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경주박물관(관장 유병하)특별전 <아프가니스탄의 황금문화>927일부터 1127일까지 특별전시관에서 개최한다. 이번 특별전은 국립아프가니스탄박물관의 소장품 223건을 중심으로 고대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전시이다.

이란 고원 동북단에 위치한 아프가니스탄은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이란, 파키스탄 등에 둘러싸인 내륙 국가이다. 지형적으로 유라시아 대륙의 한가운데 위치한 이 지역은 서쪽의 유럽, 동쪽의 중국, 남쪽의 인도를 연결하는 문명의 교차로이자, 실크로드의 요충지였다. 토착적 요소와 외래적 요소가 상호 융합하여 탄생한 아프가니스탄의 고대 문화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변 지역의 문화 연구에도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이번 전시는 크게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테페 푸롤(Tepe Fullol), 아이 하눔(Ai Khanum), 틸리야 테페(Tillya Tepe), 베그람(Begram) 등 네 곳의 유적지를 시기별 흐름에 따라 소개한다.


1에서는 기원전 2천년 경 청동기시대 유적인 테페 푸롤을 소개한다. 해발고도 3천 미터가 넘는 험준한 산에 둘러싸인 이 지역은 비옥한 경작지이자, 청금석의 주요 교역지로 큰 번영을 누렸던 곳이다. 1966년 지역민이 우연히 발견한 금은기로 유적의 실체가 밝혀졌는데, 상당량이 소실되어 출토지 정보가 부족한 편이다. 현재 출토된 황금잔의 기하학 무늬와 동물의 표현 등에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나 인더스 문명과의 교류를 짐작해 볼 수 있다.


2에서는 기원전 4세기 마케도니아의 군주 알렉산드로스의 동방원정 이후 세워진 아이 하눔 유적을 소개한다. 옥수스 강(오늘날 아무다리야 강) 유역에 위치한 이 도시 유적에서는 신전, 궁전, 경기장, 도서관, 반원형 극장 등 그리스 도시의 전형적인 요소들뿐만 아니라 그리스 문자나 신화의 내용도 고스란히 발견되었다. 인도에서 난 상아로 만든 전래품도 발견되어 이 지역의 국제성을 보여준다. 건축에서는 페르시아적 요소가 사용되는 등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를 혼합한 헬레니즘 문화의 특징을 보여준다.


3에서는 황금의 언덕이란 뜻의 틸리야 테페 유적과 황금 문화유산인 그 발굴품을 소개한다. 1978년 소련의 고고학자 빅토르 사리아니디(Viktor Sarianidi)의 발굴로 세상에 드러난 이 유적은 당시 이집트의 투탕카멘 발견에 버금가는 중요한 성과로 주목받았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틸리야 테페 유적에서는 왕으로 생각되는 남성 무덤을 가운데에 두고 주위를 둘러싼 5명의 여성 무덤에서는 화려한 금관을 비롯하여 세밀하고 정교한 금제 장식들이 발굴되었다. 기원후 1세기경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박트리아의 황금이라 불리는 화려한 금제 부장품들은 당시 유라시아의 중심에서 활약했던 유목민들의 광범위한 교역 활동을 보여준다. 이들의 국제적이고 다양한 문화에는 그리스, 로마, 중국, 인도, 스키타이-시베리아 등 매우 폭 넓은 문화적 요소가 내재되어 있다. 특히 6호 무덤에서 여성이 쓴 채로 출토된 금관은 일찍이 신라 금관의 기원 연구 등에서 큰 관심을 받아 온 것으로 이번 전시에서 특히 주목받는 전시품이다.


Phase One | H 20

<금관1세기, , 틸리야 테페 6호묘 출토(사진 : 국립경주박물관)


4에서는 쿠샨 왕조의 여름 수도로 번영했던 베그람 유적을 소개한다. 베그람은 7세기 중국의 승려 현장이 기록한 카피시국의 도읍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1세기경으로 추정되는 궁전터에서 많은 양의 유리기, 청동기, 석고, 칠기 등 다채로운 문화유산이 출토되었는데, 각각 인도, 로마, 그리스, 이집트, 중국 등의 영향을 보여준다. 실크로드와 해상무역으로 번영했던 도시의 모습에서 활발했던 동서 문물 교류의 상황을 살펴볼 수 있다.


Phase One | H 20

<유리병1세기, 유리, 베그람 10호방 출토(사진 : 국립경주박물관)


또한 이번 전시 마지막 공간에는 유네스코 아프가니스탄지부와의 협조로 특별사진전 아프가니스탄의 자부심<TheAfghanistan we are proud of>”의 출품작을 소개하여 아프가니스탄의 과거, 현재, 미래를 거시적으로 조망하는 공간을 마련하였다.

 

아프가니스탄의 보물을 소개하는 이 전시는 2006년 파리의 기메박물관을 시작으로 워싱턴의 내셔널 갤러리, 뉴욕의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런던의 영국박물관, 일본 도쿄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등 지금까지 12개국을 순회하며 19개 기관에서 순회전이 개최되었다. 국립경주박물관은 국립중앙박물관(2016.7.5.~9.4.전시)에 이어 20번째 개최 기관이다.

 

파란 많은 현대사를 거치면서도 아프가니스탄인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낸 그들의 귀중한 문화유산들은 오늘날 폐허의 잔해 속에서도 국립아프가니스탄박물관 입구에 걸려 있는 문구(“그 문화가 살아 있어야 나라가 살아남을 수 있다”)와 함께 전시를 찾는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927일에서 1127일까지 휴관 없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일시/장소: 2016.9.27.()~2016.11.27.()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

전시품: 국립아프가니스탄박물관 소장 틸리야테페 유적 출토 금관 등 2231404

주 최: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국립아프가니스탄박물관

후 원: 경주시, 경주박물관회

협 조: 내셔널 지오그래픽, 유네스코 아프가니스탄지부

※ 자료출처 : 국립경주박물관 홈페이지(http://gyeongju.museu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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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인왕동 76 |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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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부장 ibuzang

경주의 고려시대를 집중 조명하는 최초의 전시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유병하)은 2016년 7월 12일(화)부터 9월 4일(일)까지 특별전 “고려시대의 경주”를 개최한다. 신라의 천년왕도로 주목받는 경주의 고려시대를 조망하는 첫 전시이다.

   


도시경관과 지역사회를 키워드로 풀어가는 고려 오백년 경주의 역사

“경주”라는 이름은 고려시대에 시작되어 오늘에 이른다. 이번 전시는 신라가 멸망한 935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시대 경주 지역 사회의 변화와 지역민들의 삶을 ‘도시경관’과 ‘지역사회’라는 키워드로 풀어냈다. 불국사 석가탑 중수기(국보 126호) 등 국보 3점, 보물 15점을 비롯해 모두 500여점의 문화재를 【프롤로그:경주의 탄생, 1부 읍성과 지역사회 운영, 2부 호국의 상징 황룡사, 3부 지역사회와 불교사원, 4부 동족사회와 무덤, 5부 경주사람들, 에필로그:고려의 동경 경주】라는 주제로 구성하였다. 

프롤로그에서는 경순왕의 고려 귀순으로 경주가 신라 왕경에서 고려의 지역도시로 재편되는 과정을 다룬다. 



