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이종훈)는 경주 동궁과 월지(사적 제18호, 옛 사적명 : 안압지)의 북동쪽 인접지역에 대한 발굴조사 성과를 26일 오후 2시 30분부터 발굴현장에서 일반에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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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동궁과 월지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직후 문무왕 14년(674년)에 세워진 동궁과 주요 관청이 있었던 곳으로, 1975년 문화재관리국(문화재청 전신) 경주고적발굴조사단에 의해 처음 조사되었다. 첫 조사 당시 인공 연못, 섬, 동궁 관련 건물지 일부가 발굴 되었으며, 3만 여 점의 유물이 출토 되면서 학계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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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2007년 동궁과 월지 북동쪽 인접지역에 대한 발굴조사를 시작해 지금까지 대형건물지군, 담장, 배수로, 우물 등 동궁 관련 시설을 꾸준히 확인하고 있으며, 2007년 이전에 출토된 것과 동일한 종류의 기와와 벽돌, 토기류 등의 유물들도 계속 출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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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공개 되는 유구 중에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수세식 화장실 유구이다. 이 유구는 화장실 건물 내에 변기시설, 오물 배수시설까지 함께 발굴된 신라 왕궁의 화장실 유구인 것으로 확인됐다. 화장실 유구는 초석건물지 내에 변기가 있고, 변기를 통해 나온 오물이 잘 배출되어 나갈 수 있도록 점차 기울어지게 설계된 암거(暗渠)시설까지 갖춘  복합 변기형 석조물이 있는 구조이다. 변기형 석조 구조물은 양 다리를 딛고 쪼그려 앉을 수 앉는 판석형 석조물과 그 밑으로 오물이 밖으로 나갈 수 있게  타원형 구멍이 뚫린 또 다른 석조물이 조합된 형태이며, 구조상 변기형 석조물을 통해 내려간 오물이 하부의 암거로 배출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 변기형 석조물: 불국사에서 유사한 형태의 변기형 석조물이 확인된 바 있으며, 형태적 측면에서 화장실 부재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됨

  * 암거(暗渠)시설: 지하에 고랑을 파서 물을 빼는 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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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방식 변기에 물을 흘려 오물을 제거하는 수세식으로 추정되며, 물을 유입하는 설비가 따로 갖추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준비된 항아리 등에서 물을 떠서 변기하부로 오물을 씻어 내보내는 방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동궁과 월지 화장실 유구의 특징은 통일신라 최상위 계층의 화장실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 준다는 것이다. ▲ 고급석재인 화강암을 가공하여 만든 변기시설과 ▲ 오물 제거에 수세식 방식이 사용된 점, ▲ 변기 하부와 오물 배수시설 바닥에 타일 기능의 전돌(쪼개어 만든 벽돌)을 깔아 마감한 점 등을 미루어 볼 때 통일신라 왕궁에서 사용된 고급 화장실의 실체를 짐작할 수 있다.

현재까지 국내에서는 변기시설만 발견(불국사, 8세기)되거나 화장실 유구(익산 왕궁리, 7세기 중엽)만 확인되었을 뿐, 화장실 건물과 변기시설 그리고 오물 배수시설이 이렇게 같이 발굴된 사례는 없었다. 이번 동궁과 월지에서 확인된 화장실 유구는 화장실이라는 공간과 그 부속품들이 한자리에서 발견된 최초의 사례로, 현재까지 조사된 통일신라 시대까지의 고대 화장실 중 가장 고급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나아가, 신라 왕실의 화장실 문화의 발달 정도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발굴현장 동편에서 동궁과 월지의 출입문으로 추정되는 대형의 가구식 기단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건물지의 외곽을 따라 화강암재의 가구식 기단의 지대석과 계단시설이 2곳 남아있는데, 인근의 도로(임해로) 때문에 가로막혀 건물지 동서방향의 규모를 정확히 알 수는 없는 상태지만, 남북 21.1m, 동서 9.8m(추정) 정도라서 전체의 규모를 얼추 짐작할 수 있는 단서는 될 수 있다.

