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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림사지 3층석탑(보물 제1867호)

상층 기단석에 팔부신중이 조각되어 있다. 현재 볼 수 있는 팔부신중은 남쪽면에 아수라(阿修羅), 북쪽면에 가루라(迦樓羅), 서쪽면에 천(天), 건달바(乾달婆)등 네 개의 조각상이 남아 있다. 1층 탑신석에는 네 면에 문 모양을 조각해 놓았다. 2015년에 국가지정 문화재인 보물로 지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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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연스님이 지은 삼국유사를 보면 신라 최초의 궁궐이 있던 곳이라고 기록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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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기단석에 조각된 아수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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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기단석에 조각된 가루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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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기단석과 조각된 천과 건달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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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부장 ibuzang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은 보물 제1758호 ‘포항 중성리 신라비’를 국보로 승격 예고하고, 기타 13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하였다.


포항 중성리 신라비(浦項 中城里 新羅碑)-(사진 : 문화재청)


‘포항 중성리 신라비(浦項 中城里 新羅碑)’는 2012년에 보물 제1758호로 지정된 현존 최고(最古)의 신라비이다. 이 비는 1면 12행에 모두 203자가 각자(刻字)되어 있으며, 신라 관등제의 성립 과정, 신라 6부의 내부 구조와 지방 통치, 분쟁 해결 절차, 궁(宮)의 의미, 사건 판결 후 재발방지 조치 등 신라의 정치·경제·문화상을 알려 주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역사적·학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한, 비문의 글씨체는 고구려의 광개토대왕비와 통하는 고예서(古隸書)로 신라특유의 진솔미를 보여주고 있으며, 단양적성비에서 보이는 고해서(古楷書)의 전초(顚草)이며 선구가 된다는 점에서 국보 제242호 울진 봉평리 신라비, 국보 제264호 포항 냉수리 신라비보다도 더욱 신라적 풍격을 보이고 있다. 이밖에 포항 중성리 신라비는 제작시기에서도 이미 국보된 지정된 지증왕 4년(503) 포항 냉수리 신라비, 법흥왕 11년(524) 울진 봉평리 신라비보다도 앞선 지증왕 2년(501)에 제작되어 국보로서 승격 가치가 있다.


‘금동국왕경응조무구정탑원기(金銅國王慶膺造無垢淨塔願記)’는 통일신라 46대 문성왕(재위 839~857)이 대중(大中) 3년(855)에 탑을 세우면서 납입한 금동판 형태의 발원문으로, 1824년에 경주 남산 창림사 삼층석탑이 도괴될 때 무구정광다라니경과 함께 발견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 탑원기는 이미 발견된 금동염거화상탑지나 경주 황룡사 구층목탑 금동찰주본기 등과 유사한 시기의 금속제 명문 자료로, 불교사는 물론 금속공예사, 서예사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금동국왕경응조무구정탑원기(金銅國王慶膺造無垢淨塔願記)-(사진 : 문화재청)


2014/09/12 - [경주문화유산답사/신라 천년 역사의 시작과 끝] - 창림사, 국왕경응조무구정탑원기



‘경주 황룡사 구층목탑금동찰주본기(慶州 皇龍寺 九層木塔金銅刹柱本記)’는 통일신라 경문왕 11년에 왕의 명에 의해 황룡사의 구층목탑을 중수하면서 기록한 실물자료로, 구층목탑의 건립 과정과 중수 과정을 후대의 역사서가 아닌 중수 당시에 제작된 유물을 통해 생생히 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뿐만 아니라, 이 시기 유행했던 탑지(塔誌)의 서술체계는 물론 서체 등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며, 사리장치 품목과 안치장소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고대 탑파의 사리장엄 의식 연구에도 소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으며, 사리함의 문비(門扉) 내․외면에 선각된 신장상은 절대연대(872년)를 가진 유품으로 불교조각사 연구에 기준이 된다.


경주 황룡사 구층목탑금동찰주본기(慶州 皇龍寺 九層木塔金銅刹柱本記)-(사진 : 문화재청)


문화재청은 이번에 국보․보물로 지정 예고한 문화재 14건에 대하여 30일간의 지정 예고 기간을 거쳐 각계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할 예정이다.