1부 ‘읍성과 지역사회 운영’에서는 고려시대 경주의 행정 중심이 된 읍성과 지역사회 운영의 모습을 전시한다. 성벽 축조에 사용된 신라 건축물의 석재들과 고려 기와들,「동경 굴석사(東京屈石寺)」가 새겨진 굴불사 출토 쇠북은 1183년 경주의 전 호장 이백유(李伯兪)와 승려 도인(道人)이 제작에 참여하였고 경주를 동경으로 칭했음을 보여준다. 각종 선생안(先生案)과 호장(戶長) 관련 전적은 호장과 부윤(府尹)의 면면을 보여 주는 중요한 전시품이다. 1182년에 세워진 효자 손시양 정려비(보물 제68호)의 입체탁본은 경주가 효행의 도시였음을 보여준다.    



2부‘호국의 상징 황룡사에서는 신라의 중심 사찰이었던 황룡사가 고려시대도 경주민의 정신적 중심으로서 여전히 호국의 상징이었음을 새롭게 조명한다. 각종 대형 기와들과 청자 등 고려시대 황룡사 출토품들은 웅장했던 당시의 모습을 짐작케 해 준다.


    

3부 ‘지역사회와 불교사원’은 경주의 불교사원이 종교 뿐 아니라 지역 사회에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중심지였음을 보여준다. 불국사 성보박물관 부지 출토 명문기와에서 고려시대 불국사가 숙박시설을 겸하였음을 알 수 있다. 동시대 문집자료에서는 분황사가 사람들의 휴식 공간이었음을 말해 준다. 또한 불국사 석가탑 중수문서(국보 제126호)에서는 지역 사회가 하나되어 천재지변을 극복한 모습을, 감은사 쇠북에서는 왜구의 침입을 극복했던 모습을 접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불국사 석가탑 중수기(국보 126호), 왕실이 발원한 대반야바라밀다경 권210(보물 959­1­1호) 등 10여점의 국보․보물이 전시된다.  



4부 ‘동족사회와 무덤’에서는 경주의 고려시대 무덤군을 통해 동족집단의 무덤을 살펴본다. 물천리·화천리·검단리 등 대규모 무덤군에서 일괄로 출토된 청동 그릇과 거울, 수저, 청자 등 규범화된 부장품들이 밀도있게 소개된다. 도읍인 개경에서 발견된 것과 거의 유사한 경주 구정동 출토 쌍용구름무늬띠거울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대접접시 등 청자제품과 같은 실생활 용기를 부장하였다.



5부 ‘경주사람들’에서는 이제현(李齊賢)·김부식(金富軾)·이의민(李義旼) 등 경주와 관련된 인물들을 소개한다. 초상화, 문집, 비문 등으로 그들의 모습과 행적, 그리고 시대적 상황을 되짚어 볼 수 있다. 또한 고려귀족을 상징하는 묘지명으로 귀족사회에 진입한 경주출신 인물들을 소개하였다.      



신발견 고려시대 구결, 임진왜란 이전 기록된 경주 호장 관련 기록 최초 공개  

기림사 소장 자비도량참법에서 13세기 고려시대 구결이 발견되었는데 이를 처음 공개한다. 고려시대 사람들은 우리말과 어순이 다른 한문을 읽을 때 토씨를 달아 우리말로 읽었다. 종래 고려 언어 생활을 알 수 있는 이같이 귀중한 자료는 인왕경 등 5건에 불과했다. 

임진왜란 이전에 작성된 유일한 호장안인『부사선생안(府司先生案)』도 처음 공개된다. 이것은 경주부 역대 호장(戶長)의 명단인데, 호장은 향리의 우두머리로서 지방사회의 지배자였다. 1523년 처음 작성된 부사 선생안은 고려시대부터 1787년 신안(新案)을 작성하기까지 호장의 이름과 생년, 본관 등을 기록하였다. 



최신 발굴자료, 경주 읍성 출토품과 구정동 출토 쌍용무늬청동거울 첫 공개

최근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경주 읍성 및 구정동 고려무덤 출토품이 이번 전시에서 공개된다. 고려시대 경주 읍성 축조에는 옛 신라 궁궐 등 기존 건축물을 해체하여 얻은 석재들이 재활용되었다. 이 중 테두리에 안상(眼象)을 새겨 화면 틀처럼 삼고 가운데에 인물처럼 생긴 상을 조각한 통일신라기 부조가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상은 중국 남북조시대 북위(北魏, 386~534) 말부터 동위(東魏, 534~550)를 거쳐 북제(北齊, 550~577)에 이르는 6세기 불교미술에서 불비상(佛碑像)의 하단에 새겨진 풍신왕(風神王)과 유사하다. 또한 서쪽 돈황 막고굴 중에서 서위(西魏, 535~556) 때 지어진 제285굴과 당(唐, 618~907) 초기인 7세기의 제329굴 천정 벽화에도 두 손으로 천을 쥐고 뛰는 역동적인 자세의 풍신(風神)이 그려져 있어 이와 비교된다. 경북대학교박물관 야외에 전시된 울산 출토 9세기 작 사암제 비로자나불좌상의 대좌 중대석에 이와 비슷한 신장상이 새겨져 있으나, 신라에서는 이 소재 자체가 흔치 않아 앞으로의 연구가 기대되는 신자료이다. 

이와 함께 최근 출토된 경주 구정동 쌍용무늬구름무늬띠거울(雙龍文雲文帶鏡)은 고려의 도읍인 개성에서 주로 발견되는데, 거울에는 포장재로 사용된 대나무가 그대로 남아 있다.  


다양한 영상과 충실한 역사 자료 제공   

이 밖에 효자의 마을로 선양한 황남동 소재 손시양 효행정려비 일명 효자리비(孝子里碑, 보물 68호)의 입체탁본, 고려시대 경주 역사를 집성한 역사 연표와 지도, 영상과 삽화가 전시 이해를 돕는다. 무료 관람으로 9월 4일까지 이어진다.      


이 자료에 대하여 더욱 자세한 내용을 원하시면 문화체육관광부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실 학예연구사 이용현(☎ 054-740-7535)에게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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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인왕동 76 |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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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부장 ibuzang

국립경주박물관(학예연구실장 김유식) 426일부터 619까지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수집품특별전을 개최합니다.

국립경주박물관 소장품 가운데는 일제강점기(1910~1945) 일본인들이 수집한 한국중국일본 관련 문화재 1,3022,653(금속519, 도토제1,236, 서화695, 기타203)이 있습니다. 이 문화재의 일부는 광복 직후 일본으로 불법 반출시키지 못하고 박물관으로 입수되었으며, 일부는 1963년 광복 당시 숨겨두었던 비밀 창고가 발견되어 박물관으로 옮겨져 접수품으로 등록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번 특별전은 도자기’, ‘회화’, ‘중국 청동용기’, ‘보존과학일제강점기 복제된 우리문화재등 모두 5부로 구성하여 우리나라의 고려청자, 근대회화, 중국의 고대 예기 등 200여 점과 광복 이후 입수현황을 알 수 있는 관련 문서 등을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합니다. 또한 일제강점기 당시에 수리 및 복원된 문화재를 전시하여 20세기 초의 박물관 기능과 보존처리 기법도 함께 소개합니다.