  * 가구식(架構式) 기단: 석조기단의 일종으로 주로 화강석을 사용해 만드는데 그 만드는 방식이 마치 목조가구와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며 통일신라 시대 주요 건물지에서 주로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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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지의 성격을 추정해보면, 통일신라 시대 왕경 남북도로에 맞닿아 있다는 점, 건물지 규모에 비해 넓은 계단시설을 갖추고 있다는 점 등을 볼 때 문지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문은 아니더라도 동쪽에 자리한 점으로 보아 그동안 동궁과 월지에서 한 번도 발견된 적 없던 출입문이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발견이며, 유적 전체의 규모와 경계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 현재 인왕동 박물관네거리에서 시작하여 동궁과 월지와 황룡사 사이를 지나는 경주 임해로 하부에는 통일신라 시대의 왕경 남북대로가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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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동궁 내 생활과 관련된 창고시설과 물 마시는 우물을 확인하였고, 다양한 생활유물 등도 출토되어 신라 왕궁의 일상생활에 대한 연구자료로 확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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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26일 오후 2시 30분에 개최한 현장설명회를 통해 관계 분야 전문가, 일반 시민과 발굴성과를 공유하고 소통해 나갈 것이다. 아울러 경주 동궁과 월지 발굴조사와 심화연구를 계속 진행하여 신라 왕궁 연구의 새로운 동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자료출처 : 문화재청(www.ch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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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산사지삼층석탑(甘山寺址三層石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95호)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의 감산사 옛 절터에 남아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3층석탑이다. 2층의 기단 위에 세워진 탑 몸돌 가운데 2~3층은 없어졌다. 각 층의 지붕돌 받침은 4단으로 되어 있다.

감산사에 모셔져 있다가 1915년 서울로 옮겨져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석조아미타불입상(국보 제82호)의 광배(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표현한 것)에 새겨진 글귀에 따르면 신라 제33대 성덕왕(재위 702~737) 18년(719) 2월 당시 중아찬(신라17관등 중 여섯번째) 김지성이 감산에 있는 자신의 토지를 내놓아 부모의 명복을 빌고, 국왕과 그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세웠던 사찰이 감산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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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 감산사지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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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골(냉골)이라고 부르는 삼릉계곡의 왼쪽 능선 위에 있는 이 석불좌상은 불상의 높이가 142cm이고 불상이 앉은 대좌의 높이는 96.7cm이다.

불상의 머리 위 정수리에는 큼직한 육계(상투 모양의 머리로 지혜를 뜻함)가 우뚝 솟아 있고 머리칼은 나발(소라껍질처럼 틀어 말린 모양의 머리칼, 곱슬머리)로 세밀하게 조각되어 있다. 풍만하고 둥근 얼굴에 두 귀는 짧게 표현되었으며 목에는 세 개의 주름인 삼도(부처님의 목에 있는 3개의 주름으로 지옥, 아귀, 축생을 제도할 수 있는 위력을 상징함)가 가늘게 새겨져 있다.

편단우견(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에만 걸쳐 입은 옷차림)의 옷주름선은 간결하게 표현되어 풍만한 몸체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불상의 손 모습은 항마촉지인(왼손을 무릎 위에 두고 오른손은 내리어 땅을 가리키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손 모습으로 마귀의 항복을 받아내는 것을 뜻함)하고 있으며, 허리는 가늘고 결가부좌로 앉은 자세는 당당하고 안정감이 있으며 동시에 부처로서의 권위와 위엄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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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慶州 南山 三陵溪 石造如來坐像)
(보물 제666호)

불상의 뒤쪽에 세워 놓은 광배는 크게 파손되어 윗부분이 3분의 1 정도 없어진 상태로 불상 대좌 뒤쪽에 떨어져 있었으며, 얼굴은 코밑에서 턱까지 떨어져 나가 시멘트가 붙여져 있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2007년 봄에 시작된 정비작업을 통해 2008년에 원래의 모습에 가깝게 고쳐 놓았다.

