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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9.01 양산재, 신라를 건국한 사로육촌의 촌장들 (4)

경상북도 경주시 탑동에 있는 사당으로 1970년에 세운 재실(무덤이나 사당 옆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은 집)이다. 신라 건국 이전 서라벌 땅에 있었던 여섯 마을(사로육촌) 촌장들의 위패(제사를 받는 사람의 이름을 적은 나무패로 보통 밤나무로 만듬)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진한 땅에는 예부터 여섯 마을이 있었다고 하며 여섯 마을의 위치와 시조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데, 각 마을의 시조들은 모두 하늘에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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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양산재(비지정문화재)

1. 알천 양산촌 : 남천 남쪽과 남산 서북쪽 일대에 위치하였다. 촌장은 알평으로 하늘에서 표암봉으로 내려왔는데 급량부 이씨의 조상이 되었다.
2. 돌산 고허촌 : 남천 이북, 서천 이동(일설에는 서천 이서)에 위치한 듯하다. 촌장은 소벌도리이며 하늘에서 형산에 내려왔는데 사량부 정씨의 조상이 되었다.
3. 무산 대수촌 : 서천의 지류인 모량천 유역에 위치한 듯하다. 촌장인 구례마가 하늘에서 이산(혹은 개비산)에 내려와 점량부 또는 모량부 손씨의 조상이 되었다.
4. 자산(취산) 진지촌 : 빈지촌·빈자촌·빙지촌이라고도 하는데 현재의 경주시 인왕동 일대에 위치한 듯하다. 촌장은 지백호라고 한다. 하늘에서 화산으로 내려와서 본피부 최씨의 조상이 되었다.

5. 금산 가리촌 : 북천 북쪽의 소금강산 일대에 위치한 듯하다. 촌장은 지타라고 한다. 하늘에서 명활산으로 내려와서 한기부 배씨의 조상이 되었다.
6. 명활산고야촌 : 명활산 서남쪽에서 낭산에 이르는 일대에 위치한 듯하다. 촌장은 호진이며 하늘에서 금강산으로 내려와 습비부 설씨의 조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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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림사지에서 바라본 양산재

『삼국사기』에는 혁거세 거서간이 나라를 세우기 전에 조선(우리가 흔히 이야기 하는 고조선)의 유민(망하여 없어진 나라의 백성)들이 산골짜기에 나뉘어 여섯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첫째는 알천 양산촌, 둘째는 돌산 고허촌, 셋째는 취산 진지촌(혹은 우진부이라고도함), 넷째는 무산 대수촌, 다섯째는 금산 가리촌, 여섯째는 명활산 고야촌이다. 이것을 진한의 육부라고 하였다.

신라 제3대 유리이사금 9년(32)에 육부(사로육촌, 진한육촌)의 명칭을 고치고 이어서 성을 내려 주었다. 양산부(알천 양산촌)는 양부로 고치고 성은 이씨(시조의 이름은 알평), 고허부(돌산 고허촌)는 사량부로 고치고 성은 최씨(시조의 이름은 소벌도리), 대수부(무산 대수촌)는 점량부(모량)로 고치고 성은 손씨(시조의 이름은 구례마), 우진부(취산 진지촌)는 본피부로 고치고 성은 정씨(시조의 이름은 지백호), 기리부(금산 가리촌)는 한지부로 고치고 성은 배씨(시조의 이름은 지타), 명활부(명활산 고야촌)는 습비부로 고치고 성은 설씨(시조의 이름은 호진)로 하였다.  

신라를 세우는데 큰 역할을 한 여섯 마을의 시조인 촌장들의 성과 이름에 대해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기록에 차이가 있는데, 삼국사기의 기록을 따르는 것이 좋다.

사로육촌은 삼한 중 진한의 한 소국인 사로국을 이루었던 6개의 촌락으로 서벌육촌이라고도 한다. 삼국사기에는 알천양산촌, 돌산고허촌, 취산진지촌, 무산대수촌, 금산가리촌, 명활산고야촌 등 6개 촌이 서기 32년(유리이사금 9)에 6부로 고쳤다고 한다. 6촌의 위치는 지금의 경주시 일대이며, 각 촌의 크기는 지름이 약 10㎞ 정도였다고 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록된 진한육촌(육부)과 여섯 성씨와의 관계

 


Posted by 이부장 ibuz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