1. 도자

19세기 초 개성 밭에서 우연히 발견된 고려청자를 계기로 일본인은 고려청자 구입에 돈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조선총독부 초대통감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고려청자 수집광이었고 이왕가박물관을 설립한 고미야 미호마쯔(小宮三保松) 역시 집안 가득 문화재를 수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광복 후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 등 일본인 3명으로부터 접수해 국립경주박물관에 입수된 도자는 모두 574점입니다. 이 중 우리나라의 고려청자조선백자분청사기청화백자와 중국 서진시대 청자북송시대 월주요 청자자주요 백자 및 일본의 20세기 초 유행한 이마리도자라쿠양식 도자 등 103점을 전시합니다.




2. 서화

조선시대는 건국초기부터 도화원圖畵院이 설치되어 사대부와 화원들이 당시 회화의 발전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화원화가의 전통은 조선후기 한국적인 정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정선의 진경산수, 김홍도와 신윤복의 풍속화 등이 탄생하는 밑거름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은 식민정책을 강화하기 위하여 조선미술을 독창성 없는 중국의 아류로 보려는 풍조가 지배적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중국화풍을 따른 이인문과 심사정의 정형산수화를 더 애호하였고, 일본의 우키요에와 유사한 화조도나 풍속화 수집에 치중하였습니다. 또한 일본서화의 경우에는 에도시대 이후 인물도와 화조도를 포함하여 서양화법이 가미된 풍경화 수집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이밖에도 제국주의 정책을 옹호하기 위해 그려진 불화를 다수 수집하였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당시 이러한 일본인의 미술품 애호 성향이 반영된 서화 15점이 공개됩니다.




3. 중국 청동용기

중국 청동용기는 제작된 시기에 따라 청동예기靑銅禮器와 방고청동기仿古靑銅器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청동예기는 중국 상주시대商周時代(기원전16세기~기원전771)부터 한대漢代(기원전206~기원후220)까지 제작되었습니다. 고대 중국의 황실과 귀족들이 제사, 연회, 전쟁 등 의식을 거행할 때 사용한 용기로 사용자의 지위와 신분, 권력에 따라 엄격한 제한이 있었습니다. 용도에 따라 음식 담는 그릇(食器), 술 담는 그릇(酒器), 물 담는 그릇(水器)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방고청동기는 북송北宋(960~1127)부터 청대淸代(1644~1911)까지 제작된 고대 청동예기의 모방품입니다. 당시 일본인들은 우리나라 문화재 이외에 중국문화재도 다수 수집하였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들이 수집한 중국 청동용기 53점을 소개합니다.




4. 보존과학

보존과학 전시는 문화재보존을 이해하고 문화재를 과학의 눈으로 다시 살펴보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마련하였습니다. 2016년은 박물관 6대 기능에 속하는 보존保存이 국립박물관에서 그 역할을 시작한지 40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번 특별전 전시품들이 수집되었던 일제강점기당시의 보존기술에 주목하여 현대의 보존기술과 비교해보고자 하였습니다. 문화재의 보존에 얽힌 이야기와 과학의 시선視線으로 관찰하면서 문화재와 보존과학을 새롭게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5. 일제강점기에 복제된 우리문화재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한 전경주 입실리 출토 청동기 5점은 1970년대 경주박물관에 근무한 이건무 전국립중앙박물관장에 의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의 복제품이라는 사실이 판명되었고, 2007년 학술발표에서 일반에 소개되었습니다. 입실리 출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은 1920년 동해안 철도공사 중 발견되었다가 산일散逸된 것으로 조선총독부박물관이 1921년 일본인 모로가 히데오(諸鹿央雄)에게 구입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복제품의 정확한 출처와 복제 목적 등을 알 수 없었습니다.

박물관은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본책 고고학관계자료모형도보考古學關係資料模型圖譜(1931)’고고학관계자료모형목록考古學關係資料模型目錄(1930)’의 존재를 확인하였고, 검토 결과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복제품들은 일제강점기 교토제국대학(京都帝國大學) 교수 하마다 고사쿠(濱田耕作)가 추진한 동서양 중요문화재 모형제작프로젝트의 결과물(230여점) 중 일부이며, 모형 제작은 교토에 위치한 우에노제작소(上野製作所)에서 진행하였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고고학관계자료모형도보실물을 공개하며, 경주 입실리 출토 진품 청동기와 복제품을 비교 전시합니다. 또한 이 책에 수록된 전충남출토 동경(접수546) 복제품 1점도 함께 전시하여 그 동안 의문으로 남았던 이들 복제품들의 출처와 성격을 소개 합니다.

 

이번 특별전은 광복 이후 국외 반출 위기에 직면했던 우리 문화재를 포함한 국외 문화재를 우선적으로 공개하는 자리로 일본인이 수집하였던 접수품에 대한 기초조사 결과를 적극적으로 알리고자 하는 차원에서 마련되었습니다. 이번 특별전을 계기로 지속적인 연구와 자료 보완 작업을 진행하여 연차적으로 접수품 자료집을 발간할 예정입니다.


 자료출처 : 국립경주박물관 홈페이지(http://gyeongju.museum.go.kr/)


전시 기간: 2016426() ~ 619() 월요일 휴관

전시 장소: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

 

 

이 자료에 대하여 더욱 자세한 내용을 원하시면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실 연구사 오세은(054-740-7539)에게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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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박물관은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이하여 20151222일부터 2016221일까지 일본의 고훈[古墳]시대를 조망하는 특별전 일본의 고훈문화를 개최합니다. 일본 나라국립박물관의 특별협력으로 이루어진 이번 전시회는 일본 내 9개 기관에서 출품한 380점의 문화재를 전시합니다. 이 가운데 일본의 국보가 29점이며 중요문화재 는 197점입니다. 아울러 당시 한일 교류의 일면을 보여주는 우리 문화재 20점이 비교자료로서 함께 선보입니다.



고훈은 한자어 古墳의 일본어 발음입니다. 고분(古墳)이라 하면 옛무덤을 뜻하는 말이지만, 일본 고고학에서 고훈은 고대에 조성된 대형 무덤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고훈들이 집중적으로 조성되었던 시대를 고훈시대라고 부릅니다. 3세기 중엽부터 6세기 후반까지에 해당하는 고훈시대는 이전의 조몬[縄文]시대와 야요이[彌生]시대 등의 선사시대를 지나 이후의 아스카[飛鳥]시대, 나라[奈良]시대 등의 역사시대로 넘어가는 다리입니다.

당시 일본은 선진문화를 받아들이기 위하여 신라 가야 백제 등과 활발히 교류했습니다. 따라서 고대의 우리 문화가 일본열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당시의 일본열도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국내에 소개하는 자리는 매우 드물었습니다. 단편적으로 다룬 적은 있지만 고훈시대 전반을 살펴보는 전시는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 전시회는 고훈시대를 전반적으로 조망하는 국내 첫 특별전으로서, 고훈시대의 대표적 유적과 그곳에서 발견된 출토품을 시대의 흐름에 따라 3부로 구성하여 선보입니다.



1부 히미코[卑彌呼]의 유산, 고훈의 등장: 고훈시대 전기

고훈시대를 연 여왕 히미코[卑彌呼]를 소개하고 야마타이국[邪馬臺國]의 중심지로 추정되는 나라현[奈良縣] 마키무쿠[纏向]유적의 출토품과 나라현의 구로즈카[黑塚]무덤, 도다이지야마[東大寺山]무덤, 메스리야마[メスリ]무덤 등의 부장품들을 전시합니다. 귀신을 받들어 사람들을 통솔했다는 종교적 지도자 히미코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청동거울과 돌팔찌 등 주술적 의미가 담긴 부장품을 볼 수 있습니다.