둥근 두광과 신광이 돌출 선으로 구분된 배 모양의 거신광배의 안쪽에는 연화문(연꽃 모양의 무늬)과 당초문(덩굴무늬)을 새겼고 그 주위에 화염문(타오르는 불꽃 모양의 무늬)을 둘렀다.

불상이 앉은 대좌는 상··하대로 구성되었는데, 상대에는 화려한 연꽃무늬를 조각하였으며, 8각 중대석의 각 면에는 간략하게 안상(코끼리 눈 모양)을 조각하였다. 하대는 단순한 8각 대석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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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하기 전 모습01 (얼굴에 시멘트를 발라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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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하기 전 모습02 (깨어져 방치되어 있는 광배)

연꽃무늬와 안상이 조각된 8각의 대좌 위에 당당하고 안정된 자세로 앉아 있는 이 불상은 89세기에 만들어진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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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부장 ibuzang

경주 남산의 삼릉계곡에 있는 이 불상(높이 1.5m)은 통일신라 시대의 작품으로, 돌기둥 같은 암벽에 돋을새김으로 조각되어 있다. 불상이 조각되어 있는 바위면 전체를 광배(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 한 것으로 머리에서 나오는 빛을 두광, 몸에서 나오는 빛을 표현한 것을 신광이라고 함)로 삼고, 연꽃무늬 대좌 위에 서 있는 관음보살(세상의 모든 불행과 고통으로부터 사람들을 지켜주고 세상을 구하는 보살, 관세음보살 또는 관자재보살이라고도 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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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릉계곡마애관음보살상 (三陵溪谷磨崖觀音菩薩像)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9호)

이 불상의 머리에는 보관(보석으로 화려하게 꾸민 모자)을 쓰고 있으며, 부드러운 미소를 띤 얼굴은 부처의 자비스러움이 잘 표현되어 있다. 오른손은 들어서 가슴에 대고, 아래쪽으로 내린 왼손에는 보병(꽃병이나 물병을 아름답게 이르는 말로 정병이라고도 한다. 관음보살이 보통 들고 있는데 이 병에 들어 있는 물로 모든 중생들의 고통을 덜어 주고 갈증을 해소해 준다고 함)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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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의 몸 아래쪽은 군의(허리에서부터 아래를 덮은 긴치마 모양의 옷)를 묶은 띠가 허리에서 무릎 바로 위까지 늘어져 있고, 양 다리에 각각 U자 모양의 옷주름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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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부장 ibuzang

삼릉에서 개울을 따라 계곡으로 약 300m쯤 가면 길 옆 바위 위에 머리 없는 석불좌상이 앉아 있다이 불상의 높이는 1.6m이고 양 무릎 너비가 1.56m되는 큰 좌불이다.

이 불상은 1964년 등산객에 의해 발견되어 현재의 위치로 옮겨 놓았는데 원래의 위치는 이곳에서 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불상의 머리는 없어졌으나 목에는 삼도(악인이 죽어서 가는 세 가지의 괴로운 세계 즉 지옥도, 축생도, 아귀도이다)가 뚜렷하게 남아 있고, 매우 정교하게 조각된 법의(승려가 입는 가사나 장삼 따위의 옷)에는 옷을 묶는 매듭과 함께 옷주름들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불상의 뒷면에도 옷자락이 표현되어 잇다.

