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KON CORPORATION | NIKON D50

미탄사지 삼층석탑(味呑寺址三層石塔)

비지정문화재


경주시 구황동 황룡사지 남쪽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이다. 탑 앞쪽에는 석등 석재가 일부 남아 있다.

일연스님이 지은 『삼국유사』에 미탄사에 관한 이야기가 남아 있다.

"최치원은 본피부 사람이다.지금도 황룡사 남쪽 미탄사 남쪽에 옛 터가 남아 있는데 여기가 바로 최후(최치원)의 옛집이 분명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내용을 근거로 하여 현재 이곳을 미탄사로 추정하고 있다.


1980년 경주시에서 국립경주박물관에 발굴조사를 의뢰하여 30일간 조사 후 현재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NIKON CORPORATION | NIKON D50


NIKON CORPORATION | NIKON D50

3층석탑 앞에 남아있는 석등 조각물의 일부


최근에 불교문화재연구소에서 시행한 "2014년도 중요 폐사지 시발굴조사 사업"을 통해 미탄(味呑)이라는 글자가 적힌 기와를 발굴하였다.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경상북도 경주시 월성동 | 미탄사지
도움말 Daum 지도

'塔塔雁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선사지 3층석탑  (0) 2015.06.16
미탄사지 3층석탑  (0) 2015.06.12
원원사지 동·서 3층석탑  (0) 2015.06.10
숭복사지 동·서 3층석탑  (0) 2015.06.05
감산사지 3층석탑  (0) 2015.06.04
창림사지 3층석탑  (0) 2015.06.03
Posted by 이부장 ibuzang
경주시 외동읍 모화리 원원사지(사적 제46호)에 동·서로 마주보고 서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3층석탑이다. 원원사가 세워진 시기에 대해서는 일연스님이 지은 『삼국유사』권제5 신주 제6 명랑신인조에 그 내용이 전해져 오고 있다.

또 신라 서울 동남쪽 20여 리 되는 곳에 원원사(遠源寺)가 있는데, 세상에 이런 말이 전한다.
"안혜 등의 네 대덕(안혜, 낭융, 광학, 대연)이 김유신(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한 장군), 김의원(신라 중대의 귀족), 김술종(신라의 진골출신으로 진덕여왕 때 삭주도독을 지냄, 김유신과 함께 삼국통일에 큰 공을 세운 화랑 죽지랑의 아버지) 등과 함께 발원하여 세운 절이다. 네 대덕의 유골은 모두 절의 동쪽 봉우리에 묻혀 있기 때문에 이름을 사령산 조사암이라고 한다."

위의 내용으로 볼 때 원원사는 7세기 중엽에 세워진 사찰임을 알 수 있다.

NIKON CORPORATION | NIKON D50

경주 원원사지 동ㆍ서 삼층석탑(慶州 遠願寺址 東ㆍ西 三層石塔)
(보물 제1429호)

NIKON CORPORATION | NIKON D50

원원사지 동탑

NIKON CORPORATION | NIKON D50

원원사지 서탑

원원사지 두 탑은 같은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2층 기단의 네 면의 각 기둥 사이에 3구씩 전체 12구의 십이지신상(땅을 지키는 열두 신장으로 열두 방향을 가리키는 방위신이기도 하다. 호랑이·토끼·용·뱀·말·소·원숭이·닭·돼지·개·쥐·양 등 열두 마리 짐승으로 몸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이 조각되어 있다. 이들 십이지신상은 모두 연꽃무늬 대좌에 앉아 있는데, 평복의 옷차림에 옷자락이 하늘로 날리는 모습을 하고 있다. 동탑의 동쪽면 십이지상 1구와 서탑의 남쪽면 십이지신상 2구는 없어진 상태이다.

NIKON CORPORATION | NIKON D50

원원사지 동탑 십이지신상

NIKON CORPORATION | NIKON D50

원원사지 서탑 십이지신상

두 탑의 1층 몸돌의 네 면에는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든 사천왕상(동서남북에서 부처님의 법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동쪽의 지국천왕, 서쪽의 광목천왕, 남쪽의 증장천왕, 북쪽의 다문천왕 등이다. 우리나라 사찰의 입구에 있는 천왕문 안에 보통 모셔져 있다)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 중 서탑 남면의 사천왕상 1구는 없어졌다.