2부 대형 무덤과 하니와의 세계: 고훈시대 중기

고훈시대를 통틀어 가장 큰 무덤을 만들었던 시기입니다. 청동거울의 수가 줄며 돌팔찌도 거의 사라지는 대신 갑옷과 투구가 등장합니다. 이는 지배자의 성격이 종교적 지도자로부터 철기를 생산해 강한 무력으로 통치하는 군사적 지도자로 변화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정황을 보여주는 전시품으로서 철제 도구를 만드는 데 썼던 단야구(鍛冶具)가 출토돼 주목을 끌었던 나라현의 고조네코즈카[五條猫塚]무덤의 부장품과 철제 갑옷의 발달을 보여주는 시가현[滋賀県] 신가이[新開] 1호무덤의 부장품이 선보입니다. 신라계 이주민의 무덤으로 알려진 나라현의 니자와센즈카[新澤千塚] 126호무덤에서 출토된 금동장신구들은 당시 활발했던 신라와 왜의 교류를 보여 줍니다.

대표적 전시품으로서, 무덤의 주위와 봉분에 배치하였던 일종의 토기인 하니와[埴輪]도 선보입니다. 하니와는 고훈문화를 대표하는 독특한 기물로서 매장의례시 공양물을 담는 항아리와 그릇받침에서 기원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원통형이었으나 5세기 이후에는 인물, 동물, 기물, 건축물 등 여러 가지 형태의 하니와가 나타났습니다. 하니와는 문자 자료가 거의 없는 고훈시대의 생활상을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됩니다.



3부 사라지는 고훈: 고훈시대 후기

고훈이 점차 사라지는 시기의 부장품을 전시합니다. 나라현의 바쿠야[牧野]무덤, 다마키시로[珠城山]무덤, 후지노키[]무덤의 매장 주체부는 모두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입니다. 이러한 굴식돌방무덤은 백제로부터 일본에 전해진 것입니다. 이 시기를 보여주는 전시품으로서 신라와 가야의 토기 제작술을 도입해 만든 스에키[須惠器]와 기마문화를 보여주는 말갖춤[馬具] 등이 선보입니다. 특히 후지노키무덤의 금은으로 장식한 장신구와 말갖춤들이 눈에 띕니다. 이는 금은세공품으로 신분을 과시했던 후기 지배자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이러한 고훈은 왕권의 강화, 장례 의식의 변화 등에 따라 점차 그 의미를 상실하고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습니다. 특히 불교를 수용하게 됨에 따라 고훈을 축조했던 역량은 사찰을 만드는 쪽으로 옮겨 갔습니다.


죽은 지배자로부터 권력을 물려받는 장소이자 선진 문물의 확보를 위한 지역 연합의 상징인 고훈, 전세계의 기념비적 무덤들과 마찬가지로 지배자의 권력을 과시하는 동시에 죽은 지배자로부터 권력을 물려받는 상징적 공간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고훈을 축조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무덤 안에는 주인공의 죽음뿐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삶이 들어 있습니다. 따라서 고훈은 오늘날 일본 고대문화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철기, 갑옷, 말갖춤, 토기, 금공품 등 각종 부장품에는 활발했던 한일 교류의 흔적도 남아 있습니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고대의 한반도와 일본열도에 살던 많은 사람들이 서로 오갔고 그들이 남긴 문화유산은 이후 양국 문화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이 특별전이 한국과 일본을 더욱 친근하게 이어주는 다리가 되어, 한일 교류의 우호적 미래를 열어 가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기간: 20151222() ~ 2016221() 매주 월요일 휴관

장소: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

자료출처 : 국립경주박물관(http://gyeongju.museu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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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월성동 |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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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부장 ibuzang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이영훈)은 7월 21일부터 11월 1일까지 ‘신라의 황금문화와 불교미술’ 특별전을 개최합니다. 이 전시회는 국립경주박물관의 개관 70주년 기념전이자, “실크로드 경주 2015”의 선도적 테마 행사입니다.  

  신라의 문화를 전체적으로 살펴보는 국내 특별전으로서는 처음인 이번 전시회는 지금까지 이루어진 조사연구의 성과를 바탕으로 ‘황금문화’, ‘능묘’, ‘대외교류’, ‘왕경’, ‘불국토’ 등의 5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부별 전시품으로서 금관총(金冠塚) 금관 등 국가지정문화재 22건 30점을 포함한 600여 점의 다양한 신라 문화재가 선보이며, 특히 국보 제83호 금동 반가사유상이 최초로 경주에 전시됩니다(단, 2주간만 전시: 7.21.~8.2.).



■ 전시 기간: 2015년 7월 21일(화) ~ 11월 1일(일)  ※월요일 휴관

■ 전시 장소: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

■ 후원: 경주시, 경주엑스포조직위원회, 경주박물관회


제1부. 황금문화  

  오늘날의 시각적 표상으로서 신라가 부각된 것은 역설적이게도 일제강점기를 전후한 시기부터였습니다. 근대적 학문인 실증적 역사학과 고고학, 미술사학의 관점에서 신라문화가 재조명되며 ‘문화재’라는 새로운 의미와 가치가 등장하였습니다. 대표적 사례는 1921년 금관의 발견이었습니다. 금관총에서 금관을 비롯해 처음 보는 신라의 황금 유물들이 세상에 불쑥 나타난 것입니다. 이러한 신라의 이미지는 인쇄술과 사진의 발달로 인해 더욱 생생하고 구체적인 모습으로 전달되었습니다. 금관총 금관을 비롯하여 경주 보문동합장분 출토 금귀걸이, 경주 노서동 출토 금목걸이 등 일제강점기에 출토된 신라 황금문화재를 예로 들어 이와 같은 내용을 살펴봅니다.     



제2부. 능묘 

  광복 이후 우리 손으로 시작한 신라능묘의 발굴은 1970년대에 큰 전환기를 맞았습니다. 삼국 통일을 이룬 신라를 정통으로 보는 민족사관을 바탕으로,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가 집중적으로 조명되었습니다. 1973년부터 경주고도개발사업이 추진되면서, 천마총과 황남대총을 비롯한 경주 시내의 대형 능묘들이 발굴되는 등 신라문화에 대한 관심은 가히 폭발적이었습니다. 그 성과는 1974년 10월 대릉원의 개원 그리고 1975년 7월 국립경주박물관의 신축 개관과 함께 공개되면서, 신라 왕릉의 실체와 의의가 세상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보여주는 광복 이후 신라능묘 출토품과 금제 관식, 은제 관모 등 천마총·황남대총의 화려하고 다양한 부장품을 전시합니다. 



제3부. 대외교류   

  1970년대의 발굴 성과를 바탕으로 신라 마립간 시기의 각종 금제품과  돌무지덧널무덤의 연원을 북방 초원지대로 보는 설이 제기되었습니다. 아울러 당(唐), 중앙아시아, 인도에까지 구법승(求法僧)이 오갔던 신라 통일기의 국제적 성격 등도 거론되었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신라문화 연구의 다각화와 함께 그 범위와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음을 환기시켜 주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계림로 14호묘 보검, 황남대총의 봉수형 유리병, 식리총 식리 등을 전시합니다. 또한, 신라 통일기의 활발한 대외교류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경주고등학교 소장의 무인석상이 처음으로 박물관 전시에 선보입니다.  