자료출처 : 문화재청(http://www.cha.go.kr/) 보도자료

Posted by 이부장 ibuzang

국왕경응조무구정탑원기(國王慶膺造無垢淨塔願記)

-국왕 경응(신라 제46대 문성왕의 이름)이 무구정탑을 만들고 바램을 기록한 글-

한림랑(신라시대의 관직으로 왕명을 문서로 작성하고 왕의 자문(의견)에 응하던 한림대의 우두머리, 이 관직에는 문장과 학문에 능한 사람들이 임명됨)으로서 새로이 추성군(지금의 전남 담양군) 태수(통일신라시대 군 단위에 파견된 지방관, 지금의 군수)를 제수(임금이 직접 벼슬을 내리던 일) 받은 김입지가 국왕의 명을 받아 지음.

신라 제46대 문성왕(재위 839~857) 17년(855)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무구정탑기 금동판
(사진출처 : 경향신문)

추사 김정희의 모사본(사진출처 : 경향신문)

듣건데 경전에서 말하기를 공덕(착한 일을 하여 쌓은 업적과 어진 덕)을 짓는 데에는 만 가지의 방법이 있지만, 만물에 무한한 이로움을 주는 것은 탑을 짓는 것 만한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생각건대 국왕께서는 여러 겁(, 무한히 긴 시간) 동안 선행을 행하셔서 지위가 인간세계와 천상세계에서 으뜸이 되셨습니다. 이제 또한 생명이 있는 존재가 고해(苦海, 괴로운 인간세계)에 떠다니면서 육도(六途, 불교에서 깨달음을 얻지 못한 사람들이 반복하여 계속 태어나는 6가지 세계)에 순환하는 것을 불쌍히 여기셔서 장차 그들을 구원할 길을 만들어 부처의 정토로 이끌고자 하시는데, 그것을 위해서는 무구정탑(無垢淨塔, 불교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에 의하여 만든 탑)을 건립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다. 이에 지극한 정성을 다하여 모든 중생을 구제할 것을 서원(소원을 세우고 그것을 이루고자 맹세하는 일)하시고서 전국의 장인 중에 뛰어난 사람을 뽑고, 여러 산의 좋은 돌을 골라 캐어서 여러 층의 탑을 만들고 사리를 그 안에 넣었습니다. 공손히 바라건데 이 공덕이 멀리는 하늘이 끝나는 저편 너머까지, 위로는 높고 높은 곳 너머까지 미쳐서 저 꿈틀거리는 모든 영혼들에게까지 이익이 되고자 합니다. 또한 국왕께서는 영원히 인간세계와 천상세계의 주인이 되시고, 업보가 다하여 돌아가시는 날을 당하셔서는 곡식을 나누어 보시한 이름이 가장 높은 자리에 들기를 원합니다.

당나라 대중 9(855), 을해년 4월 윤달 일에 세움.

왕명을 받은 수조탑사(修造塔使, 총책임자 임시직)(국왕의) 종제(친척)이며 사지(소사라고도 하는데 신라 17관등 중 열 세 번째) 웅주(충청남도 공주시) 기량현(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령 김예(신라 제48대 경문왕 때 이찬(신라 17관등 중 두 번째)이었으나 반역을 꾀하다 사형을 받음)

-이하 생략-

-해설문 출처 : 경주의 문화유산, 답사자료 1집, 이근직, 경주박물관회, 1998
-1100년 전 창림사 탑이 세워진 내력이 담긴 금동원판이 최근에 발견됨. 2월 28일자 경향신문에 상세한 기사내용이 있음.

Posted by 이부장 ibuzang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남산에 있었던 절로 세워진 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원나라 조자앙의 『동서당집고첩발(東書堂集古帖跋)』에서 “창림사비는 신라 김생(통일신라시대의 서예가)의 글씨로 자획에 전형(典型)이 깊어 당인(唐人)의 명각(明刻)이라도 이를 능가하지 못한다.” 라고 찬양한 글로 미루어 791(원성왕 7) 이전에 세워진 절임을 알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처음 절이 세워져 고려시대까지 이어져 오다 조선 초에 없어졌다고 한다.