NIKON CORPORATION | NIKON D50

원원사지 동탑 사천왕상

NIKON CORPORATION | NIKON D50

원원사지 서탑 사천왕상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 경주원원사지삼층석탑
도움말 Daum 지도

'塔塔雁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선사지 3층석탑  (0) 2015.06.16
미탄사지 3층석탑  (0) 2015.06.12
원원사지 동·서 3층석탑  (0) 2015.06.10
숭복사지 동·서 3층석탑  (0) 2015.06.05
감산사지 3층석탑  (0) 2015.06.04
창림사지 3층석탑  (0) 2015.06.03
Posted by 이부장 ibuzang

경주시 외동읍 말방리 토함산 자락에 있는 절터이다. 숭복사는 금당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 두탑이 나란히 마주보고 서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쌍탑가람 형식이다.
양탑 모두 2층의 기단 위에 3층으로 이루어진 석탑으로 동탑은 2층 몸돌이 없어지고, 서탑은 2층과 3층 몸돌 및 3층 지붕돌이 없어졌다. 두 탑 모두 2층 기단면에 한쪽에 2구씩 전체 8구의 팔부신중(부처님의 법을 지키고 대중을 교화하는 하늘의 장수로 팔부중 또는 천룡팔부라고도 함)이 조각되어 있다.

NIKON CORPORATION | NIKON D50

숭복사지삼층석탑 (崇福寺址三層石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94호)

특이한 점은 탑의 지붕돌 네 모서리 끝에 풍경(법당이나 불탑의 처마 또는 지붕 끝 부분에 매달아 소리를 나게 하는 작은 종)을 달았던 흔적인 구멍들이 남아있다.

NIKON CORPORATION | NIKON D50

지붕돌 모서리에 뚫려 있는 구멍(풍경을 달았던 흔적)

동탑 및 서탑 모두 1층 몸돌의 네 면에 문(門)모양이 새겨져 있다. 일반적인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는데 지붕돌 받침이 4단으로 줄어 있어 통일신라 후기에 세운 것으로 본다.
숭복사터에 있었던 귀부(거북모양의 비석받침돌)는 현재 국립경주박물관 야외정원에 전시되어 있다.

NIKON CORPORATION | NIKON D50

숭복사지 동3층석탑

NIKON CORPORATION | NIKON D50

숭복사지 서3층석탑

Apple | iPhone 4

숭복사지 귀부(국립경주박물관)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 숭복사지삼층석탑
도움말 Daum 지도

'塔塔雁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선사지 3층석탑  (0) 2015.06.16
미탄사지 3층석탑  (0) 2015.06.12
원원사지 동·서 3층석탑  (0) 2015.06.10
숭복사지 동·서 3층석탑  (0) 2015.06.05
감산사지 3층석탑  (0) 2015.06.04
창림사지 3층석탑  (0) 2015.06.03
Posted by 이부장 ibuzang

NIKON CORPORATION | NIKON D50

감산사지삼층석탑(甘山寺址三層石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95호)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의 감산사 옛 절터에 남아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3층석탑이다. 2층의 기단 위에 세워진 탑 몸돌 가운데 2~3층은 없어졌다. 각 층의 지붕돌 받침은 4단으로 되어 있다.

감산사에 모셔져 있다가 1915년 서울로 옮겨져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석조아미타불입상(국보 제82호)의 광배(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표현한 것)에 새겨진 글귀에 따르면 신라 제33대 성덕왕(재위 702~737) 18년(719) 2월 당시 중아찬(신라17관등 중 여섯번째) 김지성이 감산에 있는 자신의 토지를 내놓아 부모의 명복을 빌고, 국왕과 그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세웠던 사찰이 감산사이다.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 감산사지삼층석탑
도움말 Daum 지도

'塔塔雁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선사지 3층석탑  (0) 2015.06.16
미탄사지 3층석탑  (0) 2015.06.12
원원사지 동·서 3층석탑  (0) 2015.06.10
숭복사지 동·서 3층석탑  (0) 2015.06.05
감산사지 3층석탑  (0) 2015.06.04
창림사지 3층석탑  (0) 2015.06.03
Posted by 이부장 ibuzang

NIKON CORPORATION | NIKON D50

창림사지 3층석탑(보물 제1867호)

상층 기단석에 팔부신중이 조각되어 있다. 현재 볼 수 있는 팔부신중은 남쪽면에 아수라(阿修羅), 북쪽면에 가루라(迦樓羅), 서쪽면에 천(天), 건달바(乾달婆)등 네 개의 조각상이 남아 있다. 1층 탑신석에는 네 면에 문 모양을 조각해 놓았다. 2015년에 국가지정 문화재인 보물로 지정받았다.