제4부. 왕경 

  경주 시내의 대형 능묘 발굴이 일단락된 뒤, 신라 왕경의 전모를 파악하기 위하여 다양한 성격의 유적들이 조사되기 시작했습니다. 장기간에 걸쳐 월지(안압지)와 황룡사터 등의 대형 유적이 발굴되었으며, 생활 유적들도 조사되어 왕경의 구조와 특징에 대해 다양한 논의가 촉발되었습니다. 올해부터는 월성 내부의 발굴, 일제강점기에 부실하게 수습되었던 금관총의 발굴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월지의 용얼굴무늬 기와와 보상화무늬 전, 황룡사터의 각종 공예품, 경주박물관 남쪽 부지에서 나온 ‘東宮衙’가 새겨진 단지 등이 전시됩니다. 



제5부. 불국토 

  불교미술품이 학문적 연구 대상이 되고, ‘문화재’라는 가치가 부여된 것도 일제강점기부터였습니다. 불상의 복장품이나 불탑의 사리장엄구를 도굴하여 불법으로 거래하는 나쁜 풍조가 생긴 것도 이 때부터였습니다. 이로 인해 문화재가 파괴되고 그 출처를 알 수 없게 되는 등 그 후유증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5부에서는 신라 불교문화의 융성을 보여주는 불상과 불교공예품들이 전시됩니다. 특히 국보 제83호 금동 반가사유상이 경주에서 처음으로 전시됩니다(전시 기간 7.21.~8.2.). 이밖에 경주 구황동 석탑의 국보 제79호 금제 아미타불좌상(전시기간 8.4.~11.1.), 사천왕사터 출토 ‘東塔西’가 새겨진 금동 장식, 경주경찰서 소장의 부처가 새겨진 탑신석(경주 외동읍 입실리 절터) 등도 주목되는 작품입니다. 이밖에 ‘신라’를 소재로 한 한 이응노, 박대성, 배병우 작가들의 작품도 함께 전시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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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신라의 현재적 의의  

  이 전시를 마무리하며 신라의 현재적 의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서 ‘신라’라는 국호에 주목합니다. 주지하듯 제22대 지증왕(재위 500~514) 때 확정된 ‘新羅’는 ‘德業日新 網羅四方’(덕업이 날로 새롭고, 사방을 망라하다)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덕업일신’은 바로 변화와 개혁 또는 혁신이며, ‘망라사방’은 세계화 또는 글로벌리제이션에 다름 아닙니다. 이처럼 ‘신라’는 오늘날에도 절대적으로 통용되는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이 ‘신라’의 현재적 의의일 것입니다. 

  개관 70주년과 ‘실크로드 경주 2015’를 맞이하여 개최하는 이 특별전이 ‘신라’를 바탕으로 21세기 우리 문화를 융성케 하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을 되새기는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 자료출처 : 국립경주박물관(http://gyeongju.museum.go.kr/)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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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월성동 |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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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부장 ibuzang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이영훈)은 상주박물관과 공동기획으로, 경상도 개도(開道) 700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慶尙北道 1314~1896’7월 22일부터 9월 14일까지 개최합니다.



올해는‘경상도(慶尙道)’라는 도명(道名)이 사용된 지 700년이 되는 해입니다. 아시다시피 ‘경상도’라는 이름은 경주(慶州)와 상주(尙州)에서 따온 것입니다. 도명의 유래지에 위치한 국립경주박물관과 상주박물관은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경상북도’에 대한 특별전을 공동으로 기획하였습니다.

    

이 특별전에서는 ‘경상도’라는 도명이 정해진 1314년(고려 충숙왕 원년)부터 ‘경상도’가 ‘경상북도’와 ‘경상남도’로 나누어진 1896년(고종 33년)까지, 경상북도 사람들이 이룩한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삶의 큰 흐름을 돌아봅니다.


특별전은 다음과 같이 경상 감영의 변천에 따라 4부로 구성하였습니다. 

1부, 경상도의 등장 (1314~1392) 

2부, 경상 감영 Ⅰ기 (경주·상주 시기/ 1392~1593)

3부, 경상 감영 Ⅱ기 (성주·달성·안동 시기/ 1593~1601) 

4부, 경상 감영 Ⅲ기 (대구 시기/ 1601~1895)


경상북도의 자연 환경, 인물, 사건, 이야기 등 경상북도와 그 사람들의 다양한 면모를 살펴 볼 수 있는 200여 점의 문화재를 전시합니다. 

이 가운데에는 국보 1점(안향 초상)과 보물 12점을 비롯하여 경북 유형문화재 4점, 경북 문화재자료 1점, 경북 민속자료 5점, 부산 유형문화재 1점 등의 지정문화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부. 경상도의 등장 (1314~1392)

경상도의 역사와 도명의 변천사, 그 위상 등을 상세히 기록한 『경상도지리지』,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등의 문헌 자료와 함께 경상도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고지도들을 전시합니다. 특히 한반도는 물론, 경상도를 상세히 그린 동국대지도(보물)는 중요한 전시품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와 함께 경상도의 고을과 교통로를 채색하여 만든 영남도지도, 경상도의 71개 군현을 수록한 영남지도도 선보입니다. 

경상도 출신 인사들은 고려 유학의 성립에 중요한 구실을 하였고, 성리학의 수용과 보급에도 앞장섰습니다. 성리학을 도입한 안향(1243~1306)의 초상(국보)과 중국의 성리학자들을 그린 오현영정(경북 유형문화재)은 빼놓을 수 없는 작품입니다. 또한 고려 말의 성리학자 이제현(1287~1367)의 초상(경북 문화재자료)을 비롯해 이색(1328~1396)정몽주(1337~1392)의 초상을 함께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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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양, 이제현 초상(사진 : 국립경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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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주 초상(사진 : 국립경주박물관)


2부. 경상 감영 Ⅰ기 (경주·상주 시기/ 1392~1593)

조선 전기 경상도에는 많은 인재들이 등장해 학문이 발달하고 문화가 융성하였습니다. 경상도의 최고행정기관인 감영은 조선 개국 초에는 경주에 있었으나, 1408년(태종 8년)에 상주로 옮겨졌습니다. 상주 감영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이듬해인 1593년(선조 26년)까지 존속하였습니다. 

이러한 경상도 관찰사의 활동과 기록을 살펴볼 수 있는 『당하제명기(棠下題名記)』와 『도선생안(道先生案)』을 전시합니다. 또한 경상도 관찰사로서 1425년(세종 7년)『당하제명기』를 작성한 하연(1376~1453) 부부의 영정도 출품됩니다.   

경상도 문인의 풍류를 보여주는 탁영 김일손(1464~1498) 거문고(보물), 성주에 있는 세종대왕 왕자 태실 출토의 분청사기 태항아리(胎壺) 뚜껑, ‘慶尙道’라는 명문이 있는 분청사기 항아리편도 이 시기의 주목할 만한 전시품입니다. 1586년(선조 19년)에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며 쓴 원이엄마의 한글 편지와 부인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미투리는 조선시대 부부의 애절한 사랑을 잘 보여줍니다.  

영남 사림파를 대표하는 김종직(1431~1492)의 교지(보물), 이황(1501~1570)의 27세 때 향시 답안지, 조식(1501~1572)의『남명집(南冥集)』, 성학(聖學)을 그림으로 설명한 이황의 성학십도 목판(경북 유형문화재)도 전시됩니다.   

