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동 낭산 정상에 있는 선덕여왕의 무덤이다. 외부 모습은 밑둘레에 자연석을 이용하여 2~3단으로 둘레돌(무덤의 가장자리 기슭에 돌아가면서 늘어놓은 돌로 무덤의 흙이 무너져 내리 것을 막는 역할을 함)을 쌓고 다시 흙을 둥글게 쌓아 올린 무덤이다.

선덕여왕은 신라 제27대 왕(632647)으로 성은 김씨, 이름은 덕만이다. 진평왕의 큰 딸로 어머니는 마야부인이다. 진평왕이 아들이 없이 죽자 화백회의에서 왕으로 세우고, 성조황고(聖祖皇姑 : 성스러운 여자 황제)”란 호를 올렸다. 신라에서 여자인 선덕여왕이 처음으로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성골이라는 특수한 왕족 신분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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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선덕여왕릉(新羅善德女王陵)
사적 182호

『삼국사기』삼국유사』에는 선덕여왕이 미리 알아서 맞춘 세 가지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첫 번째는 공주로 있을 때 당 태종이 보내온 모란꽃 그림에 나비가 없는 것을 보고 향기가 없는 꽃임을 알아맞힌 것으로 『삼국사기』에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진평왕 때에 당나라에서 얻어 온 모란꽃 그림과 그 씨앗을 덕만에게 보였더니 "이 꽃은 아름답긴 하나 향기가 없습니다" 하였다. 왕은 웃으며 "네게 어떻게 아느나?" 하니 "이 꽃은 뛰어나게 곱지만 그림에 나비와 벌이 없으니 이는 반드시 향기가 없는 꽃일 것입니다" 하였다. 그 씨앗을 심어보니 과연 덕만의 말과 같았다.

두 번째는 여근곡(경주시 건천읍 부산 골짜기)에 백제군이 몰래 잠입한 것을 미리 알고 군사를 보내 소탕한 일이다.
『삼국사기』에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선덕여왕 5년(636), 여름 5월에 개구리 떼가 대궐 서쪽 옥문지에 모여드니 왕이 듣고 여러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개구리의 불거진 눈은 병사들의 모습이다. 내 일찍이 들으니 서남 변방에도 옥문곡이라는 골짜기가 있는데 혹 백제군이 몰래 그곳에 들어 왔는지 알 수 없다"하고 장군 알천을 시켜 가서 수색케 하였더니 백제 장군 우소가 독산성을 습격하려고 군사 500명을 거느리고 그 곳에 숨어 있으므로 알천이 들이쳐 다 잡아 베었다.


세 번째는 자신이 죽는 날을 미리 알아맞힌 것이다.삼국유사』에 선덕여왕이 죽기 전에 남긴 유언에 대해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왕이 아무 병이 없을 때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어느 해, 어느 달, 어느 날에 죽을 것인데 나를 도리천에 묻어 달라.” 신하들이 도리천이 어디인지를 알지 못해 다시 물으니, 왕은 낭산 남쪽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과연 그날이 되자 왕이 죽었고, 신하들은 낭산 남쪽에 장사를 지냈다. 그 후 10여 년이 지난 뒤 문무왕이 낭산 아래에 사천왕사를 세우자 비로소 사람들은 그 뜻을 알게 되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도리천이란 하늘은 사천왕이 다스리는 사왕천이란 하늘 위에 있는 것인데, 낭산 아래 세워진 사천왕사가 사왕천이란 하늘이고 바로 위 왕의 무덤이 있는 낭산 정산이 바로 도리천이란 하늘이기 때문이다.

신라 최초의 여왕으로 16년 동안 신라를 다스린 선덕여왕은 분황사와 영묘사를 비롯하여 천문관측대인 첨성대를 세웠다. 그리고 끊임없이 신라를 괴롭히는 백제와 고구려의 위협을 없애기 위해 황룡사 9층 목탑을 세웠다.

선덕여왕 말년에 상대등 비담과 염종 등의 진골 귀족들이 여왕이 나라를 잘 다스리지 못한다는 구실로 반란을 일으켰다. 왕의 조카인 김춘추와 김유신 장군이 이를 막아냈지만 선덕여왕은 이 반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죽었다.


Posted by 이부장 ibuzang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이영훈) 얼굴무늬수막새: 수증 40주년 기념특집진열을 개최합니다. 이번 전시는 1016일부터 1125일까지 미술관 2에서 열립니다.

신라의 미소로도 잘 알려져 있는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얼굴무늬수막새는 경주를 나타내는 상징물입니다. 이 수막새는 원래 일제강점기였던 1934, 경주의 한 고물상에서 당시 경주에 살던 다나카 도시노부(田中敏信)라는 일본인 의사가 구입했던 것입니다. 이 수막새는 1944년 다나카가 일본으로 돌아갈 때 갖고 갔으나, 경주박물관 박일훈 관장의 노력 끝에 197210월 다나카가 직접 박물관에 찾아와 기증하므로써 고국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올해는 얼굴무늬수막새가 우리 곁에 돌아온 지 꼭 40돌이 되는 뜻 깊은 해입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기증자인 다나카씨의 고마운 뜻을 기리면서, 얼굴무늬수막새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들을 다루어 보았습니다.


얼굴무늬수막새(人面文圓瓦當), 신라 7세기, 전 경주시 사정동(추정 영묘사 터) 출토, 길이 11.5cm, 국립경주박물관

얼굴무늬수막새(人面文圓瓦當), 통일신라, 출토지 미상, 길이 15.1cm, 국립경주박물관

얼굴무늬사래기와(人面文望板瓦), 통일신라, 출토지 미상, 높이 17.4cm, 국립경주박물관

얼굴무늬기와편(人面文瓦片), 통일신라, 대구 부인사 터 출토, 높이 8.8cm, 국립경주박물관

얼굴무늬토기(人面文土器), 통일신라, 월지(구 안압지) 출토, 입지름 9.8cm, 국립경주박물관


이번 전시에서는 삼국시대 제작 당시 얼굴무늬수막새가 있었던 위치를 살펴봅니다. 일제강점기에 발견 장소는 경주읍 사정리(沙正里, 지금의 사정동)였다고 합니다. 이곳은 신라 최초의 사찰인 흥륜사(興輪寺)가 있던 곳으로 한동안 전해왔으나, 근래 들어 영묘사(靈妙寺)라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전시품으로는 얼굴무늬수막새를 비롯하여 기와, 토기 등 사람 얼굴무늬가 표현된 신라의 미술품 7점이 선보입니다. 아울러 백제 지역에서 만들어진 얼굴 자료들도 함께 비교해 보았습니다. 고대 미술에서 사람 얼굴을 표현하는 것은 무언가를 바라는 주술적(呪術的, 불행이나 재해를 막으려고 주문을 외거나 술법을 부리는 일)인 목적이나 나쁜 것을 물리쳐달라는 벽사적(辟邪的, 요사스러운 귀신을 물리치는 것)인 행위입니다. 신라의 얼굴무늬수막새는 험상궂거나 무서운 표정 대신에 웃음으로써 나쁜 것을 달래서 돌려보낸다는 의미를 지닌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얼굴무늬수막새의 다양하고 재미있는 이미지들을 모아 사진자료로 제시하고, 우리 생활 속에 살아 숨쉬는 전통의 의미를 되새겨보고자 합니다. 모쪼록 이번 전시가 문화재 기증의 큰 뜻과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자료출처 : 국립경주박물관 보도자료(http://gyeongju.museum.go.kr/), 사진-국립경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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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월성동 | 국립경주박물관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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