무릎의 양쪽이 모두 떨어져 나가 불상의 수인(모든 불보살과 제천선신의 깨달음의 내용이나 활동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표시로 가운데 또는 양쪽 손가락으로 나타내는 모양)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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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릉계곡석조석가여래좌상(三陵溪谷石造釋迦如來坐像)
(비지정문화재)

편안히 앉은 자세와 당당함이 넘치는 가슴과 넓은 어깨는 8세기 중엽 신라 전성기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불상의 띠 매듭은 용장사지 삼륜대좌불과 유사하며, 삼각형으로 마무리된 법의 끝자락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진 삼릉계 약사여래좌상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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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밀하게 조각된 옷 주름과 옷을 묶는 매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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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 낭산 서쪽기슭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조 건축물로 능지탑 또는 연화탑으로 불리어 왔다. 아래 쪽 기단 4면에는 12지신상이 새겨져 있는데, 이 중 남쪽면의 뱀, 동쪽 면의 호랑이, 용이 새겨진 조각은 없어지고 현재는 9구의 조각상만 남아 있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 제30대 문무왕(재위 661~681) 내가 죽은 후 열흘 안에 고문 바깥뜰에서 인도식으로 불로 화장하라고 유언을 하였는데, 능지탑 주변에서 문무왕릉비 조각이 발견되었고, 1975년 해체, 발굴조사 때 주변 지층이 까맣게 거슬려 있는 것이 확인되어 문무대왕의 화장터로 짐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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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능지탑지 (慶州陵只塔址)
시도기념물 34호(경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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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지탑 원숭이상(12지신상)

문무왕의 유조(임금의 유언), 『삼국사기』권 제7 신라본기 제7
21년 가을 71일 왕이 죽으니 시호를 문무(文武)라 하였다. 모든 신하들이 왕의 유언에 따라서 동해(東海) 어귀의 큰 돌 위에 장사하였다.(세속의 전설에는 왕이 변하여 용이 되었다하여 그 돌을 대왕석이라 불렀다).

부덕한 몸이 어지러운 운을 만나고 전쟁의 때를 당하여 서쪽을 정벌하고 북쪽을 토벌하여 영토를 안정시켰고, 배반하는 무리를 죄주고 협조하는 무리를 불러들여 멀고 가까운 곳을 모두 편안케 하였다.

위로는 조상들의 남기신 염려를 안심시켰고 아래로는 부자의 오랜 원수를 갚았으며, 살아남은 사람과 죽은 사람에게 상을 두루 주었고 벼슬을 터서 중앙과 지방에 있는 사람에게 균등하게 하였다. 무기를 녹여 농기구를 만들었으며 백성을 어질고 장수하는 땅으로 만들었다. 세금을 가볍게 하고 요역을 들어주니 집집이 넉넉하고 백성들이 풍요하여 민간은 안정되고 나라 안에 근심이 없게 되었다. 곳간에는 곡식이 산언덕처럼 쌓여 있고 감옥은 풀이 무성하게 되니, 신과 인간 모두에게 부끄럽지 않고 관리와 백성의 뜻을 저버리지 않았다고 말할 만하다.

스스로 온갖 어려운 고생을 무릅쓰다가 마침내 고치기 어려운 병에 걸렸고, 정치와 교화에 근심하고 힘쓰느라 더욱 심한 병이 되었다. 목숨은 가고 이름만 남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니 홀연히 긴 밤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찌 한스러움이 있겠는가?

태자(신문왕)는 일찍이 밝은 덕을 오래 쌓았고 오랫동안 태자의 자리에 있었으니, 위로는 여러 재상에서 아래로는 뭇 관원들에 이르기까지 죽은 사람을 보내는 도리를 어기지 말고 살아 있는 이 섬기는 예의를 빠뜨리지 말라. 종묘의 주인은 잠시도 비워서는 안 되니 태자는 곧 관 앞에서 왕위를 잇도록 하라.