이 시기의 불교 문화재로는 경상도 사찰에 모셨던 것으로 추정되는 목조관음보살윤왕좌상이 보존처리를 거쳐 새로이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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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하제명기와 도선생안(사진 : 국립경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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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일손 거문고(사진 : 국립경주박물관)


3부. 경상 감영 Ⅱ기 (성주·달성·안동 시기/ 1593~1601)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의 발발로 경상도 전역이 전쟁터가 되어 상주 감영은 기능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감영은 1593년 성주 팔거(현재 칠곡), 1596년 대구 달성, 1597년 안동 등으로 옮겨 다녔습니다. 그 당시 경상도 지역의 급박했던 상황과 도민들의 피해가 심각했음을 보여줍니다.  

주요 전시품으로는 1593년의 삼안총(보물), 류성룡(1542~1607)의 상소 초안인 진시무차초고(陳時務箚草稿, 부산 유형문화재),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공을 세운 정기룡(1562~1622) 장군의 추증교지(보물), 의병장 최문병(?~1599)의 말안장(보물), 190일 간의 전란을 기록한 조정(1555~1636)의 임란일기(보물), 전란 때 형제의 우애를 보여주는 월간창석형제급난도(月磵蒼石兄弟急難圖, 경북 유형문화재) 등이 있습니다.  


    

▶ 최문병 의병장 안장과 정기룡장군 추증교지(사진 : 국립경주박물관)


4부. 경상 감영 Ⅲ기 (대구 시기/ 1601~1895)

이 시기에는 관찰사가 감영에 머물면서 다스렸고 감영은 차츰 안정되었습니다. 조선 후기의 경상도는 성숙한 문화의 꽃을 피우며 새로운 변혁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감영과 관련된 자료로서, 1617년(광해군 9년) 경주부윤을 지낸 윤효전(1563~1619)을 그린 것으로 전하는 초상(보물)과, 조선 후기의 수사기록인 영영옥안(嶺營獄案), 도내 지방관 명단인 도내관안(道內官案) 등을 전시합니다.  

이 무렵 경상도의 자연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그림과 지도도 전시됩니다. 포항 내연산 폭포를 그린 정선(1676~1759)의 내연삼용추도(內延三龍湫圖), 안동과 순흥의 명승지를 그린 이의성(1775~1833)의 하외도(河隈圖),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목판(보물) 등이 있습니다. 

이 시기 경상도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보여주는 전시품으로 1855년(철종6년) 이휘병(1819~?)을 대표로 약 1만 명의 지역 유생들이 상소를 올린 사도세자 추존 만인소(思悼世子 追尊 萬人疏), 상주 향약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증손향약(增損鄕約, 경북유형문화재), 이상적인 일생을 묘사한 모당홍상공 평생도(募堂洪相公 平生圖), 경상도 양반집의 일상을 보여주는 곽주(1569~1617)의 한글 편지들, 울진에서 발견된 무덤에서 나온 죽함(竹函)과 그 안에 넣었던 생활용품 등이 있습니다.

또한 종교 관련 자료로서 19세기 말 격변하던 정세와 사회상을 이해할 수 있는 상주 동학교당의 동학 관련 자료를 전시합니다. 아울러 칠곡의 조선시대 무덤에서 최근 출토된 십자가상도 공개합니다. 조선 말기 경상북도 지역에 천주교(기독교)가 수용되었음을 보여주는 자료입니다. 

Canon      Canon

▶ 내연삼용추도와 대동여지도 목판(사진 : 국립경주박물관)

▶ 하외도(사진 : 국립경주박물관)


이처럼 경상도 사람들은 예부터 공동체를 이루면서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왔습니다. 신라가 그러했고, 고려 및 조선시대의 경상도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특히 경주의 경우 고려시대에도 ‘동경(東京)’으로 불리면서 독자적 위상을 유지하였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조선 인재의 절반이 영남에 있다(朝鮮人才 半在嶺南)’라고 기록될 정도로 경상도에서는 훌륭한 인물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이번 특별전이 이러한 경상북도의 역사문화와 사람들을 이해하는 소중한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이 특별전은 국립경주박물관에 이어 상주박물관에서 10월 12일부터 12월 29일까지 개최됩니다.   


이 보도 자료와 관련하여 더욱 자세한 내용이나 취재를 원하시면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실 연구사 임재완(☎ 054-740-7588), 연구사 서유리(☎ 054-740-7540)에게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자료출처 : 국립경주박물관 홈페이지 보도자료(http://gyeongju.museu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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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박물관(관장 이영훈)은 신라능묘 특별전의 세 번째 전시로 경주 천마총을 주제로 한 ‘天馬, 다시 날다’3월 18일부터 6월 22일까지 개최합니다.



1973년 경주 천마총 발굴

경주 대릉원에 자리한 천마총은 1973년 발굴 당시 신라 고유의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으로만 추측하고 있었을 뿐, 제대로 된 이름도 없이 황남동 155호분이라는 숫자만이 부여된 무덤이었습니다. 이 천마총을 발굴하게 된 계기는 일종의 시험 발굴이었습니다. 1971년에 수립된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에는 큰 고분을 발굴하여 그 내부를 복원해 공개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 대상으로서 황남대총을 선택하였는데 그에 대한 발굴에 앞서, 바로 인근의 규모가 작은 천마총을 시험 발굴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조사 결과는 많은 이들의 예상을 뛰어 넘는 것이었습니다. 광복 이후 처음으로 출토된 금관을 비롯하여 모두 11,526점이 출토되었는데, 현재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만도 10건 11점에 이릅니다.


말다래의 ‘천마’로 인해 천마총으로 명명 

신라시대의 귀한 회화 자료인 ‘천마’를 그린 백화수피제 말다래[障泥]가 발견됨으로써 1974년 ‘천마총’으로 명명하였습니다. 그 후 1975~76년 무덤 내부를 복원하여 실제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는 유일한 신라 능묘가 되었습니다. 경주를 방문하는 이들이라면 반드시 한 번쯤 들리는 천마총은 봉분의 지름이 47m이며, 높이는 12.7m에 달합니다. 

내부에 나무로 덧널(크기 6.6m×4.2m)을 설치하고 무덤 주인을 안치한 널(크기 2.15m×0.8m)을 넣은 다음, 덧널 위에 돌무지를 쌓고 흙으로 봉분을 쌓은 구조입니다. 무덤 주인은 금관과 금드리개, 금귀걸이를 비롯한 화려한 장신구와 금동제 봉황장식 고리자루칼을 차고 있었습니다.  

또한 무덤 주인의 머리맡에 있었던 부장품 궤(크기 1.8m×1.0m)에도 온갖 보물이 들어 있었습니다. 맨밑에는 큰 철솥과 온갖 토기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 위에 다양하고 독특한 형태의 칠기류, 유리와 금동ㆍ은ㆍ청동으로 만든 귀한 그릇들, 장식마구 등이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천마문 말다래도 이 부장품 궤 안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 금관, 국보 제188호(사진 : 국립경주박물관)

▶금제 관모, 국보 제189호(사진 : 국립경주박물관)

▶금제 관모 꾸미개, 보물 제617호(사진 : 국립경주박물관)

▶금제 관모 꾸미개, 보물 제618호(사진 :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의 구성

이번 특별전에서는 발굴한 지 41년 만에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천마총 출토품의 거의 전부를 공개하고자 하였습니다. 전시품의 수량은 136건 1,600여점입니다. 이 가운데 국보와 보물이 모두 11건 12점(금령총 출토 기마인물형 주자注子 1점 포함)입니다. 