『삼국유사』를 보면
남산 서쪽 기슭(지금의 창림사이다)에 궁궐을 짓고 성스러운 두 아이(혁거세거서간과 알영부인)를 받들어 길렀다. 사내아이는 알에서 나왔는데 그 알이 박과 같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바가지를 '박'이라 했으므로, 아이의 성을 '박(朴)'이라 했다. 여자아이는 그가 나온 우물(알영)의 이름을 따서 이름지었다. 두 성인의 나이가 열 세 살이 되던 오봉 원년 갑자(기원전 57년)에 남자가 즉위해 왕이 되고, 여자를 왕후로 삼았다. 나라 이름을 서라벌, 또는 서벌 이라 했으며, 혹은 사라 또는 사로라고도 했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을 통해 신라 최초의 궁궐이 있었던 곳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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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정에서 바라본 창림사지

현재의 절터는 상··3단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주변에 흩어진 수 많은 초석들의 양으로 볼 때 상당히 큰 규모의 대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이곳에는 3층석탑과 쌍두귀부·석등연대 등이 남아 있는데 특히 논 주변에 있던 석탑 옥개석(지붕돌)은 지난 20096월에 절도범에 의해 도난당했으나 절도범을 잡아서 다시 찾았지만 지금은 절터에서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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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두귀부

3층 석탑으로 가는 길에 있는 소나무 숲 사이에 신라시대에 만든 이색적인 쌍두귀부가 있는데, 거북 머리 부분이 떨어져 나가고 없다. 귀부 위의 비신(비석 몸돌)은 파손되어 잃어버렸지만 당대의 명필 김생의 글이 새겨져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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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림사지3층석탑

경주 남산 일대에 흩어져 있는 석탑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높이 약 7m에 이른다. 1976년에 주변에 흩어져 있던 탑의 부재들을 모아 복원하였다. 1828(순조 28)에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머리 부분과 무구정탑원기(일본인이 소유)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것을 추사 김정희가 그대로 묘사해 두었는데 이 기록에 의하면 석탑은 신라 문성왕 17(855)에 세운 것으로 되어 있다.
이중기단의 상층에는 팔부신중(불법을 수호하는 8종의 신장)이 조각되어 있는데, 사실적 기법을 띠고 있는 우수한 작품이다. 원래 기단 면석 각 면 모서리에 2개의 우주(바깥기둥)가 표현되고 내부에 1개의 탱주(안기둥)가 표현되어 각 면에 8종의 신장을 새겼던 것인데 현재는 남면에 아수라, 서면에 건달바, , 북면에 가루라만 남아 있다.
1층 몸돌의 네 면에는 문 모양이 새겨져 있고 문고리 모양이 돋을새김 되어 있는데 이는 부처님이 드나드는 문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탑의 지붕돌 받침은 5단으로 되어 있고, 탑 몸돌 받침은 2단으로 되어 있다. 탑의 상륜부는 모두 없어졌지만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탑꼭대기를 장식했던 높이 30cm의 앙화가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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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라상-팔부신중(八部神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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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루라상-팔부신중(八部神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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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팔부신중(八部神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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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달바상-팔부신중(八部神衆)

불법을 수호하고, 대중을 교화하는 신장(하늘의 장수)으로 팔부중이라고도 하며, 천룡팔부라고도 한다. 천룡팔부는 천··야차·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이다.
특히 불교경전 중 법화경』·무량수경』·대반야경』 등 중요한 대승경전에 이 팔부신중이 등장하는데, 경전의 끝머리 부분에는 어김없이 팔부중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환희하며 용약(기뻐서 뛰는 모습)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즉 팔부중은 모든 부처의 가르침을 듣는 삼라만상(우주에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부처의 위덕(위엄과 덕망을 아울러 이르는 말)을 진심으로 사모하는 군중을 나타낸다.

1. : 하늘에 살면서 불법을 지킨다.
2. :
물속에 살면서 바람과 비를 오게 하는 능력을 가진 신
3. 야차 : 인도에서는 나쁜 신이자만
불교에서는 사람을 도와 이익을 주며 불법을 지키는 신
4. 건달바 :
술과 고기는 일체 먹지 않고 향기만 먹고 살며 음악을 담당하는 신
5. 아수라 :
인도에서 얼굴도 많고 팔도 많은 악한 신
6. 가루라 : 새벽 또는 태양을 인격화한 새(금시조)
로 불교의 수호신
7. 긴나라 :
인간은 아니지만 부처를 만날 때 사람을 모습을 하는 음악의 신
8. 마후라가 : 사람의 몸에 뱀의 머리를 가진 음악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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