또 산과 골짜기는 변하여 바뀌고 사람의 세대로 바뀌어 옮아가니, 오나라 왕의 북산무덤에서 어찌 금으로 만든 물오리 모양의 빛나는 향로를 볼 수 있을 것이며 위나라 임금(조조)이 묻힌 서릉의 망루는 단지 동작이라는 이름만 전할 뿐이다. 지난날 만사를 처리하던 영웅도 마침내는 한 무더기의 흙이 되어 나무꾼과 목동은 그 위에서 노래하고 여우와 토끼는 그 옆에 굴을 판다. 헛되이 재물을 쓰는 것은 서책에 꾸짖음만 남길 뿐이요, 헛되이 사람을 수고롭게 하는 것은 죽은 사람의 넋을 구원하는 것이 못된다. 가만히 생각하면 슬프고 애통함이 끝이 없을 것이나, 이와 같은 일은 즐거이 행할 바가 아니다.

죽고 나서 열흘이 지나면 곧 궁궐의 문 바깥뜰에서 서국(인도)의 의식에 따라 화장하라. 상복을 입는 등급은 정해진 규정이 있거니와 장례를 치르는 제도는 검소하고 간략하게 하는데 힘쓰라. 변경의 성과 진을 지키는 일과 주와 현의 세금 징수는 긴요한 것이 아니면 마땅히 모두 헤아려 폐지하고 율령격식(형벌과 행정에 관한 법)에 불편한 것이 있으면 곧 고치도록 하라. 멀고 가까운 곳에 널리 알려 이 뜻을 알도록 할 것이며 주관하는 이는 즉시 시행하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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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구황리3층석탑(慶州九黃里三層石塔)
국보 37호

황복사는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 낭산 동쪽 기슭에 있는 절터로 3층 석탑과 2기의 귀부(비석을 세워 두는 거북모양의 받침돌)가 남아있고 금당터로 여겨지는 곳에 12지신상(열 두해 띠를 상징하는 동물신상)조각이 묻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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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왕(王)이 세겨진 황복사지 귀부

절을 세운 사람과 연도는 알 수 없지만 일연스님이 지은 『삼국유사』에 의상(625~702)대사가 머리를 깎고 출가한 절이라는 기록으로 볼 때 신라 제27대 선덕여왕(632~647) 이전에 이미 절이 세워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황복(皇福)이라는 절 이름을 통해 신라왕실의 복을 빌던 절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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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일본인들이 탑을 해체, 수리하면서 2층 몸돌 안에서 금동 사리함과 금동 불상 2(국보 79호인 금제여래좌상과 국보 80호인 금제여래입상,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등 여러 가지 유물을 발견하였는데 그 가운데 사리함 뚜껑 안쪽에 어떻게 탑을 세우게 되었는지에 대한 내용과 유물의 성격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어 이 3층 석탑이 누구에 의해 세워지게 되었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신라 제31대 신문왕((681~692)이 돌아가신 후 그 아들인 신라 제32대 효소왕(692~702)이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3층 석탑을 세웠으며, 효소왕의 뒤를 이은 신라 제33대 성덕왕(702~737)706년에 사리와 불상 등을 다시 탑 안에 넣어 앞의 두 왕의 명복을 빌고, 신라왕실의 번영과 태평성대를 기원하였다.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황복사3층석탑은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몸돌)을 세운 모습으로 기단의 각 면에는 우주(바깥기둥)2개의 탱주(안기둥)가 조각되어 있다. 탑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붕돌 아랫면은 각각 5단의 받침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탑의 맨 꼭대기에는 노반(탑의 꼭대기에 있는 네모난 지붕 모양의 장식)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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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 배동의 삼릉 남쪽, 삿갓골(삿갓 모양의 작은 골짜기)에 있는 불상으로 통일신라 시대(8세기경)에 조각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불상은 입상으로 상반신 일부와 하반신 일부가 남아 있고 그리고 불상을 세워 두었을 것으로 보이는 연화대좌 일부가 부셔진 채로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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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남산입곡석불두 (慶州南山笠谷石佛頭)-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94호


불상의 상반신은 머리 뒷면 광배 일부와 허리 아래 부분이 잘려 없어졌다. 머리에는 소라껍질 모양으로 도르라지게 표현된 나발과 상투모양의 육계가 큼직하게 조각되어 있다. 콧날이 떨어져 나가고 없지만 얼굴 전체에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것 같다.