전시는 도입부를 시작으로 1부 ‘왕(족)의 무덤, 천마총’과 2부 ‘천마문 말다래와 장식 마구’ 그리고 종결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도입부: 당시 출토된 모습 그대로 복제한 목관을 전시하여, 천마총의 핵심인 매장 주체부에 대한 사전 이해를 돕는 한편, 무덤 주인공을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1부: 왕(족)의 무덤, 천마총: 천마총의 발굴에 따라 드러난 구조와 그 부장품에 대해 살펴보는 공간입니다. 특히 전시관 중앙부에는 무덤의 주인이 안치된 널(목관)과 수많은 보물들이 가득한 부장품 궤를 당시의 모습에 가깝게 재현 전시하여, 관람객들이 금관을 비롯한 여러 부장품들의 출토 맥락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러한 전시 기법은 2010년 황남대총 특별전 때 처음 시도되어 큰 호평을 받은 바 있습니다.

그리고 주변의 진열장들에는 널과 덧널 내외, 부장품 궤 등에서 나온 부장품들을 위치 별, 종류 별로 전시합니다. 금관과 금허리띠 등 기존에 잘 알려진 출토품 외에도 다양한 전시품을 새로이 선보입니다. 보존처리 과정에서 그 무늬가 새로 확인된 용무늬ㆍ봉황무늬 등을 새긴 금동그릇과 연꽃무늬와 넝쿨무늬가 금입사된 큰칼 등이 대표적입니다. 

갑옷의 일부인 금동제 팔뚝가리개와 붉은 색을 칠한 칠기 쟁반과 그 위에 올려진 은합, 금제 달개[瓔珞]를 장식한 굽다리긴목항아리도 원래의 모습에 가깝게 처리하여 전시합니다. 검은 바탕에 붉은 칠로 세밀하게 그린 다양한 칠그릇, 달걀을 넣었던 장군과 그것을 담아 두었던 쇠솥도 전시됩니다.


2부: 천마문 말다래와 장식 마구: 천마문 말다래를 중심으로 장식 마구들을 전시하는 공간입니다. 죽제 천마문 금동장식 말다래 1점과 백화수피제 천마문 말다래 2점(1쌍)을 처음으로 모두 전시합니다. (* 천마문 말다래에 관한 내용은 3월 3일자 경주박물관 보도자료 참조) 또한 ‘천마도’와 함께 주목을 받았지만 그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기마인물문 채화판과 서조문 채화판을 처음 공개합니다. 이러한 회화 자료들은 보존을 위하여 조도 80럭스 이하를 유지해 전시하고, 전시 기간도 다음과 같이 제한하여 공개합니다. 

1차 공개: 3월 18일 ~ 4월 6일

2차 공개: 4월 29일 ~ 5월 18일

3차 공개: 6월 3일 ~ 6월 22일  

보존처리 과정에서 드러난 사람 얼굴이 표현된 금동투조장식 안장앞가리개도 처음 전시됩니다. 말다래를 비롯한 마구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금령총 출토 기마인물형 주자(국보) 등도 특별히 함께 전시합니다. 

또한 관람객들이 백화수피제와 죽제 천마문 말다래들을 모니터 상에서 자유자재로 이동 확대 축소하며 세부를 감상할 수 있는 디지털 돋보기를 운용합니다. 1973년 발굴 당시 말다래 등 중요 부장품들을 수습하는 생생한 장면의 영상도 발굴 현장의 분위기를 느끼게 합니다.  


종결부: 종결부에서는 천마총 조사단원의 사진 등 관련 사진과 기록물, 발굴보고서 등을 전시합니다. 그리고 박물관에서 천마총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며 ‘천마’가 다시 날아오기를 소망하는 글로 전시를 마무리합니다.


이번 특별전이 신라 능묘, 나아가 신라 문화 전반에 대한 이해의 폭을 크게 넓히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천마총 특별전처럼 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소장품을 정리, 연구하여 관람객들에게 공개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천마총 특별전 ‘天馬, 다시 날다’는 7월 24일부터 10월 5일까지 국립청주박물관에서도 개최될 예정입니다.



이 자료에 대하여 더욱 자세한 내용을 원하시면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실 학예연구사 류정한(☎ 054-740-7533)에게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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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월성동 |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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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부장 ibuzang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이영훈)은 신라를 세우고, 일구고, 가꾼 역사상의 인물들을 되돌아보는 신라 역사 인물 특별전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전시로 2010년에는 원효대사전을 개최한 바 있습니다. 올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에까지 문명(文名)을 떨친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857~미상) 특별전을 개최합니다




최치원은 신라를 대표하는 문인이자 학자이며 사상가이고 관료였습니다. 그는 12세의 어린 나이에 당나라로 유학하여 18세에 과거에 급제하였습니다. 당나라에서 관료 생활을 시작하게 된 최치원은 황소의 난을 평정하는 <격황소서(檄黃巢書, 당나라 때에 있었던 유명한 민란인 황소(黃巢)의 난 때 그 괴수 황소에게 항복을 권유하기 위하여 보내는 격문을 대필한 것)>를 지으면서 그의 문명(文名)을 널리 떨치게 됩니다.

885년 신라로 돌아온 최치원은 왕실에서 외교문서를 작성하는 등 많은 일을 하였습니다. 894년에는 신라의 개혁을 위해 <시무10여조(時務十餘條)>를 지어 진성여왕에게 올렸으며, 진성여왕은 이를 받아 들여 최치원을 6두품 가운데 가장 높은 자리인 아찬(阿湌, 신라 17관등 중 여섯번째로 아척간이라고도 함, 신라 육두품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관등)에 제수하였습니다. 그러나 <시무10여조>는 진골 세력 등의 반발로 인해 실현되지 못하였고, 이는 최치원이 세속을 떠나 은둔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최치원은 정치적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그의 학문은 다양한 방면에서 뛰어나 후세에 모범이 되었습니다. 고려와 조선시대의 문인들은 그를 동방의 문종(文宗, 문장이나 문학의 대가를 일컫는 말)으로 추앙하고, 기리는 글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최치원의 여러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들을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이 자료들을 바탕으로 최치원이라는 인물을 조명해 보고자 하였습니다. 전시는 1부 청운의 꿈을 품다, 2부 세상에 문명을 떨치다, 3부 서책으로 베개를 삼고 풍월을 읊다, 4부 최치원을 추억하다 등의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Canon | Canon EOS-1Ds Mark III

계원필경, 최치원(857~?), 1918년, 29.2X20.0cm, 목활자본, 개인(사진 : 국립경주박물관)


최치원의 대표적 저술인계원필경(886년(정강왕 1) 그의 나이 서른살이 되던 해에 당나라에 있을 때의 작품을 간추려 정강왕에게 바친 문집)을 비롯하여 <사산비명(지리산의 쌍계사진감선사대공탑비(雙溪寺眞鑑禪師大空塔碑), 만수산의 성주사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聖住寺朗慧和尙白月葆光塔碑), 초월산의 숭복사지비(崇福寺址碑), 희양산의 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비(鳳巖寺智證大師寂照塔碑) 등 4명의 승려를 위한 비문)> 탁본 등 100여점이 선보입니다. 이 가운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최치원 진영(崔致遠眞影)>은 보존처리를 마친 뒤 처음으로 공개됩니다. 이 밖에도 김종직(1431~1492), 남효온(1454~1492), 이황(1501~1570), 김창협(1651~1708) 등의 조선시대 문인들의 시문집도 눈여겨 볼 만합니다.


