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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0.20 선덕여왕, 세 가지 일을 미리 알다.
  2. 2012.02.21 황룡사 복원 기초연구 포럼_경주시

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동 낭산 정상에 있는 선덕여왕의 무덤이다. 외부 모습은 밑둘레에 자연석을 이용하여 2~3단으로 둘레돌(무덤의 가장자리 기슭에 돌아가면서 늘어놓은 돌로 무덤의 흙이 무너져 내리 것을 막는 역할을 함)을 쌓고 다시 흙을 둥글게 쌓아 올린 무덤이다.

선덕여왕은 신라 제27대 왕(632647)으로 성은 김씨, 이름은 덕만이다. 진평왕의 큰 딸로 어머니는 마야부인이다. 진평왕이 아들이 없이 죽자 화백회의에서 왕으로 세우고, 성조황고(聖祖皇姑 : 성스러운 여자 황제)”란 호를 올렸다. 신라에서 여자인 선덕여왕이 처음으로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성골이라는 특수한 왕족 신분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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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선덕여왕릉(新羅善德女王陵)
사적 182호

『삼국사기』삼국유사』에는 선덕여왕이 미리 알아서 맞춘 세 가지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첫 번째는 공주로 있을 때 당 태종이 보내온 모란꽃 그림에 나비가 없는 것을 보고 향기가 없는 꽃임을 알아맞힌 것으로 『삼국사기』에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진평왕 때에 당나라에서 얻어 온 모란꽃 그림과 그 씨앗을 덕만에게 보였더니 "이 꽃은 아름답긴 하나 향기가 없습니다" 하였다. 왕은 웃으며 "네게 어떻게 아느나?" 하니 "이 꽃은 뛰어나게 곱지만 그림에 나비와 벌이 없으니 이는 반드시 향기가 없는 꽃일 것입니다" 하였다. 그 씨앗을 심어보니 과연 덕만의 말과 같았다.

두 번째는 여근곡(경주시 건천읍 부산 골짜기)에 백제군이 몰래 잠입한 것을 미리 알고 군사를 보내 소탕한 일이다.
『삼국사기』에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선덕여왕 5년(636), 여름 5월에 개구리 떼가 대궐 서쪽 옥문지에 모여드니 왕이 듣고 여러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개구리의 불거진 눈은 병사들의 모습이다. 내 일찍이 들으니 서남 변방에도 옥문곡이라는 골짜기가 있는데 혹 백제군이 몰래 그곳에 들어 왔는지 알 수 없다"하고 장군 알천을 시켜 가서 수색케 하였더니 백제 장군 우소가 독산성을 습격하려고 군사 500명을 거느리고 그 곳에 숨어 있으므로 알천이 들이쳐 다 잡아 베었다.


세 번째는 자신이 죽는 날을 미리 알아맞힌 것이다.삼국유사』에 선덕여왕이 죽기 전에 남긴 유언에 대해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왕이 아무 병이 없을 때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어느 해, 어느 달, 어느 날에 죽을 것인데 나를 도리천에 묻어 달라.” 신하들이 도리천이 어디인지를 알지 못해 다시 물으니, 왕은 낭산 남쪽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과연 그날이 되자 왕이 죽었고, 신하들은 낭산 남쪽에 장사를 지냈다. 그 후 10여 년이 지난 뒤 문무왕이 낭산 아래에 사천왕사를 세우자 비로소 사람들은 그 뜻을 알게 되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도리천이란 하늘은 사천왕이 다스리는 사왕천이란 하늘 위에 있는 것인데, 낭산 아래 세워진 사천왕사가 사왕천이란 하늘이고 바로 위 왕의 무덤이 있는 낭산 정산이 바로 도리천이란 하늘이기 때문이다.

신라 최초의 여왕으로 16년 동안 신라를 다스린 선덕여왕은 분황사와 영묘사를 비롯하여 천문관측대인 첨성대를 세웠다. 그리고 끊임없이 신라를 괴롭히는 백제와 고구려의 위협을 없애기 위해 황룡사 9층 목탑을 세웠다.

선덕여왕 말년에 상대등 비담과 염종 등의 진골 귀족들이 여왕이 나라를 잘 다스리지 못한다는 구실로 반란을 일으켰다. 왕의 조카인 김춘추와 김유신 장군이 이를 막아냈지만 선덕여왕은 이 반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죽었다.


Posted by 이부장 ibuzang
경주시, 황룡사 복원 위한 포럼개최
오는 28일(화) 오후 1시부터 29일까지 - 황룡사 복원 위한 연구 성과 발표와 향후 과제 논의 
경주시와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오는 2월 28일부터 29일까지 양일간 보문단지 내 드림센터에서 황룡사복원사업에 대한 그동안의 기초연구성과를 공개하고 향후 추진계획과 정비활용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황룡사복원 기초연구 포럼을 개최한다.
이번 행사는 지난 2006년부터 진행한 각 분야의 연구 성과들을 종합하여 황룡사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앞으로 진행될 심화연구와 단계별 복원계획을 논의하는 자리로, 경주시민을 비롯한 관련 단체와 학계, 연구관계자들이 함께하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황룡사 복원 조감도_사진출처(경주시 홈페이지)

포럼의 주제는 ‘황룡사 기반연구 ‘복원고증연구 ‘정비 및 활용 ‘종합계획으로 정하고 먼저 ‘황룡사건립의 정치ㆍ사회적 배경에 대하여 조인성교수(경희대학교 역사학)의 발표를 시작으로 모두 9명의 발표와 토론이 이어지며, 이와 함께 종합토론에서는 김봉건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총장의 진행으로 발표자와 토론자, 패널들이 참여하는 질의와 토론을 벌일 계획이다. 
이에 따라 경주시는 2006년 ‘황룡사 국제학술대회, 2008년 ‘황룡사 복원연구의 현황과 과제 심포지엄에서는 총론적인 관점에서 기초연구에 대해 논의했다면 이번 포럼에서는 구체적인 복원계획과 활용 방향을 주제로 포럼을 진행할 예정이어서 관계전문가와 시민들의 여러 의견을 수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황룡사는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짓기 시작하여 17년만에 완성하고, 선덕여왕 14년(645)에는 구층목탑이 완공된 신라 최고의 호국사찰로 지난 1976년에 시작된 발굴조사로 4만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이후 학계나 일반인의 지속적인 관심을 받아 왔으며, 최근 경주시 역사도시조성사업의 대표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황룡사복원에 대하여 관련학계와 국민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포럼의 자세한 내용에 대한 문의나 참여는 경주시 역사도시과(054-779-6144)나 경주시 홈페이지(www.gyeongju.go.kr)를 방문하시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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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보덕동 | 드림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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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부장 ibuz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