NIKON CORPORATION | NIKON D7000

일연스님이 지은 삼국유사를 보면 신라 최초의 궁궐이 있던 곳이라고 기록해 놓았다.

NIKON CORPORATION | NIKON D7000

남쪽 기단석에 조각된 아수라상

NIKON CORPORATION | NIKON D7000

북쪽 기단석에 조각된 가루라상

NIKON CORPORATION | NIKON D7000

서쪽 기단석과 조각된 천과 건달바상


'塔塔雁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선사지 3층석탑  (0) 2015.06.16
미탄사지 3층석탑  (0) 2015.06.12
원원사지 동·서 3층석탑  (0) 2015.06.10
숭복사지 동·서 3층석탑  (0) 2015.06.05
감산사지 3층석탑  (0) 2015.06.04
창림사지 3층석탑  (0) 2015.06.03
Posted by 이부장 ibuzang

경상북도 경주시 서악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모전석탑이다. 일반적으로 돌을 다듬어 쌓은 탑을 석탑이라 부르고 구운 전돌(벽돌)을 사용하여 쌓은 탑을 전탑, 나무를 이용하여 세운 탑을 목탑이라고 부른다.

동아시아의 중심이 되는 3국 가운데, 중국을 전탑의 나라, 일본을 목탑의 나라라 부르고 한국을 석탑의 나라로 부른다. 우리나라에도 물론 목탑과 전탑이 있었지만 현재 남아 있는 탑들의 대부분이 석탑들이다.

벽돌로 쌓은 전탑을 모방한 석탑을 보통 모전석탑이라고 부르는데 현재 경주에 남아 있는 모전석탑은 서악동3층석탑과 경주 남산동 동3층석탑(보물 124호)을 비롯하여 근래에 복원된 경주 서남산 용장계 지곡 제3사지 3층석탑 등 3기가 있다.

NIKON CORPORATION | NIKON D50

경주 서악동 삼층석탑(慶州 西岳洞 三層石塔)
(보물 65호)

NIKON CORPORATION | NIKON D50

1층 탑몸돌에 새겨진 문과 인왕상

서악동 3층석탑은 높이가 5.1m로 탑신부(탑의 몸돌)를 받쳐주는 기단이 8매의 무사석(네모 받듯하게 다듬은 돌로 성벽이나 담벼락을 쌓는데 사용됨)을 서로 어긋나게 2단으로 쌓은 특이한 형태이다.
탑의 1층 몸돌의 동쪽면에는 문이 새겨져 있는데, 문 양옆에 인왕상(사찰이나 불교 건물의 문 또는 불상등을 지키는 불교의 수호신으로 보통 금강역사라 불린다) 2구가 돋을새김 되어 있다. 탑의 1층부터 3층 지붕돌(옥개석)의 윗면은 모두 전탑처럼 층급으로 이루어져 있어 모전석탑이라 불린다.

이 탑을 중심으로 서쪽에는 전 문성왕릉, 헌안왕릉, 진지왕릉, 진흥왕릉이 있으며, 북쪽에는 높이 5m 내외의 신라고분들이 흩어져 있고, 남쪽에는 태종무열왕릉과 그 뒷편에 신라 왕릉급에 해당하는 거대한 서악동 고분 4기가 있다.
오래전부터 『삼국사기』에 기록된 진지왕과 태종무열왕의 무덤 위치를 알려주는 영경사라는 절이 있었던 절터로 알려져 있지만 확실하지가 않다.


Posted by 이부장 ibuzang

NIKON CORPORATION | NIKON D50

경주효현리삼층석탑(慶州孝峴里三層石塔)
보물 67호

경상북도 경주시 효현동 외와마을 입구에 있는 석탑으로 통일신라 9세기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삼국통일 후 8세기까지 거대한 크기의 석탑들에 비해 그 규모가 많이 작아졌지만 신라석탑의 모습을 잘 갖추고 있다.
2중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탑몸돌)을 세웠는데 지붕돌 네 귀퉁이가 버선코와 같이 날렵하게 들려 있다. 통일신라 전성기의 석탑들은 지붕돌 받침이 보통 5단으로 되어 있는데, 이 탑의 지붕돌 받침은 4단으로 줄어들어 있다.