최치원 진영, 조선시대, 117.8X76.5cm, 견본채색, 국립중앙박물관(사진 : 국립경주박물관)


이번 전시가 천여 년의 시공을 뛰어 넘어, 온갖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주옥같은 글을 남긴 고운 최치원 선생과 대화하는 뜻깊은 자리가 되길 기대합니다.

 


- 전시 기간: 2012. 9. 18.() ~ 11. 18.() *월요일 휴관/ 101일은 개관, 2일 휴관

- 전시 장소: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

- 기념 강연회: 2012.10.27. 15/ 동국대 김복순 교수/ 최치원의 저술과 사상


이 보도 자료와 관련하여 더욱 자세한 내용이나 취재를 원하시면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실 배영일(054-740-7533)에게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자료출처 : 국립경주박물관 보도자료(http://gyeongju.museum.go.kr/)




읽어보면 좋은 글 :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신라유학생 최치원이 멘붕에 빠진 까닭, 경향신문 기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6062106545&code=990100)

※ 2012년 9월 6일 방영된 KBS 역사스페셜 최치원 편도 다시보기로 보면 좋음.

(http://www.kbs.co.kr/1tv/sisa/historyspecial/view/vod/1991781_3088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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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부장 ibuzang

국립경주박물관은 한중 수교 20주년을 맞이하여, 417일부터 617일까지중국 섬서역사박물관 소장 당대 명품전을 마련합니다. 이 특별전은 국립경주박물관과 섬서역사박물관의 우호교류 10년의 아름다운 결실이기도 합니다.

 

(), (), (), () 13왕조의 수도였던 서안시에 자리하고 있는 섬서역사박물관은 매우 수준 높은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중국의 대표적 박물관입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섬서역사박물관의 소장품 가운데(618~907)의 수도였던 국제도시 장안(長安)과 장안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명품들이 선보입니다. 이 전시품들은 모두 국내에서 처음 전시되는 것들로서, 동시기 신라 문화와의 비교 감상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80159점의 전시품 가운데 우리나라의 보물에 해당되는 1급 문물도 1016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금동제 용, 원앙무늬 금잔, 팔각 금잔 등이 1급 문물들로서 수준 높은 당 문화의 일면을 보여줍니다.

NIKON CORPORATION | NIKON D200

금동제 용(높이 37cm, 8세기, 중국 1급 문물),

사진(국립경주박물관)

NIKON CORPORATION | NIKON D200

삼채 단지(높이 23.5cm, 8세기),

사진(국립경주박물관)


NIKON CORPORATION | NIKON D200

원앙무늬 금잔(높이 3.2cm, 입지름 10.6cm, 8세기, 중급 1급 문물)

사진(국립경주박물관)


이번 전시는 3부로 구성됩니다. 1부에서는 국제 도시였던 장안성의 모습을 살펴보고, 2부에서는 장안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금은기, 당삼채 등을 소개합니다. 3부에서는 장안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불상, 도교 관련 용기, 십이지상들이 선보입니다. 중국 성당시기(盛唐時期)의 수준 높은 문화를 감상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이 특별전의 교환 전시로서, 올 하반기에는 천마총 금관을 비롯한 신라의 대표 문화재들을 선보이는 특별전이 섬서역사박물관에서 개최될 예정입니다. 이는 중국에서 열리는 최초의 한국 문화재 전시회로서 매우 뜻깊다 할 것입니다.

 

삼국사기를 보면, 견당사(遣唐使, 신라에서 당으로 보낸 사신)에 대한 기록만도 140건 이상 확인됩니다. 이처럼 신라와 당의 교류는 무척 왕성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으며, 그에 따라 많은 문물도 가고 왔습니다. 당의 문물이 우리에겐 낯설지만 신라인들에게는 낯익은 것들인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지금보다도 더 활발히 신라와 당은 교류했을 것입니다. 1400년 전부터 시작된 신라와 당의 교린관계처럼, 이 특별전을 계기로 국립경주박물관과 섬서역사박물관의 우호교류, 나아가 한중간의 문화교류가 더욱 활발히 진전되리라 기대합니다.


자료 및 사진 출처 : 국립경주박물관 보도자료(http://gyeongju.museu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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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부장 ibuzang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이영훈)1220()부터 2012212()까지 특별전 고대의 문자를 읽다를 개최합니다.

이번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하였던 문자, 그 이후특별전을 바탕으로 새롭게 재구성한 전시입니다. 고대의 문자를 살펴보면서 역사 자료로서의 의미와 그 맥락, 해석 등을 생각해보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전시는 모두 4부로 구성됩니다1부 한자의 수용에서는 중국의 나라들과 갈등을 겪거나 교류하면서 한자를 접하기 시작하던 모습을 살펴봅니다고조선에서는 중국의 명도전반량전 같은 화폐와 명문 청동기 등을 받아들였습니다한반도 남부의 나라들은 낙랑군과 교류하면서 한자를 받아들였던 것으로 보입니다변한 지배층의 무덤에서는 붓과 목간의 글자를 지우는 손칼 등이 출토됩니다. 

 

2통치의 기록에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왕을 중심으로 한 지배층이 문자를 통치 수단으로 활용하였던 사실을 살펴봅니다. 문자의 사용으로 왕과 지배층의 결정과 명령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삼국은 국가체제를 완비하고 율령을 반포하여 통치의 기준과 근본을 마련하였습니다. 그리고 국가의 중요한 일들을 기록하고 새겨서 후대까지 전하였습니다. 그 실례의 하나로서, 2010년 이백여년만에 재발견되었던 문무왕비편이 공개됩니다.
 
3불교의 기록에서는 불교 유입과 동반하여 문자가 더욱 널리 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불교의 승려는 문자 기록의 한 축을 맡았습니다. 승려들은 중국 문물을 받아들이고 사회에 알리는 구실을 하였습니다. 중국과의 외교 문서 작성이나 역사서 편찬에 참여하였던 승려들은 국제성을 갖춘 지식인이었습니다. 불교 수용과 함께 경전도 많이 유입되고 만들어졌습니다. 경전의 제작은 인쇄술의 발달로도 이어집니다.

4
생활의 기록
에서는 문자가 폭 넓게 활용되면서 생활과 관련된 기록들도 많이 남겨졌음을 살펴봅니다. 지금과 달리 종이는 매우 귀한 물품이었습니다. 일본 정창원에서 발견된 신라 문서는, 행정 문서로서의 기능을 다한 뒤 일본에 수출되는 경전과 기물의 포장재로 재활용되었습니다. 일반적인 내용을 기록할 때에는 종이 보다 나무를 깎아 만든 목간을 더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이러한 목간에는 고대인의 생활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 그 외에도 기와에 새겨진 왕궁이나 사찰의 이름, 토기 등에 적혀진 명문 등 다양한 문자에서 그 사용처와 용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상과 같이 이번 특별전은, ‘고대의 문자를 읽다라는 제목처럼, 옛사람들의 문자 속에 담겨 있는 생각을 읽어내고자 했습니다. 문자는 의사소통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료출처 :  http://gyeongju.museum.go.kr/ 
-보다 자세한 내용은 :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실(054-740-7602)로 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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