귀는 어깨까지 길게 늘어져 있으며 목에는 3줄의 삼도(불상의 목에 세 줄로 새겨 두는데 이것은 생사를 윤회하는 인과를 의미한다. 삼도란 번뇌도(煩惱道)·업도(業道)·고도(苦道)를 일컫는다)가 희미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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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드라지게 조각된 나발(소라모양의 머리칼)과 상투모양으로 볼록하게 솟은 육계


불상의 옷차림은 통견(양어깨를 모두 덮은 옷차림)으로 둥그스럼한 양쪽 어깨에 걸치고 있는데 가슴 아래로 U자 모양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남아 있는 오른손은 가슴에 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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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 상반신-두광 및 신광 일부와 가슴 쪽으로 올린 손 일부가 남아 있다.


머리 뒷쪽에 일부 남아 있는 두광(부처님의 머리에서 나오는 빛)의 좌우에는 두 손을 합장하고 있는 작은 화불이 조각되어 있고, 불상의 어깨 부분에 남아 있는 신광(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에도 좌우에 작은 화불 이 각각 1구씩 2구가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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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배 좌우에는 아래 위로 작은 화불이 각각 2구씩 남아 있다.



불상의 하반신은 엉덩이 부분으로 옷의 모양이 U자형으로 조각되어 있음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고 광배부분에 불꽃 문양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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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의 허리 아래 엉덩이 부분


연화대좌의 가운데에는 불상을 세워 두었던 직사각형 구멍이 깊게 파여 있고 남아있는 둥근 테두리에는 복련(꽃잎이 아래를 향하고 있는 것처럼 조각된 연꽃문양)이 도드라지게 조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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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을 세워 두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연화대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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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부장 ibuzang

경주시 배동 윤을곡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마애삼존불상으로 서남산 포석정에서 부흥사로 올라가는 남산순환도로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ㄱ자 모양의 바위면에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 불상 2구와 서쪽을 바라 보고 있는 불상 1구가 각각 돋을새김되어 있다. 남산에 있는 수많은 불상 가운데 조각된 연대가 분명하게 밝혀진 불상이다.

남쪽을 향한 가운데 불상의 왼쪽 어깨 부근에 새겨진 ‘태화9년을묘(太和九年乙卯)’라는 글자를 통해 신라 제42대 흥덕왕(재위 826~836) 10년(835)에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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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배리윤을곡마애불좌상 (慶州拜里潤乙谷磨崖佛坐像)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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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불상 왼쪽 어깨부분에 새겨진 ‘태화9년을묘(太和九年乙卯)’라는 글자를 통해

신라 흥덕왕 10년(835)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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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을 바라보고 있는 불상


3구의 불상 중 본존불에 해당하는 불상으로 연꽃대좌 위에 앉아 있다. 왼손은 무릎에 걸친 모습으로 항마촉지인(악마를 항복하게 하는 손모양)의 수인(모든 부처님과 보살의 소원을 나타내는 손모양)을 보이고 있으나 오른손은 마멸되어 어떤 손모양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불상이 걸치고 있는 옷은 양쪽 어깨를 모두 덮고 있는 통견의를 하고 있는데, 가슴 부분에 속옷을 묶은 때 매듭이 표현되어 있다.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는 두터운 원형으로 두광(부처님의 머리에서 나오는 빛)과 신광(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표현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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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을 바라보고 있는 불상 


본존불 오른쪽에 새겨져 있는 불상으로 연꽃대좌 위에 앉아 있다. 통통한 모양의 오른손은 손가락 끝을 약간 구부린 채 무 무릎 위에 얹었으며 물결 문양의 옷자락을 걸친 왼손에는 둥근 모양의 약상자를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약사불로 보고 있다.

