195호 토우장식장경호를 비롯한 10점의 전시품을 소개합니다. 

뱀은 다산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기피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뱀은 십이지신 중 여섯 번째에 위치하며, 일년 중 음력 4월에 해당합니다. 신라의 문물 중 현재까지 전해지는 뱀은 대부분 토우의 형태입니다. 토우로 표현된 뱀들은 기다란 몸체를 구부려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포착하려 한 듯 합니다. 뱀 토우는 단독으로 장식되거나 두꺼비(혹은 개구리)를 잡아먹는 모습으로 표현되는데, 음양의 조화나 생명의 번식 등으로 해석됩니다.


Canon | Canon EOS-1Ds Mark III

국보 제195호 토우장식 장경호(사진 : 국립경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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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우장식 장경호의 세부(사진 : 국립경주박물관)


뱀 토우 장식토기는 경주의 무덤에 부장품으로 묻힌 것들이 대부분이라 죽음과의 연관성도 큰 듯 합니다. 삼국유사에는 뱀이 신라 시조인 박혁거세의 장례를 좌지우지하는 존재로 등장합니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신라인에게 뱀은 생명과 죽음의 경계선상에 위치하고, 이를 넘나들 수 있는 이중적인 존재로 받아들여진 것으로 생각됩니다.


Canon | Canon EOS 600D

뱀 토우장식 뚜껑(사진 : 국립경주박물관)

Canon | Canon EOS 600D

경주 출토 뱀 토우장식 토기(사진 : 국립경주박물관)


이번 특집진열에서 신라시대 뱀 토우를 관람하며 신라인들의 내세관과 다채로운 뱀의 모습을 만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합니다.


이 보도자료와 관련하여 보다 자세한 내용이나 취재를 원하시면

문화체육관광부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실 류정한(054-740-7602)에게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 위 내용은 국립경주박물관 "보도자료"를 인용하였습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국립경주박물관 홈페이지(http://gyeongju.museum.go.kr/)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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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월성동 | 국립경주박물관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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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부장 ibuz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