NIKON CORPORATION | NIKON D50


"27년(540) 가을 7월, 왕이 죽으니 시호는 법흥이라 하고, 애공사 북봉에 장사지냈다."-『삼국사기』신라본기
"가을 8월(576), 왕이 죽으니 시호를 진흥이라 하고 애공사 북봉에 장사지냈다."-『삼국사기』신라본기
"신유(661)에 죽으니 나이 59세였다. 애공사 동쪽에 장사지내고 비석을 세웠다"-『삼국유사』권제1 기이 태종춘추공

탑이 세워져 있는 이 곳을『삼국사기』와『삼국유사』에 각각 기록된 법흥왕과 진흥왕 그리고 태종무열왕의 무덤을 가리켜 주는 "애공사"가 있었던 곳으로 알려져 있지만, 법흥왕릉이라고 전하는 무덤을 제외한 나머지 왕릉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애공사가 있었던 곳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경상북도 경주시 선도동 | 경주효현리삼층석탑
도움말 Daum 지도
Posted by 이부장 ibuzang

NIKON CORPORATION | NIKON D50

경주구황리3층석탑(慶州九黃里三層石塔)
국보 37호

황복사는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 낭산 동쪽 기슭에 있는 절터로 3층 석탑과 2기의 귀부(비석을 세워 두는 거북모양의 받침돌)가 남아있고 금당터로 여겨지는 곳에 12지신상(열 두해 띠를 상징하는 동물신상)조각이 묻혀 있다.

NIKON CORPORATION | NIKON D50


임금 왕(王)이 세겨진 황복사지 귀부

절을 세운 사람과 연도는 알 수 없지만 일연스님이 지은 『삼국유사』에 의상(625~702)대사가 머리를 깎고 출가한 절이라는 기록으로 볼 때 신라 제27대 선덕여왕(632~647) 이전에 이미 절이 세워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황복(皇福)이라는 절 이름을 통해 신라왕실의 복을 빌던 절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NIKON CORPORATION | NIKON D50

1943년 일본인들이 탑을 해체, 수리하면서 2층 몸돌 안에서 금동 사리함과 금동 불상 2(국보 79호인 금제여래좌상과 국보 80호인 금제여래입상,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등 여러 가지 유물을 발견하였는데 그 가운데 사리함 뚜껑 안쪽에 어떻게 탑을 세우게 되었는지에 대한 내용과 유물의 성격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어 이 3층 석탑이 누구에 의해 세워지게 되었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신라 제31대 신문왕((681~692)이 돌아가신 후 그 아들인 신라 제32대 효소왕(692~702)이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3층 석탑을 세웠으며, 효소왕의 뒤를 이은 신라 제33대 성덕왕(702~737)706년에 사리와 불상 등을 다시 탑 안에 넣어 앞의 두 왕의 명복을 빌고, 신라왕실의 번영과 태평성대를 기원하였다.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황복사3층석탑은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몸돌)을 세운 모습으로 기단의 각 면에는 우주(바깥기둥)2개의 탱주(안기둥)가 조각되어 있다. 탑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붕돌 아랫면은 각각 5단의 받침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탑의 맨 꼭대기에는 노반(탑의 꼭대기에 있는 네모난 지붕 모양의 장식)이 남아 있다.


Posted by 이부장 ibuzang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남산에 있었던 절로 세워진 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원나라 조자앙의 『동서당집고첩발(東書堂集古帖跋)』에서 “창림사비는 신라 김생(통일신라시대의 서예가)의 글씨로 자획에 전형(典型)이 깊어 당인(唐人)의 명각(明刻)이라도 이를 능가하지 못한다.” 라고 찬양한 글로 미루어 791(원성왕 7) 이전에 세워진 절임을 알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처음 절이 세워져 고려시대까지 이어져 오다 조선 초에 없어졌다고 한다.

『삼국유사』를 보면
남산 서쪽 기슭(지금의 창림사이다)에 궁궐을 짓고 성스러운 두 아이(혁거세거서간과 알영부인)를 받들어 길렀다. 사내아이는 알에서 나왔는데 그 알이 박과 같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바가지를 '박'이라 했으므로, 아이의 성을 '박(朴)'이라 했다. 여자아이는 그가 나온 우물(알영)의 이름을 따서 이름지었다. 두 성인의 나이가 열 세 살이 되던 오봉 원년 갑자(기원전 57년)에 남자가 즉위해 왕이 되고, 여자를 왕후로 삼았다. 나라 이름을 서라벌, 또는 서벌 이라 했으며, 혹은 사라 또는 사로라고도 했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을 통해 신라 최초의 궁궐이 있었던 곳임을 알 수 있다.