옷모양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우견편단의 차림새를 하고 있다. 광배는 두 줄의 둥근 원으로 두광과 신광을 새기고 그 바깥에 다시 끝이 뾰족한 배모양의 전신광배(거신광배라고도 함)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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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을 바라보고 있는 불상


중앙 본존불의 오른쪽 꺾어진 바위면에 새겨져 있는 불상으로 불상이 앉은 대좌는 간략한 선으로 표현되어 있다. 배에 댄 왼손에는 둥근 약상자를 들고 있고 있으며 오른손을 왼손 아래쪽에 두었다. 옷은 중앙 본존불과 같은 통견의(양쪽 어깨을 모두 가린 옷차림새)를 하고 있다.

이 불상은 특이하게 두터운 원형의 두광과 신광 안쪽에 작은 불상이 좌우에 각각 2구씩 전제 4구가 돋을새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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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 경주배리윤을곡마애불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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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부장 ibuzang

경주시 율동(두대리) 벽도산 자락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마애삼존불입상이다. 가운데 서 있는 본존불 입상은 서방극락세계를 다스리고 있다는 아미타불로 알려져 있다. 본존불 왼쪽과 오른쪽에는 각각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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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율동 마애여래삼존입상 (慶州 栗洞 磨崖如來三尊立像)

(보물  제122호)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본존불의 큼직한 머리는 소발(민머리)로 상투모양의 육계가 낮게 조각되어 있다. 넓은 어깨에 걸친 법의는 통견의(양쪽 어깨를 모두 덮은 옷차림새)로 가는 선으로 조각되어 있다.

오른손은 자연스럽게 아래로 내리고 불록한 손등을 보이고 있으며, 왼손은 가슴 앞에 들어 가운데 손가락과 엄지손가락을 맞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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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존불 중 본존불인 아미타불

(서방극락정토를 다스리는 부처님

이 부처님의 이름을 항상 부르면 죽은 뒤에 극락세계에 들어 갈 수 있다고 함)


본존불의 머리와 몸 뒷면에는 가는다란 선을 두 줄로 돌려 두광과 신광을 표현하였으며, 다시 주변에 불꽃무늬를 새겼다. 전체적인 모습은 배모양의 거신광배로 표현되어 있다. 간략한 선으로 표현된 연화대좌 위에 양발을 바깥쪽으로 벌리고 서 있는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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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존불 왼쪽에 서 있는 관음보살(고통 빠진 중생들이 한 마음으로 그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즉시 구제해 주는 보살) 왼손에 정병을 들고 있다


본존불 왼쪽에 서 있는 보살상은 왼손에 들고 있는 정병을 통해 관음보살상임을 알 수 있다. 통통한 얼굴에 상투모양의 육계가 큼직하게 솟아 있고 뒷쪽에 한 줄 선으로 두광을 표현해 놓았다.

둥그스럼한 어깨 위로 오른손을 들어 가운데와 엄지손가락을 맞대고 있으며, 아래로 내린 왼손에는 정병을 들고 있다. 발은 본존불과 같이 양 옆으로 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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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존불 오른쪽에 서 있는 대세지보살(지혜의 빛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골고루 비추는 보살)


본존불의 오른쪽에 서 있는 보살은 아미타삼존불에 표현되는 대세지보살로 머리 위에 동그랗게 솟은 육계를 표현하고 두광은 한 줄 선으로 새겨 두었다. 왼손은 자연스럽게 내리고 있고 오른손은 가슴쪽으로 들고 있는데 엄지와 집게손가락을 V자 모양으로 표현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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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대리마애석불입상에서 경주율동 마애여래삼존입상으로 명칭이 변경된 이 삼존불상의 크기는 가운데 본존상 3.32m, 왼쪽 관음보살상 2.45m, 오른쪽 대세지보살상 2.22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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