NIKON CORPORATION | NIKON D7000

나정에서 바라본 창림사지

현재의 절터는 상··3단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주변에 흩어진 수 많은 초석들의 양으로 볼 때 상당히 큰 규모의 대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이곳에는 3층석탑과 쌍두귀부·석등연대 등이 남아 있는데 특히 논 주변에 있던 석탑 옥개석(지붕돌)은 지난 20096월에 절도범에 의해 도난당했으나 절도범을 잡아서 다시 찾았지만 지금은 절터에서 볼 수 없다.

NIKON CORPORATION | NIKON D50

쌍두귀부

3층 석탑으로 가는 길에 있는 소나무 숲 사이에 신라시대에 만든 이색적인 쌍두귀부가 있는데, 거북 머리 부분이 떨어져 나가고 없다. 귀부 위의 비신(비석 몸돌)은 파손되어 잃어버렸지만 당대의 명필 김생의 글이 새겨져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NIKON CORPORATION | NIKON D50

창림사지3층석탑

경주 남산 일대에 흩어져 있는 석탑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높이 약 7m에 이른다. 1976년에 주변에 흩어져 있던 탑의 부재들을 모아 복원하였다. 1828(순조 28)에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머리 부분과 무구정탑원기(일본인이 소유)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것을 추사 김정희가 그대로 묘사해 두었는데 이 기록에 의하면 석탑은 신라 문성왕 17(855)에 세운 것으로 되어 있다.
이중기단의 상층에는 팔부신중(불법을 수호하는 8종의 신장)이 조각되어 있는데, 사실적 기법을 띠고 있는 우수한 작품이다. 원래 기단 면석 각 면 모서리에 2개의 우주(바깥기둥)가 표현되고 내부에 1개의 탱주(안기둥)가 표현되어 각 면에 8종의 신장을 새겼던 것인데 현재는 남면에 아수라, 서면에 건달바, , 북면에 가루라만 남아 있다.
1층 몸돌의 네 면에는 문 모양이 새겨져 있고 문고리 모양이 돋을새김 되어 있는데 이는 부처님이 드나드는 문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탑의 지붕돌 받침은 5단으로 되어 있고, 탑 몸돌 받침은 2단으로 되어 있다. 탑의 상륜부는 모두 없어졌지만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탑꼭대기를 장식했던 높이 30cm의 앙화가 보관되어 있다.

NIKON CORPORATION | NIKON D50

아수라상-팔부신중(八部神衆)

NIKON CORPORATION | NIKON D50

가루라상-팔부신중(八部神衆)

NIKON CORPORATION | NIKON D50

천상-팔부신중(八部神衆)

NIKON CORPORATION | NIKON D50

건달바상-팔부신중(八部神衆)

불법을 수호하고, 대중을 교화하는 신장(하늘의 장수)으로 팔부중이라고도 하며, 천룡팔부라고도 한다. 천룡팔부는 천··야차·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이다.
특히 불교경전 중 법화경』·무량수경』·대반야경』 등 중요한 대승경전에 이 팔부신중이 등장하는데, 경전의 끝머리 부분에는 어김없이 팔부중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환희하며 용약(기뻐서 뛰는 모습)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즉 팔부중은 모든 부처의 가르침을 듣는 삼라만상(우주에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부처의 위덕(위엄과 덕망을 아울러 이르는 말)을 진심으로 사모하는 군중을 나타낸다.

1. : 하늘에 살면서 불법을 지킨다.
2. :
물속에 살면서 바람과 비를 오게 하는 능력을 가진 신
3. 야차 : 인도에서는 나쁜 신이자만
불교에서는 사람을 도와 이익을 주며 불법을 지키는 신
4. 건달바 :
술과 고기는 일체 먹지 않고 향기만 먹고 살며 음악을 담당하는 신
5. 아수라 :
인도에서 얼굴도 많고 팔도 많은 악한 신
6. 가루라 : 새벽 또는 태양을 인격화한 새(금시조)
로 불교의 수호신
7. 긴나라 :
인간은 아니지만 부처를 만날 때 사람을 모습을 하는 음악의 신
8. 마후라가 : 사람의 몸에 뱀의 머리를 가진 음악의 신



Posted by 이부장 ibuz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